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의 성령론(86)
그런데 가정이나 직장 공동체 속에 혹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공동체 안에서 되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육신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자주 기울어지곤 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분명히 그 공동체가 아직 영적으로 많이 성숙해가야 한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1-3)
그러므로 그 공동체 속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철저한 자아 부정과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의 실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성화의 과정은 죄성에 대한 지속적인 억제가 있어야 하며, 또 더 많은 진리의 빛을 받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성령 안에서 각 개개인의 치유와 회복의 단계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는 공동체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한 진리를 묵상하고 고백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은 진정한 영적 생활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온전히 헌신된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진리 안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진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일과 직결되는데, 이러한 연합의 띠는 바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예수 믿는 신자와 연합되는 체험 가운데로 이끌어 가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의 매개를 통하여 예수 십자가 죽음의 체험과 부활의 체험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동일시(同一視) 인식이 거듭난 영혼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 그리고 이것이 곧 성령충만한 생활,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생활로 들어가는 방법임을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십자가를 경험하는 것이며, 이럴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는 죄가 원칙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공동체가 죄의 유혹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신다. 공동체 속에서 이러한 십자가의 죽음을 함께 고백하며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영화롭고 능력 있는 일인가? “영적으로 성숙한 공동체의 특징은 놀랍도록 활력 있는 영적 일치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Preston Leigh) 그런 공동체는 그들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삶의 유혹과 시련을 넉넉히 견디어 낼 뿐 아니라, 또한 날마다 마귀의 세력을 짓밟아 승리하는 간증으로 넘쳐날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 말씀은 거룩함의 완전을 이룬 자는 육체의 욕심이 완전히 사라져서 다시는 그 욕심이 인생 속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이 말의 참된 의미는, 언제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죄의 욕심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이 말씀의 표현은 성결한 능력의 근본적인 현주소를 정확히 기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주님께 드린다면, 죄와 육체의 소욕 그리고 율법의 요구는 우리 안에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그러므로 죄를 이기는 성결한 공동체를 직접적으로 가능케 해주는 요인은,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영을 얼마나 충실히 따라 행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볼 때 공동체 안에서의 성화의 과정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성화의 적극적인 면은 활기를 주는 것 즉 새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며, 그리고 성화의 소극적인 면은 억제하는 것 즉 옛사람을 약화시키고 죽이는 것이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