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 칼럼] “결혼은 현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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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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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나 집, 교회, 학교를 오가며 살던 나는 대학에 들어간 뒤로 청춘을 허비하며 부어라 마셔라 방황을 시작했다. 왜 사는지, 왜 죽는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죽음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자랐고 세례도 받았고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원으로도 섬겼지만,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다른 종교들에서, 사회 정의와 인본주의 안에서 찾으려 애썼다.

1990년대 초반에 나는 이미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그들이 만드는 잡지를 읽고 그들이 쓰는 용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어떤 책에서도, 종교에서도, 봉사활동에서도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겉으로는 밝고 자신감 있게 보이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우울하고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언니가 성경공부 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응했다. 여기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그나마 다니던 교회도 이제는 떠나리라 마음 먹었다. 스물 일곱의 나는 마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그렇게 간절했다.

그리고 마치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어둠 가운데 혼자서, 외마디 외침처럼 마음속으로 불렀던 그분이 나를 그 작은 성경공부 모임에서 만나 주셨다. 나는 예수님과의 첫사랑의 달콤함으로 하늘을 날듯이 살았고 길을 가면서도, 지하철에서도 성경을 읽었다. 이전의 나답지 않은, 전혀 새로운 내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술잔을 엎어버린(?) 나를 기이히 여기던 이전의 친구들은 차차 나로부터 멀어져 갔고, 술을 마셔도 깊은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던 내가 찻잔을 앞에 두고도 몇 시간이고 심오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이 너무 놀랍고 감사해 청년회 리더 모임이며, 각종 수련회며, 신앙훈련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모임이며, 철야예배며, 새벽예배며… 밤낮으로 다녀도 지칠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때 나는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보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성”을 추구하던, 좌충우돌 늦깎이 청년이었다. 자연히 나의 결혼 기도제목 또한 그러하였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분이 주시는 배우자와 결혼하겠노라’ 결심하고 기도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시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냐, 하나님께 순종해야지. 어떤 사람과 결혼하라 하시든…’ 하며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마음이 오락가락 요동치던 나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결혼은 현실이란다.”

꾸지람도 비난도 아닌, 철딱서니 없는 딸에게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의 충고랄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라는 표현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조심스럽게,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표현이라는 점에는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음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였다고 믿는다. “결혼은 현실이다.”

그 시점으로부터 나의 결혼 기도제목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여전히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는 결혼이길 바랐고 계속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지만, 결혼이든 다른 무엇이든 이 땅에서의 삶이란 현실에 뿌리박은 것임을 시나브로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에 남편을 소개로 만났고 많은 커플들처럼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초스피드로 연애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목발과 지팡이를 짚고 걷는 장애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 나의 자질구레한 결혼 기도제목들에 응답해 주셨다. 어떤 기도제목은 “Yes”로, 어떤 기도제목은 “Wait”로.

어떤 기도제목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No”인 것 같았는데 사실은 너무도 정확한 “Yes”였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나는 현역으로 군대 갔다 온 형제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남편은 장애로 인해 군 면제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 기도제목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No”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확히 “Yes”였다. 내가 군대 갔다 온 형제를 원했던 것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힘든 시간을 경험하고 통과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남편은 어쩌면 2~3년 군생활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을 거의 평생 동안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떤 기도제목은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응답되고 있는 중이다.

결혼 기도를 통해 나는 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배웠다. 그렇게 오래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결혼 이후에 때로는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누리며 감격하고, 때로는 이대로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좌절하며 비참해하고… 그러면서 “결혼은 현실”이라는 명제를 나름대로 체험해오고 있는 중이다. 비록 하늘을 날아다니지는 못하고 있지만, 땅에서 하늘을 사는 법을 날마다 조금씩, 느리게 배워가고 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부족하고 연약하며 완악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새삼 감사하게 되는 한편, 현실을 무시한 채 하늘을 날겠다며 자기 의로 충만하여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온 발걸음들을 잠시 돌아보며, 곧아지려는 목과 등뼈를 움직여 허리를 굽히고, 저는 다리를 움직여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현실에 뿌리박고 땅에서 하늘을 살고자…

남정현
/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기독교 출판사 ‘진흥’, ‘국제제자훈련원’과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구 은평천사원)’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결혼 후 남편, 딸과 함께 도미하여 워싱턴주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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