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인간은 일종의 도둑이다.”
이는 다름 아닌 플라톤의 명제이다. 대체 왜 그런 것인지 다음의 대화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 “… 벽돌 또는 돌 쌓는 일에 있어서 정의로운 인간이 건축 전문가보다 유용하고 훌륭한가?”
폴레마르코스: “천만에요.”
소크라테스: “… 그러니까 정의란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에 있어서, 각각의 기능이 유효한 경우엔 쓸모 없지만, 각각이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선 유효한 것이 되는군? 그런건가?”
폴레마르코스: “네, 그럴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여보게. 그렇다면 정의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 되겠네.” “그렇게 제한적으로만 유용한 것이면 말일세.” “이렇게 생각해 보게. 이를테면 권투 같은 싸움에 있어, 때리는데 능한 사람은 방어하는데도 능한 사람 아니겠는가?”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질병을 막고 예방함에 있어 능숙한 사람이면, 그것에 걸리게 하는데도 능하겠지?”
폴레마르코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소크라테스: “그러니 작전이나 다른 행동을 몰래 알아내는데 뛰어난 사람이면, 자기 부대를 지키는 사람으로서도 뛰어난 사람이겠네?”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정의로운 인간이 돈을 잘 간수하는데 유능하다면, 그 정의로운 인간은 훔치는 데도 유능한 것일세.”
폴레마르코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는군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정의의 인간은 일종의 도둑임이 판명된 것일세 그려…. 정의란 일종의 도둑질 솜씨이지만, 그것은 친구에겐 이익을, 적에겐 피해를 가져다주기 위한 기술인 것 같네. 자네 말이 이런 말 아닌가?”
폴레마르코스: “단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무슨 말을 제가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정의는 친구에겐 이익이 되게 하나 적에겐 피해가 되게끔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중략>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선량한 친구에게는 이롭게 해주고 악한 적에게는 해롭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해야 된다는 것이군.”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런데 비록 상대가 적일지언정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일이 정의의 인간이 할 법한 일인가?”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상대가 악인이거나 적이면 해쳐야 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이 비유에 답해보게. 말(horse)이 피해를 당하면 좋게 되는건가 나쁘게 되는건가.”
폴레마르코스: “나쁘게 되는 것이죠.”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건 개(dog)로서의 특성(ἀρετή)으로 그렇게 되는가, 말로서의 특성으로 그런 것인가?”
폴레마르코스: “말이니까 말로서의 특성으로 비롯되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개 역시 피해를 당하게 되면 개로서의 특이성으로 나빠지는 것이지, 결코 말로서의 특이성에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폴레마르코스: “네 틀림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정의란 바로 인간의 특이성(ἀρετή/ 덕과 같은 탁월함)이 아니겠는가?”
폴레마르코스: “그야 틀림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음악가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비음악적이게 만들 수 있는가?”
폴레마르코스: “그건 불가능합니다.”
소크라테스: “또 승마에 능한 사람이 그의 승마술로 다른 사람들을 승마의 솜씨가 없게끔 만들 수 있는가?”
폴레마르코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정의에 의해 다른 사람을 부정한 인간들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요컨대 선한 인간이 그의 덕(선함)으로 다른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폴레마르코스: “불가능합니다.”
소크라테스: “차게 하는 것은 뜨거움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 하는 일이라 나는 생각하네.”
폴레마르코스: “예.”
소크라테스: “습하게 하는 것도 건조함이 관여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그 습함이 관여하는 일이네.”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폴레마르코스여! 남을 해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악인이든 친구이든 정의의 인간이 관여할 일이 아니네. 그 반대의 인간, 즉 부정한 인간이 관여할 일이네!”
ㅡ Plato.《πολιτεία》 I. 333δ-335δ.
상기의 대화는 우리에게《국가》로 알려진 플라톤의 폴리테이아(πολιτεία)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소위 ‘정의의 인간’들이 어느새 ‘도둑’이 된 원리를 논증한 대목이다.
특유의 논법이 궤변처럼 들리지만, 아레테(ἀρετή)라는 인간의 타고난 덕성의 기능을 통해, 정의를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자들을 깨우치는 장면이다.
대화 상대역인 폴레마르코스는 무기 제조공 케탈로스의 아들로서, 정치적 이익집단들을 대변해 ‘정의란 친구에게는 혜택을 주고 적에게는 피해를 주는것’이라 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에 대한 개혁을 하필이면 범죄 혐의자를 수장으로 임명해서 이루려는 시도, 그리고 자신도 불륜인 상태였으면서 불륜 목사들이 기독교 전체인양 모욕을 일삼던 집단의 시도.
그리고 이보다 더 충격인 것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극히 상식적인 견해들을 도리어 적폐로 몰아가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분위기로서(놀랍게도 그런 분위기는 지식인들에게서 더 팽배하다), 다 폴레마르코스의 ‘정의’ 곧, ‘너희들만의 정의’일 때 이해 가능한 일들일 것이다.
성서는 참된 정의를 이렇게 소개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바로 법이다(마 7:12)”.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