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4. 요한복음과 아브라함
요한복음서가 제시하고 있는 아브라함은 공관복음서나 바울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요한복음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이후 교회가 회당과 완전히 결별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당시 교회는 고조된 기독론으로 인하여 유대인들과 심각한 갈등관계를 갖게 되었고, 급기야는 신성모독죄가 그들에게 적용되어 회당으로부터 출교되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절대 중보자이며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로 믿었다(요 10:30-39).
유대인들은 그러한 교회의 믿음을 이단적인 신성모독으로 규정하였다. 회당으로부터의 출교는 단지 종교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개인의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경제적 제재까지 포함된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요한공동체의 위기의식은 이원론사상을 기본 구조로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교회공동체와 유대인공동체 사이에 존재하였던 종교적 갈등이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요한복음서에는 예수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가졌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나오고 있다. 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신앙상담을 하였던 산헤드린 공회원 출신 니고데모나 예수에게 새 무덤을 제공했던 아리마대사람 요셉, 빌립의 소개로 예수를 만났던 가나사람 나다나엘 등은 모두가 예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경건한 유대인들이다. 유대인 고위 관리들 중에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회당에서 출교당하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다(요 12:42).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도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요 4:22).
그렇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도 갈등의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있었던 갈등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서 생겼다.
요한복음 8장에는 교회와 그러한 유대인들과의 갈등관계를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11-12)고 하였다. 이에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37)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예수는 더 나아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 자신을 죽이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반박하셨다(요 8:39-40, 44). 예수의 지적에 따르면, 유대인은 그들이 늘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아브라함 후손으로서의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 편에 서있는 사악한 무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에서 가장 신랄한 반유대주의적 언급이며 아브라함의 정통 자손이라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의 마지막 가르침의 내용인 '세 때' 가운데 첫째인 '징벌의 날'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반응으로 이해해야 한다(눅 21장). 그것은 징벌의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때'를 거쳐 새로운 회복이 있을 것을 예고하면서 마지막 완성인 '재림의 날'로 이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