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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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4. 아브라함의 마지막 시험

자녀 문제와 관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련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전체 생애를 통하여 가장 큰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성숙한 신앙을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최대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는 최종적인 시험(test)이었다.

시험은 유혹(temptation)과 구별된다. 유혹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악을 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반면, 시험은 높은 차원의 성품을 자극하여 인간으로 올바른 일을 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이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신다.'(약 1:13) 여기에서의 시험은 유혹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신앙이 있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하여 시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성품이나 신앙이 얼마나 큰가를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시험하신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시험은 자신의 성숙함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기회였으며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계기였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시험은 이전에 겪은 어떤 시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서로 모순처럼 보였다. 더구나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위해 태어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은 그 자체가 갈등이었다. 약속으로 얻은 이삭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앞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또 다른 약속을 향한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그런데 그 아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모순이고 이율배반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모순은 자연히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명령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약속대로 생명을 주신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주신 생명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분명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데다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사랑과 100세에 얻은 아들에 대한 인간적 사랑이 서로 충돌하였다.  

아브라함이 혹독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때문이었다.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 문제는 풀릴 수 없는 모순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셨다. 위기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만 그 위기를 해결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런 절대 신뢰의 신앙을 가지고 있던 아브라함은 인간의 이성적 논리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른 것이다.

그런 모습은 모리아 산을 함께 올라가면서 이삭이 물은 질문에 아브라함이 답한 내용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삭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창 22:7)라고 질문했다. 이에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래' 곧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대답하였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친히 번제로 바칠 어린양을 준비하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확신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신앙고백이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심각한 갈등이 신앙을 넘어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갈등을 잠재운 것이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신앙은 곧 부활을 믿는 신앙이었다. 아브라함은 이미 이삭의 탄생을 통하여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늙고 단산한 사라를 통하여 이삭이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베푸신 부활 능력이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래 곧 하나님이 친히 이삭 대신 바칠 제물을 예비하실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설령 이삭을 제물로 드린다 하여도 하나님은 다시 그를 살리실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히 11:19) 아브라함의 그런 부활 신앙은 산 밑에서 남겨놓은 젊은 종들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고 말한 것에서도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혼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삭과 함께 올 것을 기대하고 그들을 떠났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것은 그의 믿음만이 아니라 이삭의 믿음과 협력도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가 237세였는데 비하여 이삭은 37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몸을 묶는 일이 필요하였다. 나이 많은 아브라함이 젊은 이삭을 묶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이삭이 아버지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브라함의 시험 문제 중에는 아버지에게 저항하지 않고 순종한 이삭의 믿음도 포함되었다. 성경은 개인주의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적 신앙을 강조한다. 성경에서의 최소 단위는 가족공동체다. 그런 가족공동체로부터 민족공동체와 더 큰 개념의 인류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가장이 가정의 신앙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조나 유월절과 같은 중요한 명절이 가족 단위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이 신앙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 개인을 향한 도전이기도 하였지만, 이삭이 가정 안에서 얼마나 올바로 신앙교육을 받았는가를 점검하는 의미도 들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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