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혼전 순결에 관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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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

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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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교회 출석을 중단하거나 경시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지 않은 이성교제로 자신을 더럽히고 순결과 동정을 잃는데 주저 않는 많은 형제자매들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는 성령 받아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들도 많습니다. 잠시 교회를 떠나있거나 방탕한 이성교제와 신앙생활을 겸하면서도 나중에 돌아온 탕자가 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전 그런 형제자매들을 만날 때마다 누가복음 15장 31절의 탕자의 형을 예로 들어 충고합니다. 돌아온 탕자는 그의 상속받은 유산(하나님의 축복)을 소진하여 다시 받을 수 없지만 그의 형은 성경에 나온 대로 아버지가 아버지 것은 모두 이제 형의 것이라고 했으니 아버지의 유산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도 교회를 떠나지 말고 세상 유혹을 이겨내면 하나님의 축복을 유산으로서 받을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하지만 성경 주석에는 형을 동생이 돌아왔는데도 불평하는 안 좋은 신자의 사례로서 비유합니다. 혼전순결을 잃지 않은 청년들을 격려하기 위해 위의 탕자의 형을 예로 적용하는데 성경적으로 옳은 해석인가요? 또 혼전 순결을 지켜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구별한 청년들에게 평등하신 하나님이 주실 축복에 대해 권면할 지혜 있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답변]

구원의 확신이 있고 교회 활동에도 성실한 청년들이 혼전순결을 지키기 위해 성적 유혹을 이겨내는 데에 기준 내지 도움이 되는 성경 말씀이 무엇인지에 물어주셨습니다. 또 그런 경우 질문자님께선 돌아온 탕자 비유에 나오는 형의 예를 들어 권면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과연 비유 속의 형이 구원 받은 신자인지, 또 세상 유혹을 이겨내어 성적 범죄를 짓지 않은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만약 적절하지 않다면 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에 관한 세 비유

먼저 탕자의 비유는 일차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어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 받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에 관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시게 된 배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광의로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 중에 지은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진리에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눅15:1-3)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드라크마, 아들"의 세 비유를 연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교제하는 것을 두고 힐난했습니다. 여기서 죄인이란 실정법상 형을 받고 감옥에 가있거나 갔다 온 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특별히 유대 장로들이 모세의 율법을 세분화시켜서 첨가시킨 계명들을 지키지 않아 유대 사회에선 배척된 자들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니 교제는커녕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따진 셈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9:13)

만약 하나님이 그런 인간적 계명은 물론 당신이 주신 율법 준행여부로 구원의 기준을 삼으면 어느 누구도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당신의 십자가 은혜를 진정으로 믿는 자는 세상에서 비록 상종치 못할 자로 취급 받더라도 구원해주신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죄인과 세리와 교제했으며 또 이 세 비유를 든 것입니다.  

세 비유가 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이라는 결론 문구가 첫 두 비유에 똑 같이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원칙적으로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관한 비유가 아닙니다. 탕자의 비유를 죄 안 짓고 순결을 유지한 신자에 관해 적용하기에는 예수님의 원래 의도에 비추면 부적절하다는 뜻입니다.  

첫째 비유에서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는 말씀 때문에 약간의 오해 소지는 생깁니다. "아흔아홉"이 마치 남아있는 신자를 지칭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 아흔아홉이 꼭 이미 하늘에 가있는 즉, 구원 받은 신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문장에서 그들이 현재 있는 장소는 불명(不明)입니다. 단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회개 여부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개할 것 없는"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늘에선 그들보다 예수님과 교제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둘째 비유에선 잃어버리지 않은 동전 아홉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되느니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동전 하나 찾은 것만이 하늘에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미 구원을 확보한 양 행세했기에 비유의 잃지 않은 셋 즉, 아흔아홉 마리 양, 아홉 드라크마, 큰 아들에 해당됩니다. "주석서에서 형을 동생이 돌아왔는데도 불평하는 안 좋은 신자의 사례"로 해석하는 까닭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이 볼 때 구원 밖에 있기에 상종도 말아야 할 죄인과 교제하는 것을 힐난했다는 것은 그분의 무조건적인 구원 은총에 대해 불평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셋째 비유에서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2절)고 결론 내린 것입니다. 한 명의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우리 모두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더러도 당신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이 기쁜 일에 함께 동참하라고 권한 것입니다.

또 둘째 아들에 관해선 "죽었던 자가 살아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얻었으니 구원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잃었다가 얻었다"는 표현의 일차적 의미도 이미 구원받은 자가 잠시 방탕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게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원죄로 인해 모두가 잃어버린 즉, 죽음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 같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만 의지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면 천국에 잔치가 일어나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탕자 비유와 성적 순결

물론 탕자의 비유는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화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집에서 나가 방탕하다가 회개하고 돌아왔고 아버지가 다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죄 안 짓고 남아 있는 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지적대로 예수님이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5:31)라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기에 설명한 대로 비유가 일차 뜻하는 바는 칭의의 구원이므로 이미 구원 받은 청년이 그것도 성적 순결을 유지하는 구체적인 문제와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또 동생은 밖에서 온갖 죄를 지은 천하의 탕자인 반면에 형은 집에 남아 있었기에 죄를 전혀 짓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와도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리 구원 받아 믿음이 좋은 자라도 성적 범죄를 포함하여 수시로 온갖 죄를 짓지 않습니까?  

그리고 청년들이 "잠시 교회를 떠나있거나 방탕한 이성교제와 신앙생활을 겸하면서도 나중에 돌아온 탕자가 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은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엄밀히 말해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책을 감당했으므로 구원 후에 혹시 죄를 지어도 진심으로 자백하고 고치려 노력하면 미쁘신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신다고 믿는 것은 옳습니다. 반면에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해주니 마음 놓고 죄를 짓고선 회개는 나중으로 늦추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교회에 나와서 죄에 관한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혹시라도 작금 교회에서 죄를 견책하는 설교가 실종되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요?    

바울이 바로 그런 자들을 향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런즉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1,2) 신자도 알게 모르게 죄를 지을 수 있고 하나님도 당장 문제 삼아 징계하지는 않습니다. 신자라면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것이므로 회개하고 고치도록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나 전혀 회개할 마음도 없이, 아니 용서가 보장되어 있으니 "죄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은 십자가 복음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바로 교회 나오는 청년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최소한 믿음과는 관계없다고 여기며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결혼식도 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런 자들이 자신을 변명 내지 옹호하는 핑계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든다고 했습니다. 질문자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들을 견책 내지 충고하기 위해서 동일한 비유를 인용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이 비유에선 돌아온 탕자가 남아 있는 형보다 도덕적, 영적으로 오히려 우월해 보이니까 말입니다.

그보다는 그들에게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첫째는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때로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마련이기에 긍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의 고백대로 구원 이후에도 "오호라 곤고한 이 사망의 몸"을 갖고 수시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특별히 혈기왕성한 청년기에는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의 이 말씀에서 늙으나 젊으나 자유로울 자 하나 없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이 말씀이 예쁜 여자를 보고 잠시 야릇한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것까지 탓하는 뜻은 아닙니다. 음욕을 마음에 깊이 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관계를 가져볼까 계속 궁리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 정도로 심하진 않는다 해도 야릇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없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고, 또 그랬을 경우 반드시 회개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십자가 은혜 안에 있는 같은 죄인의 입장에서 성적으로 순결치 못한 교회 안의 젊은이들을 향해서 주님의 심장을 갖고 긍휼하게 대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함께 성화에 관한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면서 그 죄를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서로 위로, 권면, 도전, 격려해야 합니다. 물론 구원조차 의심스러운 자는 그 죄를 탓하기 이전에 복음부터 먼저 제대로 전하고 중생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성(性)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

둘째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과 결혼을 허락하신 근본 목적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셔야 합니다. 성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자들을 더욱 격려하고, 이미 넘어간 자들도 회개에 이르도록 하려면 크리스천으로서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터 정립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한 후에 최초로 주신 계명이자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인간더러 생육, 번성, 충만하라고 합니다. 성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바로 후손의 번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는 다른 동물에게 주신 복과 동일합니다. 인간은 또 하나님을 대신해 이 땅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다스릴 책임을 맡았습니다. 단순히 생육만 해선 안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서 온전한 사랑으로 인간끼리 서로 섬겨야 함은 물론 모든 피조물을 그분의 뜻에 맞게 다스려야 합니다.  

이 일을 잘 이루도록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배필로 이브를 지으신 후에 그에게 직접 이끌고 오셨습니다. 아담은 이브더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면서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은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는" 가정을 이뤘습니다.(창12:18-25)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바로 여기서 인간의 성이 갖는 고유의, 다른 피조물은 갖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역할이 나타납니다. 결혼 제도를 하나님이 제정했습니다. 또 당신께서 각자에게 맞는 돕는 배필을 정해서 붙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히 동등한 자격과 신분인 남편과 아내 둘이 연합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가 빠지면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하는 방식의 결합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자기의 완전한 분신(分身)으로 여겨야 합니다. 서로 간에 부끄러워서 감출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완전한 사랑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그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인간끼리 순수하게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실현해야 합니다. 생육한 후손들에게는 그런 온전한 믿음과 헌신하는 모습을 전수해주어야 합니다. 결혼은 부부 두 사람이 하나님과 맺는 성스러운 서약일 뿐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유효한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성에는 반드시 온전한 사랑이 필수적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각자가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이뤄나갈 그분의 동역자이자, 부부 서로 간에는 동반자라는 입장에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없는 성은 하나님이 바라는 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그런 온전한 사랑을 기꺼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성에 즐거움이라는 추가적 복을 허락했습니다. 또 평생토록 항상 사랑하라는 뜻으로 인간에게만은 특정한 교배기간이, 배란이 잘 되는 시기는 있어도, 따로 없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성은 단순히 생육하기 위해 아무 사랑 없이도 관계를 맺는 동물과는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또 순전히 쾌락만을 위해 관계를 맺어서도 안 됩니다. 성의 목적은 사랑이며 즐거움은 그 결과적 열매일 뿐인데도 오직 열매만 탐해선 하나님이 주신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성을 왜곡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맺어주지 않는 배우자와는 맺어져선 안 되며, 또 하나님이 맺어주는 배우자와는 헤어져서도 안 됩니다. 일생을 한 배우자와만 성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 이전에 사랑의 본질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다른 이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아예 거짓 사랑입니다. 또 그런 거짓 사랑으로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은커녕 그 본(本)도 보일 수 없습니다. 순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의 성은 하나님께서 맺어준 두 남녀의 온전한 연합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는 통로이기에 아주 고귀한 것입니다. 또 그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온전한 사랑으로 서로 섬길 수 있기에 아주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아가 당사자에겐 성을 통해 그 사랑이 더욱 성숙해지고 즐거움도 더해진다는 면에서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이자 기쁨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그런 고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성을 주위 사람들과 자식들 앞에서 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면에서 성스러운 임무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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