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진실과 왜곡 사이
영국 콜린스 영한사전에서 2017년 그 해의 단어를 ‘가짜뉴스(Fake News)’로 선정한 바 있다.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사실이 아닌 거짓된 뉴스로,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조작되거나 거짓 정보를 유포한다는 것이 ‘가짜뉴스(Fake News)’이다.
얼마 전 “개 구충제가 암치료의 특효약”이라는 미국인 한 암환자의 유튜브 방송이 전해지고 신문에 실리면서, 개 구충제가 엄청나게 팔리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는 대표적 가짜뉴스에 속한다.
2008년에는 4월 문화방송(MBC)의 ‘PD수첩’에서 “미국인 아레사 빈슨,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가짜뉴스로 전 국민이 촛불을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허위 보도로 판명됐다. 빈슨의 공식적 사인은 베르니케 뇌병변이었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빨라진 세상, 넘치는 정보량에 모두가 놀라고 있다. 유포되는 속도와 범위, 정보의 양이 다르기에, 순식간에 전 세계인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하였는데, 최고의 첨단 미디어 기기가 개인의 손에 들려지면서, 각 개인에게 정보량과 속도가 급증했다.
2014년 이후 통신망의 보급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카카오톡 보급까지 이어지자, 스마트폰을 소유한 젊은이들이 대세가 되며 폭발하였다. 2018년 이후 장노년층까지 여기에 합세하자, 거의 전 인구가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시대가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 정보가 모이다 보면,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무수한 정보들 가운데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링(filtering) 기능이 없기에, 오보나 가짜뉴스의 위험도 증가했다.
이런 일들은 대형사건이 터지면 더 활동적이고 폭발한다. 이른바 ‘음모론’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가짜와 진짜의 혼재로 기존 객관적 판단에 타격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진실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요즘은 누구나 ‘언론’이 될 수 있고, ‘기자’를 자처할 수 있다. 1인 미디어의 영향력 증가는 옛날 같으면 ‘유언비어’로 치부했을 말(言)들이 힘을 얻게 했다. 하지만 가짜뉴스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지원하는 사람, ‘게이트키퍼’(gatekeeper)는 부재하다.
오늘날 가짜뉴스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현상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일환으로 존재한다.
최근 화제의 책《나는 미디어 조작자다》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는 23살 때 아메리칸 어패럴의 마케팅 책임 이사가 된 여론 조작의 천재인데, 그는 책에서 언론이 어떻게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퍼뜨리는지 실험을 하고 자신이 어떻게 기사 조작을 했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 사람들을 속이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언론 매체에 거짓말을 해서 그들이 당신을 속이도록 하는 게 내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페이스북 피드를 채우고 직장 동료와의 잡담거리가 되는 특종과 속보를 통제한다.”
불분명하고 부정확한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 이것을 받아쓰는 언론이 있을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또한 소셜미디어가 수익을 갖게 되고, 이런 가짜뉴스(SNS)가 돈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면, 더욱 그런 현상은 더 빈번해진다. 그들은 팩트보다 주장을 앞세운다.
쉽게 얘기하면, 가짜뉴스의 온상이 될 수 있다. 가짜뉴스가 선동적일수록 힘이 세고, 구독자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 가짜뉴스를 소비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는 이런 뉴스를 더욱 힘 있게 만든다.
가짜뉴스 시대, 흔들리는 저널리즘(journalism)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 속도와 규모가 더 방대해지면서, 기사 크기를 돈으로 생각하고 돈으로 바꾸는 시대는 불행이다. ‘카더라’ 통신이나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는 철저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1851년 창간된 뉴욕타임스는 이런 문제를 ‘정식기자 채용’과 ‘현장 취재’라는 것을 시작했고, ‘인터뷰’라는 기법을 도입해 ‘팩트체크(FactCheck)’를 하는 정론지 활동으로 이를 극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월호 사건에서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 사태로 번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팩트체크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시대, 이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권력자들이 비판언론을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권력이나 가진 자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언론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메일로 기사를 채우거나 소설을 써서 지면을 도배하는 언론도 있기에, 미국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신문에서 보는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고 한 말이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류의 가짜뉴스는 인류에게 정말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분쟁과 갈등만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전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그런데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한다.
가짜뉴스 시대, 언론을 표방하고 있으며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먼저 자신의 직업윤리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미 AI가 뉴스를 판별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일반적 자료를 요약봇이 정리하여 짧고 간편하게 만들어 낸다. 이것을 사람들이 보고 평가하게 되면, 요약봇은 점차 진화해 간다. 그래서 기자가 뉴스를 쓰지 않아도 기사가 나오게 된다.
가짜뉴스 시대, 뉴스의 혼돈 속에서 어쩌면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찾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가짜뉴스가 자리하고 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이 심각성을 인정하고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구글 역시 “검색엔진 알고리즘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가짜뉴스 차단에 나서기로 했다.
가짜뉴스 시대, 어떤 진영의 논리가 맞는지 모르면서 자기 주장만 맞다고 다투기보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아니 전 세계인이 갖춰야 할 시민의 덕목이 있다면,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지성(눈)이다.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근대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