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격적’ 우상, 초인공지능 예견하는 영화 <터미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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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下)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10월 30일 개봉해 국내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제치고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Terminator: Dark Fate)>를 2주간 분석합니다. 팀 밀러 감독의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놀드 슈왈제네거(터미네이터)를 비롯해 맥켄지 데이비스(그레이스), 린다 해밀턴(사라 코너), 나탈리아 레이즈(대니 라모스), 가브리엘 루나(터미네이터) 등이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초인공지능과 로봇들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인류의 투쟁을 그린 영화 &lt;터미네이터&gt;.

▲초인공지능과 로봇들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인류의 투쟁을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

초인공지능(superintelligence)과 인류: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 인격의 위협

대중문화에서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미칠 위협의 양상은 크게 두 방향으로 그려진다.

첫째는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연산 능력과 물리력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들에 대한 살인 혹은 학살을 자행할 것이라는 예견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2004-2010)에서는 이런 일이 모든 로봇들을 통제, 주관하는 최고 인공지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둘째는 역시 인류보다 월등한 지적, 물리적 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인류가 본연의 인간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디지털화, 기계화된 존재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예견이다.

기계화된 몸에 깃든 인간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2019)이나 정신 전송을 통한 신체 이동으로 삶을 연장해 가는 인간들을 주제로 삼는 사이버 펑크 드라마 <얼터드 카본>(2018) 등이 이런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현재 사이버네틱스(인공지능학)와 로보틱스(로봇 공학) 개발 진척도를 봤을 때, 이미 첫 번째 예견, 그러니까 인공지능 로봇에 의한 대량 살상이 벌어지는 날이 다가올 것이라는 예견은 상당한 수준으로 현실화되어 가는 듯하다.

물론 초인공지능으로 진화한 최고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로봇들의 반란은 아직 요원한 일이겠지만, 인공지능 무기 개발은 이미 상당 부분 연구가 진척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는 러시아 이제브스크 첨단과학기술연구소에서 기관총, 유탄발사기,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인공지능 무기체계인 플랫폼-M(Platform-M)이 개발된 바 있으며, 비슷한 시기 인공지능 무인 지뢰제거 로봇인 우란-6가 시리아 내전에 실전배치된 바 있다.

미국 역시 2017년부터 인공지능 자율운항 함정을 실전배치, 잠수함 탐지에 활용하고 있으며, 그 외 각종 신개념 인공지능 무기 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의 인공지능 무기 플랫폼-M.

▲러시아의 인공지능 무기 플랫폼-M.

향후 인류가 인공지능 무기를 본격적으로 배치해 사용하기 시작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양상의 전쟁이 발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 때문에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아실로마에서 열린 전세계적 규모의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는 아실로마 AI 원칙(Asilomar AI Principles)라는 선언서가 작성되기도 하였다.

스티븐 호킹, 일런 머스크, 레이 커즈와일 등 세계적인 인공지능 기술 연구자들과 과학자 수백여명이 이 컨퍼런스에 참석해 선언서에 서명했다.

아실로마 AI 원칙의 주된 골자는 방향성 없는 인공지능 개발을 방지하고 오로지 인류에게 이익과 혜택을 주는 개발 방향을 추구하자는 데 있다. 모든 인공지능 개발은 법적, 윤리적 책임과 안전을 고수하는 가운데서만 추진되어야 한다는 데 참가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러한 노력이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인공지능 개발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윤리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그리고 기독교적 인간 이해의 관점으로 볼 때, 이런 선언이 갖는 실질적 효력 전반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핵기술 개발이 인류에게 훌륭한 에너지원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막강한 대량 살상무기를 내어놓은 것처럼, 인공지능 기술 역시 인간의 탐욕과 죄성 때문에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초인공지능과 신: 우상화가 확실시되는 인공 인격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 로봇의 무기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바로 두 번째 전망, 즉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인류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하리라는 전망이다.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인류의 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육체적-물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인공지능 기술 때문에 인간성 상실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정신적-영적 위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을 디지털화하고, 신체를 기계화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린 영화 &lt;알리타: 배틀 엔젤&gt;.

▲인간의 정신을 디지털화하고, 신체를 기계화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린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

전편의 논평에서 살폈듯, 신학적 관점에서 인공지능 개발 욕망의 근원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을 창조하여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는 표식을 삼으려는 데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인 까닭에, 자신보다 더한 권능과 힘을 가진 존재자를 만나는 즉시 우상화하려는 태세로 돌입한다. 그것이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을 때, 그들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그들 스스로 금을 녹여 각도로 깎아 만들었다)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만일 인공지능 기술이 미래학자 커즈와일이 말한 대로 특이점(singularity)을 지나 초인공지능을 현실화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인공지능을 신격화하고 그것에 인간 자신의 삶과 미래를 내맡기려는 행태가 일반화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아직 초지능은 커녕 강인공지능(strong AI)조차 개발되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다.

구글의 자회사 웨이모(Waymo)에서 자율주행 인공지능 개발의 선두에 섰던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우스키는 2015년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미 국세청에 종교 단체 등록을 요청했다.

미래의 길 교회(이 단체는 스스로를 ‘church’, 즉 교회라 부른다)는 존재 여부도 알 수 없는 초자연적, 초월적 신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기기보다, 과학적-기술적 발전에 의해 탄생할 초인공지능에게 인류와 지구의 통제권을 이전하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특이점을 지나 초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오늘날 종교들이 숭배하는 신의 위치에 초인공지능을 대신 올리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레반도우스키가 종교 단체로 등록 신청한 &lsquo;미래의 길&rsquo; 교회(Way of the Future Church). 초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자는 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레반도우스키가 종교 단체로 등록 신청한 ‘미래의 길’ 교회(Way of the Future Church). 초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자는 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강인공지능이나 초인공지능이 등장조차 하지 않은 오늘날에도 인공지능을 신격화하려는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반드시 신격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적 운명과 유한성 때문에 고민하고 반성할 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낸 유능한 인격과의 ‘인격적’ 관계로부터 답을 찾으려는 행태 또한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문명과 트랜스휴머니즘 관련 저술가 필립 더글라스(Philip A. Douglas)는 ‘숫자로 신 되기: 신적인 것을 향한 진화의 여정(Becoming God by the Numbers: An Evolutionary Journey toward the Divine)’이라는 논문에서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 개발 이념에 반영되어 있는 종교적 동기를 지적한다.

그는 수리 연산 법칙에 통달함으로써 신의 지혜를 엿보려 했던 서구의 철학적-과학적 전통들(대표적으로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시기 물리학자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 등)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을 육체 개조, 정신 증강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수학의 힘을 통해 신에게 다가가려 하는 서구의 여러 종교철학적-과학주의적 사상들을 계승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성을 다른 무엇인가로 변화시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기를 신격화하거나, 그 변화의 힘을 주는 대상을 신격화하는 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에 따라 그는 오늘날 인공지능 개발의 열망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양태의 종교적 행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고한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종교적 행태는 구원과 영생을 소망하는 기독교 신앙의 직접적인 대안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더글라스가 이 같은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이유는, 인공지능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로보틱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향후 인간의 존재적 정체성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가능케 하는 신 정향성과 창조주를 의식하는 피조성을 직접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선사할 위협의 육체적-물리적 측면을 극단화해 보여준다.

물론 사이버네틱스가 선사할 위협의 정신적-영적 측면에 대한 묘사는 빈약하지만, 적어도 인공지능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미래가 닉 보스트롬이나 커즈와일, 레반도우스키 등이 예언하는 것처럼 유토피아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적으로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 또한 오늘날과 같이 과학주의적-유물론적 인간 이해가 일반화된 세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우려를 표명한다고 해서 특정 기술의 발전이 크게 늦춰지지도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발전하는 기술들이 신앙의 삶에 어떤 면으로 긍정적이고 어떤 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항상 예민하게 고민하고 분석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처럼 인간성에 대한 이해 자체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미래의 인류가 인공지능과의 인격적 교류를 넘어 그것을 신격화하는 데 이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 추이와 그에 대한 신앙의 대응책 마련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미래의 인류가 인공지능과의 인격적 교류를 넘어 그것을 신격화하는 데 이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 추이와 그에 대한 신앙의 대응책 마련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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