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보편적인 성경이고 영국에서는 옥스퍼드 사전에서 'The Holy Bible'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을 가리키므로, 이 성경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신자, 비신자 모두)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신학교 등을 통해 오랫동안 일부 목회자들만 알고 있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 성경 역본과 관련해서 다양한 자료들이 유입되면서 많은 성도들도 이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70년 중반부터 NIV 등의 현대 역본들이 나오면서, 성경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이전까지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온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무차별 광고 및 선전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그룹과 현대 역본을 지지하는 그룹 간에 대규모 옹호 및 반대 의견이 쏟아져 나왔고, 이런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도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성서침례교회 출신으로 미국의 여러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며, 당연히 근본주의자들의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며 25년간의 목회를 해 왔다. 지금은 역시 근본주의 독립 침례교회 중 가장 큰 교회인 랭카스터침례교회(캘리포니아주 랭카스터, 담임 폴 채플 목사)에서 운영하는 웨스트코스트바이블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30년 이상 국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킹제임스 성경 이슈를 몸소 경험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잠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특히 미국 교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KJV 혹은 Authorized Version)
영미권 교회들과 크리스천들은 지난 400년 이상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해 왔다. 위클리프가 라틴어 성경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뒤에(이 성경은 필사본으로 제작), 에라스무스가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어 성경을 당시 전수된 사본들에서 편집 출판한 후, 윌리엄 틴들에 의해 영어 성경이 나오면서(1534년, KJV에 70% 어휘 반영) 비로소 영어 성경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에라스무스가 다섯 번에 걸쳐 다수 본문(종교 개혁 프로테스탄트 본문)에 의거하여 그리스어 성경을 출판하고,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어 형제등이 계속 수정판을 출간하면서 그 사이에 커버데일(1535), 매튜(1537), 그레이트(1539), 제네바(1560), 비숍 성경(1568) 등이 전수사본(Textus Receptus 계열)에서 번역된 후, 1611년에 제임스 1세의 어명에 의해 50여 명의 당대 최고 번역자들에 의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왔다. 킹제임스 성경은 활자체·철자법 등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몇 번 거치면서 1769년쯤에는 완전히 본문이 정착되어, 지금까지 계속 영미권에서 절대 다수의 교회들과 성도들에 의해 압도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1881년에 영국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라고 하는 비성경적이며 거듭난 것조차도 불확실한 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그리스어 신약 성경이 편집 출판된 뒤에, 소위 로마 카톨릭 소수 사본(알렉산드리아 계열 원문)에 근거한 비평 원문(Critical text)을 근거로 영국에서 영어개역성경(RV)이 출판되었고, 이것은 그 당시 킹제임스 성경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좋은' 선택이 되었다. 여러 분석을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부분이 많다. 사실 그리스어 신약 성경의 경우 프로테스탄트 다수 본문과 천주교회의 소수 본문은 원어 면에서 적어도 8,000 군데나 차이가 나고, 소수 본문에서 나온 역본들은 베드로전후서 만큼의 분량이 삭제되어 성경이 짧다.
이 두 종류의 성경들은 사본, 원문상으로 이러한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영국개역성경은 번역 기법과 신학 노선 등에서도 킹제임스 성경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뒤 1900년대 초반에 미국표준역(ASV), 그리고 몇 십 년 뒤 에 미국신표준역(NASB) 등이 나왔으나 이것들은 대부분 소장용, 개인 연구용으로만 주로 사용되었고, 여전히 킹제임스 성경은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나 성도들에 의해 선호되고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신국제역(NIV)과 신킹제임스성경(NKJV) 등이 소개되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런 성경들이 보수적 교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리를 덜 중시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신복음주의 교회들에게 '좋은' 선택이 되었다.
1970년에 현대 역본들이 다수 출간되면서 성경 본문과 역본 문제로 많은 신학 논쟁도 나오게 되었고,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들, 성도들, 신학교들은 성경의 총체적 축자 영감, 하나님 말씀의 섭리 보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게 되어 지금은 거의 논쟁이 사라지고 이 문제에 대한 정리와 확신이 분명하게 되었다. 사실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수많은 공격과 오류라 불리는 것들에 대해서는 오늘날 거의 모든 답변이 나와 있다.
성경의 총체적 축자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뿐만 아니라 성경의 '섭리 보존'(Providential Preservation)은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강조한 교리이며(하나님께서 원어 성경 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사상 유례 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다. 1조 8항), 장로교회 선조들은 이에 대해 매우 정리를 잘하였다. 1689년에 나온 영국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 편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으며, 성경의 섭리 보존 교리는 1742년 미국 필라델피아 침례교 신앙고백, 1833년 뉴햄프셔 침례교 신앙고백, 국제성서침례교회친교회(1950) 등에서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 시대에는 상당수의 신학자들과 목사들도 성경의 축자 영감이나 섭리 보존을 잘 모르고(믿지 않고) 있고, 특히 후자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지난 150년 동안 유명한 대학의 저명한 조직신학자들도 성경의 섭리 보존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를 하지 않았다. 성경의 축자 영감과 섭리 보존 이 두 교리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킹제임스 성경 이슈(혹은 성경 이슈)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들은 지금 이 시간 지구상 어딘가에 보존된 하나님의 완전한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시며 성경 말씀의 보존에 대해 직접 언급하셨다.
지난 20-30년간 미국에서는 피터 럭크맨(Dr. Peter Ruckman) 박사의 그룹이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로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 "킹제임스 성경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다"(이중영감설)라는 과도하고 비상식적인 주장을 폈지만,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교회나 신학교 그리고 성도들은 결코 그런 주장을 믿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20여 년 전에 럭크맨 박사를 따르는 한 단체가 "자기들이 만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최종 권위이고 그 성경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는 등의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여 교계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이러한 주장과 소문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국 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거나 선호하는 교회나 목사들 가운데는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한국 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거나 선호하는 신자들의 대다수는 미국의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거나 선호하는 신자들처럼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당연히 다른 성경으로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도 개역성경으로 1971년 11월에 구원받았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문, 번역 기법, 번역자들의 신학, 실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아직도 영미권에서 최대로 많이 애독되고 있다. 지금도 미국의 경우 무교파 대학인 밥존스 대학, 그리고 최대 규모의 침례교 대학인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 웨스트코스트 대학, 크라운 대학, 마라나타 대학, 하일스앤더스 대학 등에서 목사들을 키워내기 위해, 그리고 복음 선포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특히 밥존스 대학과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은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홈스쿨링 교재 시장에서(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가장 큰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학교들이 매년 판매하는 수백만 권의 책들은 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미국 교회와 성도들은 흠정역("흠정" 어원=청나라 건륭제 때, 흠정만주원류고, 1778년 기원, 왕이 제정했다는 의미임), 권위역(혹은 공인역AV)이라고도 불리는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권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보존된 성경이라고 고백한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은 55%가 킹제임스 성경(KJV)을, 19%가 NIV를, 7%가 NRSV를, 그리고 6%가 NAB를 읽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미국 인디애나 대학과 퍼듀 대학의 종교 및 미국 문화 연구 센터'가 행한 '미국 생활 속의 성경 조사' 연구).
부디 한국에서도 마틴 루터, 존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이 사용한 프로테스탄트 성경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장로교회의 근간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원천인 된 킹제임스 성경이 편견 없이 교계에 알려져서, 최소한 참조용으로라도 널리 사용되기를 바란다.
필자는 호주 목회자 키이쓰 파이퍼의 책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를 번역하였고, 이 책에는 전 총신대 및 대신대 총장을 지낸 정성구 박사님이 추천서를 써 주셨다(도서출판 흰돌, 453쪽, 2014년). 정성구 박사님은 은퇴했으나 지금도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종교개혁 정신의 함양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의 핵심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그들이 말한 성경은 루터, 칼빈, 틴데일의 뒤를 이어 제네바 성경 및 킹제임스 성경으로 결실을 이룬 종교개혁 성경이다"라고 말했다. 정성구 박사님의 추천사를 보면 성경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다음과 같이 첨부한다.
"저는 이기석 목사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읽었습니다. 20여 년 전 저는 미국 뉴저지 주에서 목회하시던 이 목사님 초청을 받아 부흥 집회를 인도했는데 그때 이 목사님께서는 전수 사본(Received manuscripts) 즉 공인(共認) 본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된 영어 성경만이 참된 성경이라고 힘주어 말했고 저도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사실 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서 <킹제임스 성경>, <틴데일 성경>, <루터의 독일어 신약 성경>, 칼빈이 주도한 <올리베땅 프랑스어 신약 성경>, 또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이요, 청교도들의 성경이며 미국 건국의 성경이었던 <제네바 성경>이 번역됐습니다.
저는 평생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과 칼빈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과 박물관에는 사본학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자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사본, 어느 본문으로,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번역했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제네바 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은 그 당시 종교개혁의 정신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정신 위에 그리스어 본문인 공인 본문(TR)을 바탕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영역 성경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 뉴에이지, 로마 카톨릭 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적인 인본주의 사상으로 성경 번역에 심대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학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이들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본문을 재구성한 것을 철저히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이단이며 가장 잘못된 사본을 사용하고,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안목으로 번역해 버린 그들은 도리어 기독교 신앙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자들입니다.
이 책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은 영어 역본들을 사본과 정확히 대조하면서 참된 번역과 잘못된 번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매우 학문적이며 사본학의 근원을 파헤치는 역작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이 책이 신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목회자와 모든 신학생들에게 두루 읽혀 성경 교육과 설교에 크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
이황로 교수(웨스트코스트바이블칼리지), paul.lee@wcbc.edu 661-678-5581 www.wcbc.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