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의 Engagement 22] 20세기의 영웅, 정당한 평가를
아브라함 카이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이퍼보다 위대한 인물, 이승만 첫 대통령
초대 대통령 정당한 평가 회복 위해 노력을
우리가 화란이라고 부르는 네덜란드는 유럽 대륙에 속해 있으며, 영토나 인구 면에서 아주 작은 나라이다. 네덜란드의 영토는 우리 대한민국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구는 1,750만 정도로, 우리 인구의 3분의 1 정도이다.
하지만 그 국력에 있어서는 영국이나 독일만큼 강한 나라이다. 그래서 화란은 오늘날 대한민국, 스위스와 더불어 강소국의 모델국가가 되어 있다.
네덜란드를 작지만 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이다. 그는 1837년 10월 29일에 태어나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 11월 8일 타계하였다.
카이퍼는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신학자였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네덜란드에서 소위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운동을 주도하였다. 카이퍼와 함께 신칼빈주의 운동을 이끈 신학자 중 한 사람이 카이퍼의 후계자였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였다.
신칼빈주의는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신학적 확신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독특한 신학사상을 전개했다. 그 중 하나가 일반은총(common grace) 사상이다.
일반은총이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일반은총 영역에 속한 것들은 태양과 비를 포함하는 자연만물, 그리고 학문, 예술, 문화, 교육, 정치, 언론 등 신앙적인 영역 즉 특별은총 영역을 제외한 모든 영역이다.
카이퍼는 신앙과 관련된 은혜는 믿는 자들에게만 베푸시는 특별은총으로 보고, 그 외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은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공히 은혜를 주신다고 믿었다.
물론 일반은총은 성경적 사상이며, 종교개혁자 칼빈을 비롯한 개혁신학의 선배들이 주창한 사상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상을 좀더 폭넓고 깊이있게 전개한 것은 카이퍼를 비롯한 신칼빈주의 신학자들이었다.
더 나아가 카이퍼가 주창한 신학사상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 사상이다. 영역주권이란 세계를 구성하는 각 영역은 그 자체의 독립성, 책임,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 국가, 과학과 예술등 모든 영역에서 주인되시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주권적인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사상이다.
카이퍼는 일반은총과 영역주권 사상에 기초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그는 정치 영역에서도 1879년 반혁명당을 설립해 당수가 됐고, 1901-1905년 네덜란드의 수상으로 재임했다.
교육 영역에서도 1880년 개혁신학의 산실인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을 설립하고, 1대 총장으로서 신칼빈주의운동을 체계화했다. 언론 영역에서도 1872년 De Standaard라고 하는 신문사를 창립하여, 네덜란드를 열린사회, 자유 국가로 만드는데 공헌하였다.
이 외에도 카이퍼는 네덜란드의 거의 모든 영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네덜란드가 작지만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에는 카이퍼와 같은 지도자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국부이자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이야말로, 카이퍼와 비견할 만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우남이 극복해야 할 상황은 카이퍼가 처했던 상황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남은 깊은 신앙과 불굴의 애국심으로 대한민국을 일제로부터 독립하게 하는데 놀라운 공헌을 했고, 이어서 대한민국을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자유민주국가, 열린사회로 세우는 혁혁한 업적을 이뤘다.
물론 이승만은 카이퍼와 같이 전문적인 신학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깊은 신앙의 사람이었고, 성경적인 세계관에 기초해 대한민국을 자유독립국가로 세우겠다는 탁월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우겠다는 이승만의 비전은, 프랑스 혁명의 인본주의적 사상을 거부하고 네덜란드를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에 기초한 열린사회로 만들겠다는 카이퍼의 비전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승만은 카이퍼와 같이 놀라운 추진력과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였다. 카이퍼는 당시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과감한 추진력과 실천력을 보여주었다.
이승만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 감옥에 갇혔을 때부터 그는 남다른 실천력을 보여주었고, 외교독립론에 기초한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건국과 6.25전쟁 후 국가 재건에 앞장서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카이퍼가 언론인이었던 것처럼, 이승만도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을 창간했다. 또 전후 56종의 일간신문과 177종의 잡지를 포함한 411종의 언론매체가 활동하게 하여 언론의 자유를 진착시켰다.
카이퍼가 교육자였던 것처럼, 이승만도 전후 의무교육을 실시해 10년도 되지 않아 초등학교가 2,800개에서 4,600개로 늘어났게 했으며, 중학교는 10배, 고등학교는 3.1배, 대학도 19개에서 68개, 대학생은 8천명에서 10만명으로 늘어났다. 또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1948년 문맹률이 80%에 달했던 나라를 10년만인 1959년 22%로 줄였다.
카이퍼와 이승만 사이에 있는 여러 유사점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승만이 카이퍼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믿는다. 신생 독립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세워져야 할 기초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승만은 카이퍼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식견과 혜안을 보여주었다.
이승만은 기독교 입국론은 통해서 대한민국이 세계 선교에 공헌하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소련과 중국을 삼켜버린 공산주의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한 국가로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절대적임을 인식하고, 한미상호 보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를 놓았다. 이렇게 본다면, 이승만이 카이퍼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평가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일부 세계사학자들은 이승만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나 영국의 처칠 수상보다도 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아니다. 중립적 차원에서 이승만의 역사적 업적과 의의를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세계사적 차원 또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차원에서, 이승만이 링컨이나 처칠보다도 위대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세계가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초대 대통령을 정작 대한민국 국민들이 공정하게 평가하고 존경하기는커녕, 도리어 독재자라는 이름으로 폄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민족 5천년의 역사 속에서 15세기 세종대왕과 16세기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영웅을 가졌던 우리는, 20세기에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영웅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승만의 신앙적, 역사적 유산을 잘 계승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우리가 이승만을 신격화하거나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승만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나아가 이승만의 유산을 잘 계승해 통일한국과 선진한국, 그리고 선교한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