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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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3. 유대민족의 우수성과 아브라함

외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 이들 이방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은 유대인 사회에 항상 존재하였다. 마카비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저항운동이 있었던 때에도 유대인들은 상류층 중심으로 헬라문화를 수용할 뿐 아니라 그에 동화되는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헬라문화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헬라의 스파르타인과 유대인이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인 한 형제로 인식하는 전승이 퍼지기도 하였다(마카비 상 12:21). 그런 점은 헬라인들의 족보를 아브라함까지 연결시키려는 노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방문화에 우호적인 이러한 입장은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요세푸스에서 더욱 돋보인다. 이들은 헬라문화와 유대교 사이의 영적 연결고리를 제공함으로 유대교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필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식에 관하여 가장 원초적인 모형이다. 필로의 가장 큰 관심은 비 유대교 사회 속에서 유대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필로는 아브라함을 중요한 인물로 부각시켰다. 구약 주석과 아브라함에 관한 두 권의 책에서 필로는 네 가지 관점으로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있다.

(1) 아브라함은 유대인이 아니라 갈대아 출신으로 외로운 나그네 생활을 하였던 외국인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유대인의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이전 성향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2) 아브라함은 참 신앙의 모형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가문의 고귀함이나 순결함이 아니고 영적인 고귀함이다. 초기의 아브라함은 점성술에 몰두하는 잘못을 범했는데, 자신의 고향을 떠나면서 그런 잘못에서 벗어나 참 신앙인으로 돌아왔다. 필로에게 점성술은 영적 고귀함이 결여된 낮은 수준의 지식을 의미했다;

(3) 아브라함은 이성과 계시, 자연과 토라를 조화시키는 최고의 전형이다. 아브라함은 모세를 통하여 토라가 계시되기 이전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준수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준수한 법은 과연 무엇일까? 필로는 그것이 자연의 법, 곧 양심의 법으로 스스로 자신을 가르치는 법이라고 보았다. 아브라함은 자연법을 추구하는 인물인데, 그러한 자연법은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4) 아브라함은 모든 개종자의 모형이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다. 아브라함이 자연법을 지킨 인물이라면, 그는 영적으로 유대교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최초의 개종자로서 그 이후에 있게 될 모든 개종자들의 모형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자신의 부도덕한 삶을 버리고 영적 진리를 추구하면, 그는 아브라함처럼 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하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제일차 유대인 전쟁에 직접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로마의 전쟁 포로가 된 것을 계기로 로마 황제로 등극했던 인물과 친분관계를 맺었다. 그 후 그는 로마로 건너와 지내면서 '유대인 전쟁사'(The Jewish War)와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를 저술하였다. 이중에 '유대 고대사'는 유대백성의 전체 역사를 개괄한 것으로서 천지창조에서부터 로마와의 전쟁 발발까지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요세푸스는 이스라엘 족장들의 전승구조 안에서 아브라함을 중요한 인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필로와 마찬가지로 요세푸스도 아브라함을 갈대아 출신의 비 유대인으로 소개한다. 그는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토라나 할례에 관하여는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세계의 모든 민족과 갖게 될 관계성 곧 유대교의 세계주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계통을 통하여 나바티안이나 프톨레미왕조와도 연관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결국 아브라함은 세계 모든 민족이나 왕국의 조상으로서 위대한 문화를 창시한 인물이었다.

필로와 요세푸스는 유대교가 분리주의나 국수주의적 종교가 아니라 개방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의 개방성이란 종교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교의 영적인 위대함이나 탁월한 도덕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유대교만을 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가야 할 모형으로서의 인물이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도 제시한 인물이다. 유대교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다른 종교보다 더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한 필로와 요세푸스의 노력으로 당시 유대교에는 다른 종교보다도 더 많은 개종자를 확보할 수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의 우수성 입증에 절대적으로 공헌한 인물이 아브라함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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