권혁승 칼럼
C. 시련을 통한 새로운 가치관 정립
1.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라함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이 겪은 최초의 시련은 기근 문제였다. 아브라함이 그동안 살아왔던 고향땅 우르나 잠시 머물렀던 하란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으로 물이 풍부한 지역이며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꽃피었던 세계의 중심지였다. 그에 비하여 가나안 땅은 동쪽과 남쪽으로 사막을 접하고 있는 문명의 외곽지역이었다. 주변의 사막기후로 인한 영향으로 가나안은 정기적으로 기근이 찾아오는 물 부족 지역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문명의 중심지에서 물이 부족한 변두리 지역으로 불러내신 목적은 열악한 환경을 통하여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나안 땅에서 기근을 만난 아브라함은 문제 해결을 위하여 또 다른 문명의 중심지인 이집트로 이주했다. 하나님이 주신 훈련의 기회를 오히려 회피한 셈이다. 그가 선택한 해결 방법은 인간중심적이고 누구나 쉽게 택할 수 있는 관례였다. 기근이 닥을 때, 물 걱정이 없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은 당시 흔하게 볼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그런 선택은 신앙인에게 자주 찾아오는 유혹이기도 하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하려고 아브라함의 노력은 그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이집트로 내려가면서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당할지도 모를 위험을 미리 걱정하였다. 그것은 외모가 빼어난 사라를 이집트 사람들이 빼앗아 가기 위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사라를 아내가 아닌 누이로 속였다. 사라는 실제로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동생이었다.(창 20:12) 그러나 이제는 그와 결혼한 정식 아내였다. 자손의 번성과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놓고 볼 때,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일 뿐 아니라 그 약속을 함께 성취해야 할 동역자였다. 그런 점에서 아내마저도 포기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나님 계획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예상대로 바로는 외국에서 온 매혹적인 외모의 사라를 자신의 궁으로 데려갔다. 그 대가로 아브라함은 많은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다.(창 12:16) 아브라함이 바로에게서 받은 것은 일종의 결혼보상금인 '모하르'로 이해된다. 그 일로 아브라함은 상당한 부를 얻어 보다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일대 위기가 닥쳐왔다. 아브라함에게 부닥친 위기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으로 해결되었다. 하나님이 바로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재앙'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가아'는 피부병과 관련된 것으로 문둥병 일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바로는 그런 재앙을 통하여 남의 아내를 빼앗은 잘못을 깨닫고 그녀를 아브라함에게 되돌려 보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보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아브라함이 자신의 미숙함으로 자초한 문제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바로에게 무서운 재앙을 내림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아브라함에게는 재산을 크게 늘리는 복을 주셨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2. 영적고향의 소유자 아브라함
이집트에서 위기를 넘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면서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인 남방(네게브)을 거쳐 곧바로 벧엘로 직행했다. 왜 아브라함은 벧엘로 곧바로 올라왔을까? 성경은 벧엘이 아브라함에게는 영적고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단을 쌓았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제일 먼저 쌓았던 곳은 세겜이었다. 그러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은 벧엘이 처음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공식적인 예배를 의미한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일종의 실향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음으로 그 땅을 자신의 새로운 영적고향으로 삼았다. 고향이란 부모와의 만남 속에서 생명이 탄생되고 부모의 보호아래 생명이 성장하는 곳이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으로 고향은 의미화 된 특별한 땅이 된다. 아브라함은 벧엘을 의미화 된 땅 곧 영적고향으로 삼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고향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의 장소이다. 연어가 태평양 바다를 가로 질러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듯이,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실패를 경험한 뒤 영적고향인 벧엘로 직행하였다. 아브라함은 그곳으로 돌아와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싶었다. 아브라함은 정처 없이 떠도는 장막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을 바라본 신앙의 인물이다. 벧엘은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같은 곳이었다.
가나안을 자신의 영적고향으로 받아들인 아브라함은 그 후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가나안 중심의 신앙을 물려주었다. 이집트에서 생을 마친 야곱은 마지막 유언을 통하여 자신을 이집트에 묻지 말고 조상이 묻혀있는 가나안에 장사지내줄 것을 당부했다.(창 47:29-30) 요셉 역시 출애굽 때에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으로 옮겨 줄 것을 부탁했다.(창 50:25) 그런 신앙 전통은 계속 이어져 유대민족이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보냈던 지난 2000년 동안 그들의 삶과 역사를 지켜준 힘이 되었다. 가나안은 그들에게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영적고향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