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 대표, ‘북한의 조직생활사회’ 강의
북한에서 태어나 만 7세인 초등학교(소학교) 2학년 이상이 되면 수령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북한 사람이 '조직'(혁명초소)에 소속된다. 주민의 직장 단위로 구성되는 이 조직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사상 교양 단체로, 북한 사회 전 분야는 조직생활체계로 유지된다. 어릴 때부터 각인된 '조직생활'은 북한 주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 왔으며, 오늘날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북한 작가동맹 시인 출신으로, 자유를 찾아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한 최진이 사단법인 임진강 대표가 숭실통일아카데미(원장 조요셉 목사)에서 북한의 조직생활사회의 실체를 밝혔다. 최 대표는 현재 북 주민이 쓰고 읽고 배우는 잡지를 표방하는 '임진강'을 발행하고 있다.
최진이 대표는 "조직생활이 사회컨트롤 기능으로는 더 흠잡을 데 없을지 몰라도, 전 사회인의 인성과 정신을 우매화시키는 데는 그보다 더 효과적인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찾기 힘들 것"이라며 "노예제도에서도 평민, 귀족, 노예층이 구별돼 있었는데, 하물며 현대 조선에서는 이 조직생활제도로 2천만 전 주민이 1인 노예주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이 정의한 '조직생활은, 사상단련의 용광로이며 혁명적 교양의 학교'라는 내용에는 조직생활이 비핵심분자, 의심분자와의 계급투쟁이어야 하며, 쇠붙이나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쓸모있는 강재를 만들 듯 혁명적 자극을 육체와 정신에 가하여 사람들을 당의 임무 수행에 용이한 존재로 만드는 장이어야 한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조직생활은 수령과 인민대중을 연결하는 유일한 정치조직인 조선로동당과 그 외곽단체인 사로청, 소년단, 직맹, 녀맹, 농근맹 조직에 의해 운영된다"며 "북한에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조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다. 행정이 곧 조직생활 속에 있고 생산은 곧 조직생활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북한이 1960년대 말부터 선포한 주체사상과 조직생활은 발생의 궤도를 같이한다"며 "조직생활은 사상단련(사상투쟁) 및 사상교양의 학교(교화소)이며, 조직생활의 목적은 사회주의 사회에 사는 조선 사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에 있고, 유일지도체제의 현실화에 없어서는 안 될 무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북한 조직생활체계의 핵심은 '생활총화'(조직 내에서 2일, 주, 월, 분기, 반년, 연간마다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을 하는 북한 교육방식)이며, 조직생활제도는 북한의 식량배급제와 불가분리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조직생활이 빚어낸 특징으로 최 대표는 7가지를 꼽았다.
①"자기비판과 호상비판(상호비판)은 북 주민의 소통방식": 최 대표는 북한 주민의 대화 특징은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적 혹은 아첨'이라고 말했다. "소통의 의미는 증발되고, 자기 방어, 자기 변명, 수용소행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첨 등이 몸에 각인된 그들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을 내면화하는 데 실패했다"며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상대가 나를 비판하는 듯한 분위기만 인지해도 무의식적 방어 및 공격태세가 작동되며, 공격이나 비난, 아첨이 먹히지 않는 상대일 경우는 이쪽은 자포자기에 빠진다. 즉 자진해서 심리적 수용소행을 당하는 셈"이라며 "많은 북한 주민이 대화상대와 의논하는 방법을 모르고, 대부분 상대를 휘두르는 큰소리, 위협 등의 무기를 쓴다"고 말했다.
②"프라이버시 공개가 이루어 낸 개인의 인격 박탈": 최 대표는 "조직생활총화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점은 조직원 개인의 프라이버시 공개"라며 "조직원들의 연애, 부부관계, 재산내역 등을 조직이 일일이 간섭하고 심한 경우 추적도 서슴치 않는다"고 말했다. 또 "숙박검열을 빌미로 한밤중 식구들이 잠자는 집안에 서슴없이 들이닥쳐 집안을 뒤지고 전지불로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춰보며 식구를 확인하는 상습적 행위들은 역으로 피해자들의 뻔뻔함을 급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곧 식량 미공급시기에 부모처자를 쉽게 버리고, 공장 기업소의 생명인 기계 부속품은 물론, 나라의 인프라인 철길의 레일, 못, 전깃줄, 견인기 부속품들을 거리낌 없이 뜯어내 팔아먹는 행위로 표현됐으며, 인민군대는 영양실조에 걸리는 순간 주저 없이 꽃제비나 공산군으로 전락해 주민 가옥에 대한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③"당위원회 문고리 먼저 잡기": 최 대표는 "조선의 조직생활체계는 개인별, 조직별 보고체계이기도 하다"며 "따라서 모든 조직생활자는 김일성, 김정일의 권위 훼손으로 여겨지는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즉시 누구를 막론하고 조직에 직접 보고해야 하고, 여럿이 함께 들었는데 그 중 보고하지 않는 자가 있은 경우 그는 조직에 '속'을 안주는 '수상한 자'로 낙인돼 사상투쟁 무대에 오르고 심한 경우 추방, 수용소행을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화는 조직생활자들 속에 '당위원회 문고리 먼저잡기' 문화를 양산시켰다. 이런 조직생활문화 생태계 속에서 사람들의 사고는 점점 단순해져 사리 분별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④"200만 아사에도 '우리는 행복해요!'": 그는 "북한은 1960년대 유일사상체계 수립과 함께 등장한 구호인 '세상에 부럼없어라'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색 낡은 구호를 1990년대 200만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엄혹한 미공급시기에도 유치원 탁아소 정문들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걸어놓았었다"며 "이는 순종만이 각인되어 온 조직생활사회인의 무기력함, 체질화된 언행불일치의 전형적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국민의 노동력, 기술력, 예의, 태도, 신용도 순에 따라 1만 불에서 5만 불 사회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언행일치에 따른 사회 신뢰도가 중요하다"며 "실제 삶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면서도 북한 주민은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딴청을 부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⑤"자기 검열 가시화로 인한 내면세계의 실종": 최 대표는 "50여 년에 걸쳐 조선의 조직생활사회는 조직생활자들에게서 내면세계를 실종시켰다"며 "서로를 자극하고 상처 주고 위협하는 사상투쟁 문화에 익숙해 온 그들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스스로의 정신 성장을 도모하는 일에 가치 부여를 하지 못한다. 보이는 데서만 그럴듯하게 넘어가면 된다는 식이고 매사에 당장의 이익만 손해보지 않으면 '현명한 처사'라고 간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일관성이 부족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쫓게 되며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며 "이는 본인 스스로의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사회적 신뢰도를 약화시킨다. 또 결국 국가적 신용도로 연결되어 나라의 경제성장에 크고 작은 제동기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⑥"조직생활사회인이 체득한 '잔재간', '잔꽤'": 그는 "조직생활문화인에게서 자주 보이는 비긍정적 현상의 하나가 '잔꽤', '잔재간' 등으로 표현되는 교활함"이라며 "이는 조직생활사회에서 자기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기,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표리부동과 습관적인 말 바꾸기, 모함당한 조직원을 서로 모르는 척하기, 상급자에게 필요 이상의 아첨 부리기, 수령에 대한 '허위보고', 충성을 가장한 간부들의 자기 이익 챙기기 등으로 표현되며, 이는 당과 대중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있어 서로가 건너설 수 없는 큰 구덩이를 파놓았다"고 주장했다.
⑦"원하지 않는 주입식 학습이 빚은 경청능력 및 믿음 상실": 최 대표는 "북한은 이른바 유일사상교양의 목적하에 주민은 원하지 않는 강연이나 학습, 영화, 선동을 수십 년 자행했다"며 "그 결과 북 주민들은 타인의 말에 염증부터 느끼고, 상대를 덮어놓고 의심부터 하는 악습을 지닌 비사회적 존재가 되었으며,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난해한 존재로 이질화되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이후 조직생활사회의 변화
최진이 대표는 "2000년대 들어 북한 당국이 안게 된 거대 딜레마는 '조직생활제도를 유지해야 하나, 나라의 경제를 살려야 하나'였다"며 "조직생활제도를 예전처럼 유지하자니 경제발전은 안 보이고, 사회주의 시장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어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나라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조직생활제도마저 버리면 정치적 생명력을 잃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구를 모색하던 중 2000년 2월에 발표한 '새로운 경제조치'의 핵심이 여성들을 혁명초소단위의 조직생활제도에서 놓아주어 장마당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며 "인구의 절반인 여성, 대부분 당 외곽단체 녀맹조직 소속원인 여성이 혁명초소 단위의 조직생활제도에서 1차로 해방된 '자유인'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생활사회는 이들을 시간이 많은 대상으로 인식하고 온갖 노동력 및 재원동원에 쉴 새 없이 동원시키고 있지만, 녀맹조직 소속의 '자유인' 여성들은 이에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해 녀맹에서 조직하는 생활총화, 학습총화, 노력 및 자재동원 등 온갖 조직생활문화를 상품화해버리는 능력을 과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은 돈으로 '모범 녀맹원'의 타이틀을 사고, 돈으로 장사활동에 필요한 조직 권력도 매수해버렸다"며 "보안원, 보위원, 당비서도 그들의 사회적 기능이 필요한 경우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너나없이 체득하고 활용해나갔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음성적으로 이뤄진 개인기업 운영이 거의 합법화되어 주민의 거주와 이동이 상품화되면서, 조직생활은 개인기업 운영체계 형성 용도로 이용되는 경향마저 보였다는 게 최 대표의 견해다.
북한 조직생활사회의 변화는 북한 주민의 가치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 대표는 "2000년대 탈북한 30~40대 여성의 특징은 가치가 돈벌이에 치중되어 있다"며 "타인을 어떻게 을러메고 속여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최고 가치고, 그 외의 욕구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조차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진이 대표는 "그런데 2010년대 이후 탈북한 10대에서는 놀라운 모습들이 보였다"며 "18세 정도 탈북한 한 소녀는 한국에 먼저 온 친구가 '너 한국 오면 '소녀시대'에 출연할 수 있어!'라는 말에 홀딱 반해 북한을 떠났다고 했다. 그 나이 또래 한 소년은 한국에 가면 자기가 원하던 모양의 질과 색깔의 옷을 철 따라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탈북했다고 했다"며 "그 인터뷰를 청취하던 다는 그만 입이 떡 벌어져 한동안 다물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14세에 아버지를 따라 탈북한 한 중학생 소녀는 특별히 영어 관련 교육을 북한에서 받은 적 없는데, 탈북과정에 영어가 필요해지자 자기가 도맡아 통역했다고 했다"며 "북한의 외국어 열풍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북한에서는 많이 먹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고기를 먹는 것이 더 영양가가 있다며 '돼지치기'가 붐이 되고 있다고 한다. 강냉이를 돼지에게 한번 돌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생긴 셈"이라며 "어쩌면 김일성 생전의 '이밥(쌀밥)에 고기국, 비단옷에 기와집' 꿈의 문턱에 북한이 이제야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