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코로나19 사태와 ‘돈데 보이(Donde voy)’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확산되면서, 종교계의 대처가 여론을 도배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은 신천지를 해체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20만명을 넘어서게 했다. 이처럼 종교계가 마치 코로나의 진원지처럼 비춰지고 있다.
한국 천주교는 16개 모든 교구가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했다. 한국 천주교 236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법회, 성지순례 등 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각 종단마다 예배나 미사, 법회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행사를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국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모든 종교계의 신중한 판단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는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서울의 대형교회를 비롯해 주요 교회 상당수가 이에 동조했다.
“국민들과 성도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중계했다. 서울 온누리교회나 확진자가 나온 소망교회·명성교회를 비롯해 새문안교회·덕수교회·도림교회·금란교회·삼일교회·서대문교회·오륜교회·잠실교회 등과, 경기도 인천 주안장로교회 등도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교단까지 나선 경우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는 지난 달 26일, 주일예배를 가정·온라인 예배로 드릴 것을 권고하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교단까지 나서 주일 현장예배 자제를 권고한 것이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도 “각 교단 지도 아래 개별교회의 당회가 주일예배를 잠정 중단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반해 서울의 적지 않은 교회는 이날 현재 여전히 현장 주일예배를 고수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예배는 유지되어야 한다’, ‘한 번 중단된 예배는 쉽게 재개되기 힘들다’, ‘예배 중단이 길어지면 교회공동체가 와해되거나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약화될 것이다’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예배 중단은 인류 근세 종교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은 전쟁만큼 더 무서운 일인 것 같다. 개인의 위생이나 이단 사이비에 대한 경각심을 이렇듯 크게 가지고 전 세계가 각성한 계기도 드물 것이다.
생명과 신앙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여 예배를 중단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교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그러기에 예배는 교회의 기본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예배를 중단한 경우는 없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교단이 폐쇄를 당한 경우는 있었지만, 결국 예배를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생(生)과 사(死)가 갈렸던 6.25 전쟁의 포탄 가운데서도 예배는 중단되지 않았다.
물론 요즘 한국교회를 향한 시선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일예배를 드리면 나쁜 교회이고, 주일예배를 안 드리면 좋은 교회’라는 이상한 프레임이 퍼지고 있다.
이런 프레임은 ‘주일’과 ‘예배’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일이다. 여기에 헌금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들, 성도들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려 예배를 중단해야 한다”는 소리를 높이는 목사 장로들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주일 대예배 중단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목회자 기관까지 등장했다.
또 “우리의 신앙 형식이 세상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의 집단적 이기심이지 이 세상을 향하신 생명의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뜻까지 들고 나오는 연합기관도 나타났다.
신앙이나 예배는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이상, 누구도 간섭하거나 억압할 수 없는 선택사항이다. 주일성수의 신앙은 자유이고 자율의 영역이다. 엄밀히 말하면 생명처럼 소중한 예배에 참석하고 안하고는 선택적 자율의 문제이다.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예배 중단은 ‘바이러스가 올 수 있다’는 염려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안 올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정부와 달리 국민 전체의 위생과 예방, 확산을 방지할 책임이 있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교회에 돌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교회는 방역 체계에 협조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방역을 최대한 해서 예배에 참석하고, 출입시 세정 및 방역 마스크, 체온 체크 등 할 수 있는 예방을 다하면서 예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교회나 목회자, 성도들 모두, 예배를 위해 모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플까.
멕시코 난민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돈데 보이(어디로 가야만 하나요?Donde voy)’라는 곡이 있다. 힘겨운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 그리고 어렵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멕시코 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절규의 노랫말이다.
이처럼 주일이면 문이 열린,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아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Donde voy)’를 묻는 수많은 신자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지금처럼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적도 없는 것 같다.
‘교회의 예배 중단’과 ‘온라인 예배’라는 표현은 유감이다. 갑작스런 코로나19로 교회가 예배를 쉰다는 것과, 예배를 유튜브, 인터넷, 스마트폰, 방송으로 드린다는 결정은 교회의 존립에 대한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된다.
그럼 주일예배를 대체하는 것은 ‘온라인 중계’인가, ‘온라인 예배’인가? 온라인 중계를 ‘예배’로 인정할 때부터, 예배당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앞으로 예배는 방송시설만 있으면, 아니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로 발송해 중계하고 헌금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럼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안나가 신자’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공교회의 온전한 예배는 ‘회중’이 필수적이다. 회중이 모이지 않으면 예배가 성립되지 않으며, ‘성도의 교제’가 없는 예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코로나19로 하나님 앞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신앙 지키는 일과, 세상에 불어닥친 생명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일 사이에서 교회의 고민이 크다.
교회는 이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 못지 않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영혼과 신앙의 길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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