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재일교포 북송 60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북한인권단체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가 최근 일본 중의원 다목적홀에서 재일교포 북송 60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일본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나카가와 의원은 인사말에서 “지금 국제 사회에서는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북한 간의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권 문제”라며 “국제 사회가 인권 문제로 북한을 압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발표를 맡은 김석향 교수(물망초 전쟁범죄조사위원, 이화여대 북한학과)는 “1959년 12월 14일 일본 니가타 항에서 ‘귀국선’이라는 배가 출발했다. 그 배는 북한 청진항으로 들어갔고, 그 배에 탄 사람은 무조건 북한 국민이 되어야 했다”며 ‘재일교포 북송 사업’의 실상에 대해 전했다.
김 교수는 “당시 배를 탔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를 타기 전 북한에 갈 것인지 물어보는 절차를 제대로 가지지 않았다”며 “그 배를 탄 이유는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자유를 보장하고, 마음에 안 들면 돌아올 수 있고, 남한으로 갈 수 있고 공부도 무료로 시켜주고 생활비를 보장해준다고 했던 조총련의 선전 활동이 기본적인 원인이었다”고 했다.
또 “북한에 보내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자료가 많지 않는데, 북한에 갔던 사람들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이를 알려준다”며 “북송 사업으로 북한에 갔다 탈북한 일본인과 한국인을 면담한 결과 1959~1961년에 갔던 사람은 조총련이 ‘가면 뭐든지 다 있다’며 짐을 가져가려는 사람은 막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북송되는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는데, 1972년부터 다시 배가 떠나기 시작했다. 이때 배를 탄 사람들 중 20대는 주로 조총련의 자녀였다. 제가 만난 조총련의 자녀 분은 ‘배를 탔던 것을 후회한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도 안 가니까 북한에서 요구해서 갔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한국과 일본과 북한 사이에 얽힌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파악해야 한다”며 “지금 이 분들이 돌아가시고 있다. 빠른 시일 안에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잘못을 판단하기 전에 이 분들의 이야기를 모아 기록하는 일을 속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인권활동가로 있는 야마타 전 오사카대 교수는 “소위 말하는 ‘북조선 귀국 운동’은 재일교포가 자발적으로 일으킨 운동이 아니었다”며 “이는 북조선의 지시를 받아 조직을 총동원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설명을 하며 북한에 보낸 행위는 유괴”라고 말했다.
야마타 교수는 “구소련 외부 문서를 통해 북조선 귀국 운동이 김일성의 시나리오에 따라 조총련이 만들어낸 사실임을 알게 됐다”며 “조총련은 귀국 신청서를 작성하며 각지에 귀국 대책 위원회를 설치했고, 니가타에 안내할 수송자와 관련해 일본 적십자 등도 조총련이 정하고 관리했다”고 했다.
그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는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문제엔 김일성이 있다. 김일성은 부족한 노동, 한국에 대한 정치적 우위 선점을 목적으로 조선인을 북한에 송환할 계획을 세우고 시행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9만 4천 명이 넘는 사람을 유괴해 인권을 박탈했다. 체재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을 적대 분자, 범죄자로 처벌해 수용소에 보냈다”고 했다.
이어 “하루 빨리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정치로 전환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은 타도될 날이 올 것이다. 김일성이 저지른 유괴 범죄는 김정은이 보상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 사업을 추진해 김일성 축하 생일 선물로 수많은 사람을 북조선에 보낸 조총련을 단죄한다”며 “지금 탈북 귀국자들 중 일부가 김정은을 피고인으로 세우고 허위설명으로 사람들을 유괴한 귀국사업의 인도 범죄 피해를 회복하라고 동경 지방 재판소에 재판을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특별히 이 자리에는 북한에서 탈출한 한국인 남성 A 씨와 일본인 여성 B 씨가 증언자로 나섰다.
A 씨는 “저희 부모는 한국에 고향을 둔 사람이고 전 일본에서 태어났다. 1961년에 북한에 갔고 2007년에 62살이라는 노인이 돼서 탈북했다. 약 45년만에 자유를 얻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며 “우리 가족은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아 북조선에 갔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렇게 불행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고통을 한 마디로 할 수 없다. 가장 힘든 것은 배가 고픈 것을 참는 것과 자유를 박탈 당한 것이었다. 수백만 사람이 굶어 죽어 갔으니 다음엔 내 차례가 될 것이란 두려움이 들었다. 감시와 통제, 밀고가 일상화됐다”며 “죽기 전에 자유와 인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나라에 가서 살고 싶었다”고 탈북 이유에 대해 밝혔다.
이어 “북한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나라다. 북한은 나라 전체가 철장 없는 감옥이다. 국민 전체가 자유와 인권을 박탈 당하고 유린 당하며 노예와 같이 혹사당하는 나라이고 독재 국가 제도가 아직 지속되는 나라”라며 “이런 국가 시스템을 알고 있었다면 재일동포 한 사람도 북한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생지옥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는 체험자, 희생자만이 안다”고 했다.
특히 B씨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강제북송 논란을 언급하며 “이 사건을 듣고 한국 탈북자를 언제든 북한에 강제 송환할 수 있음을, 더 이상 한국에 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선 안된다”며 “참혹한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한데 강제북송을 했다. 이는 한국 헌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변호사도 재판도 없었다. 한국 정부의 강제북송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또 북한에서 온 일본 측의 NGO 부대표는 “9만명이 넘는 사람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간 일은 현대사에서 드문 일이다. 귀국이 아닌데 귀국 사업이라고 사람을 세뇌시키고 호도하면서 북송사업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며 “북한에 억류된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다각적으로 그들의 처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물망초 합창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물망초 측은 이 세미나 이후 동경에 위치한 한인교회, 온누리교회 등에서 북한의 참혹했던 삶과 탈북 과정을 간증하고 일본 타쿠쇼쿠 대학 인근에서 개최된 북한인권영화제에 참석했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세미나가 180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끝났다. 한국에서는 홍일표, 하태경, 송희경 의원과 황우여 전 의원님, 일본에서는 자민당과 민주당, 입헌민주당에서 나카가와 의원, 아베 의원, 백진훈 의원 등 8분의 의원님이 참석했다”며 “3시간이 넘도록 북송 과정과 결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했다”고 했다.
또 “신주쿠지역의 온누리교회에서 찬양하고 간증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며 “일본어로 같이 찬송가를 부르고 모두 함께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고 간증하는 시간에 감사와 은총이 넘쳐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