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신분제는 언제 폐지됐을까? 1894년 갑오개혁?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백성들의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양반 출신들이 여전히 한반도의 땅을 착취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천민 출신들은 여전히 노예일 수밖에 없었다.
일제시대와 미 군정기가 지나고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최초 헌법이 제정된다. 이 헌법의 제86조에는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는 농지개혁 조항이 명시된다. 이제 ‘땅’이라는 것이 양반 출신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처럼 농지개혁은 천민 출신들에게 일할 땅, 그리고 자유를 줬다.
농지개혁은 천민 출신들에게 결과적으로 ‘신분제 폐지’라는 평등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그 시작은 노예 상태의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그럼 조선의 신분제보다 더한 불평등제도인 ‘성분제’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은 어떠한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자유다. 북한에 돈이나 쌀을 줘서 그 주민들을 구하겠다는 취지의 ‘햇볕정책’은, 평등을 자유보다 우선시한 나머지 북한에 돈이나 쌀을 줘서 평등을 먼저 이룬 후 개혁을 이루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그랬듯, 북한에 자유를 줘야 그 주민들이 돈과 쌀을 가질 수 있다.
6.25전쟁 중 북한은 남한 주민들에게 공산주의 방식으로 땅을 주겠다고 선동한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이미 1948년에 농지개혁이 완성되었기에 국민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았다. 농지개혁은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안보의 의미도 갖는다.
제헌헌법 제85조와 87, 88조는 국가의 무역 개입, 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가진 조항이다. 제헌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현민 유진오 박사는 독일 좌익의 영향을 받은 법학자였기 때문이다. 이 조항들은 사사오입 개헌 때 지워진다.
1948년 5월 10일, 최초의 총선거로 출범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에는 양반 출신의 의원들이 많았다. 때문에 제헌헌법에 농지개혁을 명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반 출신으로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인촌 김성수 의원이 농지개혁을 반대하지 않았다. 농지개혁은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기적’의 의미도 갖는다.
김성수는 대한민국 건국 세력이자 민주당(당시 ‘한국민주당’과 ‘민주국민당’) 창당 인물이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동권 출신 영입으로 현재 민주당은 반(反)대한민국 정당이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만들어진 지 72년 된 올해, 대한민국에서 ‘이승만’과 ‘김성수’라는 뿌리는 온데간데 없다.
황선우 작가 (전 세종대 트루스포럼 대표)
<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입니다>(8월 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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