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운 칼럼] 기독교와 빨간 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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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빨간 머리 앤이 기독교와 가깝다?
목사와 혼인한 루시 M. 몽고메리
앤이 보고 느끼는 기독교
앤은 자기 마음대로 걷지 않는다

<빨간 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이 책의 독자를 10대 소녀들로 예상했다. 그러나 남자 대학생, 할머니, 할아버지,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독자들로부터 수백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결국 앤 시리즈는 10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앤이 기독교와 가깝다는 걸 모르는 이가 많다. 드라마나 전시회 등을 통해 '재해석'된 앤은 오히려 기독교와 정반대로 달리고 있고, 참된 앤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독교의 흔적들을 꺼내 보았다.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 저자의 바탕부터 살펴보자.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의 선조들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캐나다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겼고, 성실했으며, 가족을 중시했고, 신념, 검소, 포부라는 전통을 이어 가는 사람들이었다. 몽고메리는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을 쓸 때 미혼이었으나, 앤을 출판(1908)하고 3년 뒤 이완 맥도널드 목사와 결혼했다.

<빨간 머리 앤>은 나이 든 오누이가 남자 아이를 하나 입양하려다가 실수로 여자 아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앤은 우여곡절 끝에 커스버트 남매와 살게 되고, 처음으로 기도(祈禱)란 걸 배우게 된다. 마릴라는 기도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앤의 말에 놀라며 하나님은 아느냐고 묻는다. 앤의 대답은 이랬다.

"하나님은 영혼이요,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시며, 그 안에 지혜와 힘과 거룩함과 정의와 선함과 진리가 있어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내용이다(제4문 답). 앤은 이를 어디서 배웠을까?

"고아원의 주일학교에서요. 교리문답서를 모두 외우게 했거든요. 저는 그걸 좋아했어요. 거기엔 멋진 단어들이 많거든요.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시며', 참 장엄하지 않아요? 마치 커다란 오르간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꼭 시(詩)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처럼 들리는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주기도문(主祈禱文)을 배운 후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게 좋아요. 주기도문은 아름다워요. ··· 이건 시는 아니지만 시와 같은 감동을 줘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 이건 한 줄의 음악 같아요. 아, 이걸 배울 수 있게 해 주셔서 참 기뻐요."

이런 앤이지만 모든 기도를 기뻐하는 건 아니다. 벨 장로님의 기도에는 비판적이다.

"장로님은 하나님께 얘기하고 있었고, 기도하기를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 장로님은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셔서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앤이 닮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종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정말 몰랐어요. 전 항상 종교는 약간 우울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앨런 부인의 종교는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앨런 부인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요. 전 벨 장로님 같은 기독교인은 되고 싶지 않아요."

마릴라는 엄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벨 장로님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건 아주 버릇없는 짓이야. 벨 장로님은 정말 좋은 분이다."

앤은 수긍하지만 예리하게 덧붙인다.

"물론 좋은 분이죠. 하지만 벨 장로님은 신앙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얻는 것 같지는 않아요."

목회자는 이렇게 본다. (조건을 주시하라)

"제가 남자였다면 목사가 되려고 했을 거예요. 신학적으로 올바르다면 목사들은 사람들에게 좋을 영향을 줄 거예요."

성도(聖徒)의 교제엔 이런 반응이다.

"목사님 부인(夫人)과 친구가 되면 여분의 양심을 더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한다.

"전 정말 착해지고 싶어요. 마릴라 아주머니나 앨런 부인이나 스테이시 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이분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어져요. 하지만 린드 아주머니와 있을 땐, 전 늘 아주 못된 아이가 되는 것 같고, 아주머니가 못 하게 하시는 일만 하고 싶어져요. 참을 수 없이 그런 유혹을 느껴요. 제가 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너무 못되고 신앙으로 거듭나지 못해서 그런가요?"

앤은 쾌활한 소녀지만, 반성(反省)의 소녀이기도 하다.

"자수정 브로치 사건을 계기로 제 물건이 아닌 걸 함부로 만지는 버릇을 고쳤고요. 유령의 숲은 상상에 빠져서 헤매는 버릇을 고쳐 주었어요. 진통제 레이어 케이크 사건은 요리할 때에 부주의한 제 습관을 없애 주었잖아요. 또 머리에 염색을 해 본 뒤로는 허영심도 고치고요. ··· 오늘 실수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걸 좋아하는 버릇을 고쳐 줄 거예요."

이제 <빨간 머리 앤>의 마지막 문장을 밝힐 차례다. 사실 이 문장은 작품(1권)을 끝까지 읽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적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고민했으나, 기독교의 흔적을 내놓기로 했으니 마저 쓴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부디 작품 전체를 읽어 이 구절을 다시 만나게 되길 소망한다. 진심으로. 간절히.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고, 세상은 공평하도다."

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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