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조선 31] 차라리 그 문을 아니 열었더라면
차라리 그 문을 아니 열었더라면 마음이 덜 아리었을까? 아주 한적한 산골마을도 아닌, 대도시의 집이라고는 차마 믿기지 않았다. 양강도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혜산시 어느 마을의 집은 그야말로 초라함 그 자체였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얼굴을 내민 어미와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저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집이라고만 여겼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바라보고 믿고 싶었다.
집 앞 처마에 앉은 어미의 상념이 담벼락에 갇힌다. 나무판자로 누더기처럼 얽혀 놓은 지붕은 가녀린 빗줄기조차 막아주지 못할 것 같다.
경계로 나누어져 집 앞에 철조망을 세운 것도 서러운데, 판자촌 그 한뼘도 안되는 집을 나누어 또 다른 사람과 갈라놓았다.
하느작거리는 콩잎이 잠시라도 시름을 날려버리려나.
신음소리도 묻혀버려 심살내리는 북녘의 사람들이여….
*심살내리다: 잔 근심이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다.
글·사진 강동완 박사
부산 동아대 교수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중이다. ‘통일 크리에이티브’로 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분단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찍은 999장의 사진을 담은 <평양 밖 북조선>을 펴냈다. ‘평양 밖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그들만의 평양>을 추가로 발간했다. 이 책에서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바라본 북녘 사람들의 가을과 겨울을 찍고 기록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살아가는’ 평양시민이 아닌, 오늘 또 하루를 ‘살아내는’ 북한인민들의 억센 일상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강 너머 망원렌즈로 보이는 북녘의 모습은 누군가의 의도로 연출된 장면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북중 접경 지역은 바로 북한 인민들의 삶이자 현실 그 자체의 잔상을 품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두만강 칼바람은 마치 날선 분단의 칼날처럼 뼛속을 파고들었다. … 그 길 위에서 마주한 북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을 사진에라도 담는 건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고백이다.”
다음은 앞서 펴낸 <평양 밖 북조선>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북한은 평양과 지방으로 나뉜다. 평양에 사는 특별시민이 아니라 북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2018년 여름날, 뜨거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분단의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999장의 사진에 북중접경 2,000km 북녘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사람, 공간, 생활, 이동, 경계, 담음’ 등 총 6장 39개 주제로 사진을 찍고 999장을 엮었다.
2018년 4월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만남이라 했다. 만남 이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 길로 갈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의 외딴 섬으로 남아 있던 평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더디며,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