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1월 초 북한 선원을 강제북송한 것은 여러 모로 살펴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인하고 악독한 사건이다. 그 탈북민들은 북송 당시 판문점에서 북한군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상황을 깨닫게 되자, 절망에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통일부 장관은 거짓말까지 했다. 그들이 죽더라도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진술을 분명히 했기에, 귀순에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해상 살인을 저지르고 북 김책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나눈 말로 밝혀졌다.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는 말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터무니없는 거짓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통일부는 그들이 동해 NLL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등 귀순 의사가 불분명했다고도 했으나, 야당 의원들은 “어민들이 우리 군의 경고 사격을 받고도 남하했다”고 했다.
그들은 북한으로 돌아가면 처형당할 것이 뻔하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정부 당국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북송할 당시 자해를 우려해 몸은 포승줄로 묶고 눈은 안대로 가렸으며 입에는 재갈까지 씌웠던 것이 아닌가.
이 사건은 우리의 동족을-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사지로 밀어넣은,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폭거다. 특히 그 누구보다 ‘사람’과 ‘인권’을 부르짖어왔던 이들에 의해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 실현은 지난하고 복잡한 과업이며, 따라서 북한 당국을 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라는 명제에만 매몰되어 생명을 경시해선 안 된다. 전쟁 범죄자들과 독재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그들에게 핍박받는 약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거짓된 평화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모두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보여 주셨다.
기독교의 사랑은 다수인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위해 한 마리 양쯤은 희생돼도 상관없다는 식의 전체주의가 아니다.
기독교계는 이러한 폭거에 단호히 맞서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적극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