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칼럼]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 (크리스천투데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서울 쌍문동 올람교회, 2020. 5. 24. 11시
설교 본문: 요 14:1-3, 고후 5:1-2, 골 3:1-2, 벧후 3:13, 계 21:1

▲김명혁 목사. ⓒ크투 DB

▲김명혁 목사. ⓒ크투 DB

저는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후 그 다음 주일부터 지난 12년 5개월 동안 거의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14일 주일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올람교회에 처음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내가 좋아하는 12가지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고백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지난 2019년 12월 8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간증적인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0년 5월 24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김은숙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김은숙 목사님이 금년도 올람교회의 표어가 ‘올람을 사모하는 삶’이라고 말하면서 교회의 표어와 관련된 설교나 올바른 가정이나 올바른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올람’이 ‘영원’이란 말이기 때문에, 오늘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초점은 땅과 세상이 아닌, 하늘과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 가장 귀중한 삶이, 땅과 세상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1. 천국을 가리키며 사셨던 예수님

첫째로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사셨고 천국을 가리키시면서 사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마 14:19)”.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실 때도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면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 드리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에 쌓인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도 하늘에 있는 아버지 집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1-2)”.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도 하늘을 향하여 성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친히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0-11)”.

성자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늘을 바라보시고 또 바라보시면서 사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또한 제자들에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산상설교의 초점은 하늘과 천국이었습니다. 팔복의 내용은 땅과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과 천국의 복이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행함도 구제도 기도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의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쌀아 두라(마 6:20)”. 무엇을 하든지 하늘과 천국을 바라보면서 행하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하늘을 바라보는 천국 소망

둘째로,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은 모두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서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창 15:5)”.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창 28:12)”.

모세가 시내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산 꼭대기에 강림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출 19:20)”.

다윗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다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왕상 8:54, 대하 6:13)”.

히스기야왕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대하 32:20)”.

느헤미야도 하늘의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느 1:4)”.

신약에 들어와서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 당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 7:55)”.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다음부터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을 사모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나니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 5:1-2)”,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사도 베드로도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사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3-16)”.

사도 요한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계 4:2)”,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계 5: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계 6: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계 21:1)”.

사도 요한은 그의 마지막 삶을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3.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던 신앙의 선배님들

셋째로, 교회 역사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도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어거스틴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이야말로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서기 410년 알래릭이 이끄는 동 고트족의 군대가 로마를 함락하고 불태웠을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망했다고 절망에 빠졌었습니다. 대표적인 보수 신학자인 제롬도 이제는 “온 세상이 한 도성과 함께 망했다”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신국론>이란 책을 쓰면서, 로마 도성이 망한다고 하나님의 도성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현세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이원론자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세를 잠정적이고 어둡고 덧없는 과정으로 보았고 하늘을 영원하고 밝고 복된 곳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무엘하 7장 10절 이하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솔로몬의 시대에는 물론, 어떤 다른 시대에도 성취된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도 큰 축복이 현세에서 그리고 땅 위에서 성취되기를 바란다면 그의 지혜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변화무쌍한 인간 사회 안에서는 그와 같은 큰 평안과 축복이 결코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된 평화롭고 안전한 처소는 영원한 처소인데 그것은 참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게 될 자유의 어머니인 하늘의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신국론, 17:13)”.

어거스틴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도성과 왕국에 대한 예언이 현세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유세비우스의 현세주의적 낙관주의를 어리석고 모순되는 것으로 일축했습니다. 현세에는 행복도 평안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이 약속이 현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극히 염치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 단 한 명의 성도가 현세에의 비참 가운데서 눈물이나 고통 없이 살고 있거나 살아왔거나 또는 살게 될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며 주장할 만큼 어리석고 맹목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 라는 고백이 하늘의 도성 예루살렘의 시민의 고백이 아니었는가(신국론, 20:17)?”

어거스틴은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에서 완성될 영원한 “신의 도성”인 천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신국론> 마지막 권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성화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쉬고 보며, 보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찬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이 없는 마지막에 이루어질 것이다(신국론, 22:30)”.

어거스틴은 결코 현세에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문화와 문명을 꽃피운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였고 목회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은 시대를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땅을 바라보지 말고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미국 유명한 칼빈주의 신학자요 부흥사인 조나단 에드워즈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친밀하고 달콤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걸으면서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엄위와 은혜에 대한 달콤한 느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것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나는 가끔 앉아서 달을 쳐다보곤 했고 낮에는 구름과 하늘을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달콤한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창조주와 구속주를 명상하곤 했다.”

얼마나 멋지고 귀중한 모습입니까?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친밀하게 느끼면서 산 것이 미국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부흥사였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길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1만 독 하면서 암송을 했는데, 사도 요한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부흥회의 주제는 ‘회개’와 함께 ‘종말’과 ‘재림신앙’이었는데, 주로 ‘천년 왕국’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고난받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떤 무식한 학자는 길선주 목사님이 천국 소망에 치우치다 현세적 삶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비판했는데, 그런 비판은 무식하고 정신 나간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께서는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33인의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시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성봉 목사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재림 신앙’을 지니고 한평생 살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찧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는 간증을 중학생 때 직접 열두 번이나 들었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는 허무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한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하며, 재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상하고 허무한 이 세상에서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성봉 목사님은 허사가를 자주 불렀습니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 하리요….” 이성봉 목사님에게 있어 재림과 천국은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최대의 계획이요, 성도의 최대의 소망이다. 만물이 고대하는 소망이요 마귀를 진멸하고 세상을 심판하고 성도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당신의 신부들을 영접하시는 주님의 날이다.”

그리고 재림의 날이 임박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오리라, 도적같이 오리라는 약속을 굳게 잡고 요제인가 고제인가 눈물로 기다리는 주님의 재림, 천지는 변하여도 그 약속은 변치 않으시리라.

아무리 보아도 시대는 점점 절박하여 간다. 자연의 징조를 보든지, 국제 사회의 징조를 보든지, 교회와 인심의 징조를 보든지, 유대나라 독립하는 무화과 잎이 나는 것을 보면 재림의 복음을 믿는 자들의 가슴은 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재림을 준비하여야 한다. 깨어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 밝게 켜 들고 거룩함과 인애로 신 혼 신을 단장하고 공중 혼연을 고대하는 신부들은 복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나의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택한 신부 맞으시려 언제나 오시렵니까? 일구월심 오래도록 주님 생각 간절합니다. 사모하는 나의 주님 속속히 오시옵소서.”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설교에서나 삶에서, 그리고 우리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서 종말 신앙과 천국 소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세가 전부인 것처럼 현세에 집착하면서, 세속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성봉 목사님의 재림 신앙과 천국 소망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둔탁해진 우리들의 신앙을 일깨우는 청량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사랑’과 ‘종말’과 ‘천국 신앙’에 의해 지배된 삶이었습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내세와 천국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선생으로 죽음을 소원으로” 삼으며 천국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 손양원 목사님이 얼마나 간절히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사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손동희 권사님은 손양원 목사님의 천국 신앙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할 뿐, 현세의 안락과 풍요를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끔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찾아오는 병자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특별히 병 고침을 위한 안수기도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육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들면 어떻습니까? 병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잠깐인 나그네 세상에서 병신으로 살다가 천국 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다구요.’

이런 말로 병자를 돌려보낼 뿐이다. 나병 환자들과 평생을 같이 보내며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지만, 그들의 병든 상태를 나쁘다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님은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판으로 입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시면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순교적 믿음을 지킨 ‘믿음’의 사람이었고, 생명을 다 바쳐 나환자들과 원수를 사랑한 ‘사랑’의 성자였으며,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사신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땅만을 바라보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악해지고 복잡해 지고 무거워지고 어두워지고 근심 걱정 원망 불평에 쌓이게 됩니다. 신경 쇠약에 걸리게도 되고 여러 가지 병에 걸리게도 됩니다.

세상과 땅만 바라보면서 살던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취미는 땅에 떨어져 있는 단추와 바늘을 주어 모으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수많은 단추와 바늘을 주어 모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한 평생 동안 29,516개의 단추와 54,172개의 바늘을 주어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목과 허리가 굽어졌고 성질은 인색해졌다고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시편 주석 144쪽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대신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선해지고 단순해지고 가벼워지고 밝아지고 평안해 지고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마음과 몸과 영혼이 건강해 집니다.

저의 스승이신 예일대학교의 자로슬라브 펠리칸 박사님의 귀중한 고백을 인용합니다. “땅을 바라보면 비관주의자가 되고, 하늘을 바라보면 낙관주의자가 된다. 땅을 바라보면 우울한 사람이 되고, 하늘을 바라보면 밝고 즐거운 사람이 된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사는 것이 너무너무 귀중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이 너무 너무 귀중합니다. 하늘은 우리들의 아버지와 구주와 위로자이신 성부 성자 성량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우리들이 돌아갈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늘을 바라보면 하나님과 천국을 친밀하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이 하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손길을 친밀하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이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늘과 가까워지고 하늘은 우리들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우리들이 하늘을 바라보면 천국이 그리워지고 천국이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하늘의 뜻을 이루는 하늘의 심부름꾼들이 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의 모습이 하늘처럼 아름다워지고 신비로워집니다. 우리들이 하늘이 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중의 죄인인데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지니셨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조금씩 지니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특히 어릴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별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가 네 살 때 저의 곁을 떠났기 때문에, 더욱 더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붙잡고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두 손과 두 팔과 온 몸을 안겨드리면서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길 충성의 길 순교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을 속삭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프게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품에 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과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부족한 전도와 목회와 선교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된 수 많은 성도들! 부족한 나에게 눈물과 기도와 사랑을 쏟아 바친 수많은 성도들!

강변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구 곳 곳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 집으로 올라와서 다시 만나게 된 수 많은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 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2008년 8월 31일 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합니다. 저는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자주 꾸면서 한평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직 사각형의 나무 판자를 날개로 삼고 날고 어떤 때는 직 사각형의 종이 판자를 날개로 삼고 산 위로 또는 바다 위로 날기도 했습니다.

저는 산을 좋아하는데, 산에 오르면 언제나 날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오래 전 미국 하와이섬 바람 산에 올라갔을 때는 바람이 아주 많이 불어서 날고 싶은 생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꿈은 아니지만 꿈에서처럼 종이 판자나 나무 판자를 가지고 날기를 시도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행한 한 사람에게 종이 판자나 나무 판자를 찾아 오라는 부탁까지 했습니다.

사실 저는 판자를 손에 잡고 10미터 정도를 날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그 사람이 판자를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한 마디 더하면 제가 스위스의 알프스의 정상 융프라우에 올라갔을 때는 하늘을 만지는 듯한 뿌듯한 흥분과 감동에 쌓여 어쩔 줄 몰라 하늘만 쳐다본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한 가지 성향은 땅과 세상에 집착하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성향은 하늘과 영원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육체는 땅으로 내려 가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흙으로 지음 받은 몸은 땅으로 돌아간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육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육체와 세상 일에 집착하려는 성향과 영혼과 하늘 일에 집착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땅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고 권면했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 즉 하늘의 것을 생각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

땅의 것들은 음란한 것, 부정한 것, 악한 것, 정욕적인 것, 탐욕적인 것들인데 이와 같은 것들을 바라보거나 생각하지 말라고 분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땅에 집착하면 망합니다. 롯의 처는 자기 집과 재산에 집착하다가 망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재물과 돈에 집착하다가 망했습니다. 데마는 세상에 집착하다가 망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다가 주님 품에 안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도 요한도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길선주 목사님도 이기풍 목사님도 최봉석 목사님도 주기철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다가 아버지 품에 안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족한 저와 우리들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하늘과 연결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십시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아름답고 멋지게 살다가 죽으십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땅과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과 천국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귀중하게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선교 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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