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신약과 아브라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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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1. 공관복음과 아브라함

나사렛 예수의 생애는 최초의 마태, 마가, 누가의 세 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들 세 복음서는 같은 관점에서 각기 다른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세 복음서는 ‘공관복음’이라고 명명된다. 공관복음서가 소개하고 있는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하여 활동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유대교를 개혁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본질을 상실하고 외형적 경건에 빠진 유대교를 본래의 상태로 돌리려는 노력이 곧 예수가 의도했던 바였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구제와 기도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당시 유대인들이 구제와 기도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를 보이려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마 6:1-8). 그래서 예수께서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구제하고 기도할 것을 교훈하셨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도 당시 유대인들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오히려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갖가지 불법을 저질러졌기 때문이었다(막 11:17).

그러한 유대교에 대한 태도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지켜온 종교 제도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그것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들 역시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위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할례를 행하였으며, 인식일과 유대인 명절들을 잘 지켰고, 일상생활 속에서 정결의식을 철저히 준수하였다.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정기적으로 성전예배에 참여했고 회당에서의 기도도 빠지지 않았다(행 2:46; 5:42). 그들이 회당에 기도할 때 암송하였던 ‘18개 기도문’(쉬모네 에스레; 아미다)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방패’ 등으로 지칭되었다.

복음서 속에 나오는 예수는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마태복음 첫 장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언급된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거명된 것은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예수의 족보 전체를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세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14세대, 바벨론포로기 이후 그리스도까지 14세대라고 밝히는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까지의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 어떠한 공백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최고 정점을 이루었음을 강조한다.

유대교를 개혁하려는 의도는 세례 요한의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자신들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이라는 잘못에 빠졌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참 백성은 형식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 자신을 회개하고 올바른 삶의 열매를 맺어야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역설하였다(마 3:7-10).

누가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인가는 예수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동서로부터 온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서 식탁을 나누게 되지만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서 그 주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였다(마 8:11-12).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도로 이방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오게 된다는 구약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사 2:2-4; 슥 8:22-23). 그러나 여기에는 구약 내용과 다른 새로운 내용이 나온다. 구약에서는 이방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 때문에 복을 받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본 나라 자손인 이스라엘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난다. 오히려 동서 사방에서 온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식탁에 참여한다. 이것을 두고 최초의 반유대주의적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식탁의 중심에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함께 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본문이 반유대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보여주면서 모두가 가버나움의 백부장처럼 신실한 믿음으로 돌아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특정 신분에 속하거나 자격을 갖춘 자들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서 예수는 18년 동안 귀신에 사로잡혀 앓으며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여자를 ‘아브라함의 딸’이라 하였고(눅 13:16),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여리고의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셨다(눅 19:9).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의 예언 속에서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신약시대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음이 강조됐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눅 1:72-73).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성취이며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이어받은 거룩한 자손들임을 보여준다.

거지 나사로 비유(눅 16:19-31)에서도 아브라함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죽어 음부로 내려가 고통을 당한다. 고통 중에 있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한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그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와의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있다는 이유로 그의 청은 거절되었다. 그러자 그는 나사로를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보내어 고통 받는 이곳으로 오지 않도록 다섯 형제들을 깨우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두 번째 청도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된다.

신약 당시 유대인들은 마지막 심판에서 아브라함이 자신들을 대변할 뿐 아니라 음부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보호자가 된다고 믿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얻은 의가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준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 아브라함은 유대인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무작정 의존하는 유대인들의 형식적 신앙을 지적하면서 아브라함 자손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강조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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