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초심을 늘 지켜주길
4.15 총선이 끝났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선거전임에도 불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둔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선한 후보자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당선자는 낙선자를 ‘위로’하고, 낙선자는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찌 보면 당선자나 낙선자나 똑같이 지역 발전과 경제 회생, 국민들의 안전한 삶의 질 보장으로 행복하고 잘 사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같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선자는 먼저 손 내밀어 여러 갈래로 나뉜 민심을 하나로 만들 책임을 지고, 선거로 분열됐던 민심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바란다.
갈등과 반목은 실질적으로 지역 사회발전에 장애가 되고 정치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민생 현장에서 눈물을 닦아온 그 실력으로 약속의 4년 동안을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기대하며, 사회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화시켜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어가는 역할로서, 민생 안정을 위해 지역 이기주의 갈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각 지역 사회에는 수많은 과제들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한 표 한 표를 모아 준 지역 주민들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유권자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의정활동을 통해,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견제와 균형, 비판과 타협의 정치를 실천함으로 칭찬 듣는 일꾼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오래도록 정도를 걷는 큰 정치인,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한다. 정치가는 많으나 좋은 정치인은 얼마 안 된다. 이는 역사가 평가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결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열심히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공약과 정책 논의가 실종된 ‘깜깜이 선거’였다. 건전한 정책·공약 경쟁도 사라졌다. 각 정당의 정책들은 하나같이 기존 정책을 재탕, 삼탕한 수준이었다. 공약 및 정책을 급히 만들거나 과거 사례를 그대로 반복했다.
말로야 뭔들 못할까. 지역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재원 마련 근거도 없는 공약 남발은 참 실망스런 일이었다.
당선자는 선거 때 내세운 공약과 낙선한 후보의 공약도 차별화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검토하여, 실천될 수 있도록 해주기를 요청한다.
정치는 결코 높은 곳에 있지 않다. 정치는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것은 정치의 시작이자 발로이며, 이는 대의정치의 기본이다.
그런 비전과 정책 능력도 없고 의정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상갓집 같은 곳만 돌아다니거나 지역 행사에만 얼굴을 비추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착각하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주문한다. 국민들의 혀를 차게 하는 각종 엉터리 정책에, 지역 의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하고 행동대장이나 하는 정치로부터 벗어나야 국회가 산다.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이 몸싸움을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볼 때, ‘정치 불신’은 계속된다. 진영 싸움에 능하거나 중앙당 지시에 따른 거수기나 돌격대 역할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총선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을 선택하기보다, 거대 양당 간 대결의 장이었다. 이성과 합리, 실용의 완충지대가 실종됐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중도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대 양당의 구심력에 의해 끌려들어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저쪽 편은 무조건 나쁘다는 진영논리에 함몰될 수도 있다. 제3정당이 소수인 상태에서, 거대 양당이 대선을 겨냥해 정국 주도권 다툼을 벌일 경우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결이 난무하는 ‘동물 국회’가 재현될 수 있다.
국민들 눈에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보이는 짓 좀 하지 말고, 앞으로 4년간 상생할 줄 아는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정도를 걸어갔으면 한다.
혹시나 현실 정치에 휘둘려 국민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가능하면 중도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면 싶다. 그래야 국회가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정치가 그나마 살아날 수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의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무엇보다 작년에는 정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는 눈사태가 시작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적 난제가 수두룩하다.
‘일단 쓰고 보자’에 쌓여가는 나랏빚, 그러나 미래를 보고 있는가? 눈덩이 국가부채를 보고도 돈 풀기 경쟁을 할 때인가. 재난지원금, 후폭풍 대책은 있는지,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동네마다 골목식당이 어렵다고 한다. 청년들은 실업자 신세다. 당선의 기쁨에 안주하기에는 지역 경제가 너무 엉망 상태까지 와 있다. 즉 모든 열과 성을 다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에 매진해도 부족하다. 경제가 너무 힘들 때, 경제를 살리는 그런 정치 리더십을 발휘 했으면 좋겠다.
비례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투표는 최대 난제였다. 군소정당의 국회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 거대 양당의 횡포로 훼손됐고, 비례만 노리는 군소 비례전용정당의 난립으로 정책이나 정체성, ‘가치’ 등을 따져가며 투표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대정신의 변화를 읽지 못한 올드보이들의 경로당 같은 정당은 자연히 도태되었고, 기독자유통일당의 선전이 돋보였다. ‘비례’라는 이름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의원들도 대거 탄생했다.
‘비례’라는 본래 취지대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선거가 끝났으니, 최대한 빨리 경기 규칙은 명료하고 셈법은 간단하며, 적용은 꼼수의 여지없는 제도 개혁과 국회 개혁을 촉구한다.
“국회의원이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다짐하고 호소했던 그 마음과 그 자세 그대로 지니고 실천하면 얼마나 좋을까.
유권자와 소통한 것을 항상 가슴 깊이 되새기며, 공약 이행사항을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말없이 자신의 일을 하는 선량한 국민들의 눈물과 한숨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초심을 늘 지켜주길 바란다. 금배지 달았다고 괜히 목에 힘주지 말고, 낮은 자세로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대정부, 대사회적으로 ‘갑’이 되어 당당히 할 말을 다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지역민들에게는 항상 ‘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누구보다 잘한다’는 권력의 오만함이 아니라, ‘누가 해도 나보다 잘 할 것’이라는 일꾼의 겸손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복지에서 소외된 사각지대가 없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나 노인들, NGO와 다문화, 탈북민 같은 이들에게까지 손길이 닿는 생활정치가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를 위해 여야를 떠나 국민과 소통하고 시대와 민심의 흐름을 읽으며, 지역과 나라를 걱정하고 위기극복을 위해 헌신하는 의원!
물론 꿈같은 이야기이겠지만, 그렇게 국민에게 사랑받는 21대 국회가 됐으면 한다. 유권자는 당선자를 알고 있다. 국민은 현명하다. 그래서 항시 지켜보고 있다.
이효상
칼럼니스트/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근대문화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