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청교도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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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금세기 최고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현대판 청교도’로 불리던 캐나다 밴쿠버 리젠트 칼리지 (Regent College) 명예교수 제임스 인넬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6-2020)가 지난 2020년 7월 17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패커는 영국 성공회 저교회파 개혁신학 전통(the low church Anglican and Reformed traditions)의 대표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패커는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 1899-1981), 존 스토트(John Stott, 1921-2011)와 함께 20세기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패커는 영국 성공회 소속 목회자로 안수받았으며 생애 후반부에는 캐나다에서 활동했다. 1952년부터 1979년까지 영국에서 27년 동안 교수 및 설교 사역을 했다. 1979년 캐나다 밴쿠버의 초교파 대학인 리젠트 칼리지로 옮겨가 교수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역사신학 및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수석 편집자로 25년간 섬기며, 문화적 비판 주제(topics of cultural critique)를 자주 다루면서 신학과 기독교적 삶이 분리된 현실에서 신학이 어떻게 신앙을 도울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1996년 리젠트 칼리지에서 은퇴하고 명예교수로서 연구와 강의, 강연을 이어갔다. 연사로서의 패커의 유명세는 저자로서의 그의 모습에 필적했다. 패커의 전기 저자인 미국 희턴대 영문학 명예교수 라이켄(Leland Ryken)은 다음같이 패커의 청교도적 인물됨에 대하여 평가한다: “출판과 연설 두 영역에 있어서 패커는 청교도적 학자(a Puritan scholar)로서 유명했으나 또한 그는 그의 가르침이 일차적으로 미래의 목회자 교육을 목표로 하며 교회 위원회에 봉사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 헌신적 성직자(a dedicated churchman)였다.” 패커는 영국 출신으로 캐나다 밴쿠버의 리전트 칼리지의 초교파적 분위기에서 조직신학 및 역사신학 교수로서 "교육받은자, 개혁신앙가, 성공회교인, 복음주의자“(an educated, Reformed, Anglican, evangelical)라는 네 가지 특성으로 활동하였다. 이것은 그의 활동의 폭을 넓혔다.

I. 기독교 이후 시대를 향하여 정통적 복음주의 진리를 변호하는 저술활동

패커가 살았던 오늘날 시대는 유럽에 기독교 이후 시대가 도래하여 자유주의신학이 팽배(澎湃)해져서 자유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맹렬한 기세를 떨치던 시대다, 이처럼 ‘정통적인 복음주의’(orthodox evangelicalism)가 활력을 상실한 사상적으로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 패커는 복음주의 전통을 열정적으로 변호하고 수호하기 위하여 수많은 강연과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며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복음주의의 가치를 신학적으로 높이고 공고히 하는 사명을 다했다. 패커는 그의 93년 생애 중 70년을 저술 활동과 교수 사역에 힘썼다. 패커는 영국 성공회 안의 복음주의 그룹을 대변하며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의 위상에 견주어지며 성공회에 복음주의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애썼고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유산을 남겼다.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 속에서 무오한 성경의 권위를 지켰다. 패커는 복음주의 가치 수호에도 앞장서, 동성결혼에 찬성하던 캐나다 성공회(ACC)에서 탈퇴했으며, 자신의 성공회 주교 면허도 반납했다.
제임스 패커(J I Packer)는 1926년 7월 22일 영국 글로체스터셔(Gloucestershire) 북부 트위닝 마을에서 성공회 신앙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옥스퍼드 코르푸스 크리스티 칼리지(Corpus Christi College)에 입학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다, 신학으로 전공을 바꿔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성공회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신학교수로 봉직했다. 학위를 하기 전 버밍험에 있는 하-본 히스 교회에서 부목사(Assistant Curate of Harborne Heath in Birmingham 1952–1954)로 봉직하였다. 1954년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브리스톨에 있는 틴델 홀(Tyndale Hall, Bristol)에서 전임 강사(조교수에 해당하는 Lecturer, 1955–1961)로 가르치기를 시작하고, 옥스포드에 세워진 복음주의자들의 연구센터인 라티머 하우스(Latimer House, Oxford)에서 사서(司書)(Libarian,1961–1962), 학감(Warden, 1962–1969)으로 봉직했다.

패커는 다시 브리스톨로 돌아가 틴데일 홀의 학장(Principal of Tyndale Hall, Bristol, 1970)으로 봉직하고, 틴데일 홀과 클리프톤 컬리지(Clifton College)와 달톤 하우스-세인트 마이클스(Dalton House-St Michael's) 등 세 컬리지가 합하여 구성된 틴델홀의 부학장(Associate Principal, 1971-1979)을 하면서, 영국 성공회 신부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였다. 옥스포드의 라티머 하우스, 브리스톨의 틴데일 홀은 성공회 안에서 복음주의적인 목회자들을 키워내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1979년부터는 캐나다 밴쿠버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에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가르쳤으며, 명예교수에 올랐다. D. A. 카슨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교수는 패커 별세 후 다음날 7월 18일 패커 교수가 남긴 유산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중요성, 청교도 신학의 재발견 등을 꼽았다.

패커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권 이상 팔린 그의 대표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IVP); Knowing God/IVP (1973, reprinted 1993) 외에도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그 중에는 『근본주의와 하나님 말씀』,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 Some Evangelical Principles(1958; reprinted 1984), 『제임스 패커의 복음전도란 무엇인가: 복음전도 인간의 일인가 하나님의 일인가』; Evangelism and the Sovereignty of God (1961 by Inter-Varsity Fellowship) (reprinted 1991), Our Lord's Understanding of the Law of God (1962), The Church of England and the Methodist Church: Ten Essays (1963), God Speaks To Man: Revelation and the Bible (1965), 『제임스 패커의 절대진리:성경은 왜 우리 인생을 걸 만한 책인가?』(국제제자훈련원, 2019); God has Spoken(1965), 『인간을 아는 지식』; Knowing , Man (1979), 『성령을 아는 지식』;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청교도 인물사』 (CLC, 2020); Puritan Portraits,(Christian Focus Publications, 2012) 『제임스 패커의 절대 진리』, (국제제자훈련원, 2012); 『기독교 기본진리』, (아바서원, 2012); Growing in Christ(Crossway, 1994), The Ten Commandments (1977), 『자유, 권위, 성경』, 엠마오; Freedom, Authority and Scripture [Leicester: Inter-Varsity Press, 1982], 『성령을 아는 지식』(홍성사);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Finding Fullness In Our Walk With God (1984, reprinted 2005), 『청교도 사상』, CLC; Among God's Giants: Aspects of Puritan Christianity (1991), 『제임스 패커의 거룩의 재발견』(토기장이); Rediscovering Holiness (1992), A Quest for Godliness: The Puritan Vision of the Christian Life (1994), 『아름다운 노년』(디모데),, 『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 용어 17』, 『약함이 길이다』; Weakness Is the Way: Life with Christ Our Strength (2013),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의 인도』; Guard Us Guide Us : Divine Leading in Lifes Decision,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The Spirit Within You, 『복음에 뿌리를 내려라』; Grounded in the gospel, 『제임스 패커의 기도』(IVP), 『복음주의 신앙 선언』(공저), 『칭의의 여러 얼굴(공저)』(이레서원, 2016); Here We Stand: Justification by Faith Today,(Oak Hill College, 1986)등 300여권의 책과 사전 편집, 기고글 등이 있다. 그는 많은 저서를 통하여 청교도적 복음주의 신학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패커는 16-17세기 종교개혁과 청교도 신학의 강점들을 현대에 재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II.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무오와 절대적·신적 권위 수호

패커는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 『근본주의와 성경의 권위』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신적 권위를 변호하였다. 성경 권위의 변호는 패커가 우리 시대 복음주의 교회와 신학에 기여한 가장 의미있는 공헌으로 평가된다.

그의 첫 번째 책인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1958년 초판)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역사적 개신교의 위상을 제시한 저서였다. 이 저서는 첫해에 2만 부가 팔렸으며 그 이후로 계속 인쇄되었다. 이 저서에서 패커는 당시 팽배하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복음주의의 답변과 변증을 시도하였다. 패커는 2000년 4월 제자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쓰게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영국 판에는 ‘근본주의’에 인용부호가 달려 있다. 왜냐하면 ‘근본주의’란 말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는 영국의 교회지도자들이 잇달아 다 양무리같이 그릇행하며 제 길로 가며 복음주의 신앙을 공격하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난 1956년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영국의 근본주의자라 부르며 비판했었다. 나는 IVF 졸업생들을 위한 한 모임에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요청받은 강의제목은 ”좁은 마음인가, 좁은 길인가?"(Narrow Mind or Narrow Way?)라는 것이었다...나는 그 제목에 만족했고,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답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강의를 듣고 좋았고, IVP에서는 내 강의를 작은 책으로 낼 수 있게 글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그것이 오늘날 존재하는 ‘근본주의와 하나님 말씀’이라는 내용이다. 그 책은 1958년에 출간되었다.”

패커는 이 저서에서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있게 천명했으며 성경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서 고차원적 의미에서 진리임을 제시하였다. 근본주의란 용어는 좁은 의미에서 극우파적 기독교 관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데 반하여 패커는 이 용어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기독교 진리의 근본 내지 핵심이라는 본질적 차원에서 신학적 유산의 공통점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성경에 대한 패커의 애초의 태도는 회의주의적이었다. 그는 성경을 단지 ‘다양한 종교적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것’으로 보았기에 성경의 전반적인 윤곽 정도만 받아들일 뿐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영국의 성공회 교육에서 얻어진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옥스퍼드 대 입학하고 회심한 후 6주가 지났을 때, 패커는 옥스포드 기독학생연합(Oxford Inter-Collegiate Christian Union: OICCU)의 토요일 저녁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여 초청 강사의 요한계시록 강해를 듣다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즉 성경이 인간의 가르침이거나,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패커는 나중에 칼빈을 공부하면서 그가 말한 ‘성령의 내적 증거’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를 이때 경험하였다. 칼빈이 전하고자 했던 뜻은 성령이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의 독특성과 성경의 능력에 대해서 인식하도록 하려는 방법이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패커의 복음주의적 증거는 단지 이성적 합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인격적 체험에 기초한 것이다.

패커는 이 저서에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사실을 균형잡힌 성경 해석과 합리성과 역사적 맥락성에서 설득력있게 제시하였다. 패커의 제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변호였으며, 이것은 평생의 열정이자 복음주의 교회에 대한 패커의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남았다. 패커는 성경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견해를 강력하게 믿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오래된 교리를 옹호했고, 성경의 확실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패커는 영어 표준판 성경 작업의 편집장으로 봉사하면서 그 프로젝트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과로 여겼다.

패커는 이 저서에서 그가 의미한 ‘근본주의’(fundamentalism)란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는 것을 반대하면서 이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비판한 것에 대하여 복음주의를 변호하기 위하여 그의 첫번째 책을 썼던 것이라고 피력한다: “그 책의 주제는 두 가지 논쟁을 하나로 묶어준다. 두 가지 논쟁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선상에 있다. 궁극적으로 그 논쟁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관한 것이다. 최대한 간단히 말해서 ‘영국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기독교의 근본진리인데 근본주의를 비판한 사람들은 사실은 기독교 진리를 모르며 기독교 진리와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패커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며 그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그는 성경을 아주 중요시면서 성경 외의 어떤 것도 우리 시대의 계시라고 하지 않고, 이 성경에 근거해 참으로 (그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려고 애썼다.

패커의 복음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은 성경 무오와 권위에 대한 그의 확신 때문에 가능했다. 초창기에도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 그는 1978년에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성경 무오에 대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천명하는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시카고 선언(the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Inerrancy)에 서명하고, 선언서를 발표했으며, 그 의미를 설명하는 소책자를 내기도 하였다. 패커는 성경의 절대적, 신적 권위를 변증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였다.

III. 복음전도와 하나님 주권의 균형적 강조

패커는 1961년 두 번째 저서 『제임스 패커의 복음전도: 복음전도 인간의 일인가 하나님의 일인가』을 출간하였다. 이에 대하여 패커는 2000년 인터뷰에서 이 저서 집필의 배경을 다음같이 설명하고 있다:

" 『복음전도란 무엇인가』는 영국 IVF에서 두 번째 책으로 1961년에 출간되었다. 그것은 1959년에 한 강의를 기록한 것으로 영국 IVF연합예배에서 설교한 것이었다. 당시 기독학생연합회는 분열되어 있었다. 대학생들 전도하는데 복음증거 방법에 있어서 내부적으로 의견이 상이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들이 알게 된 것은 영국에서 복음전도를 할 때에 전통적인 방식인 예수를 영접하도록 촉구하고 상담받을 사람들에게 상담해주는 것이 리차드 뱁스터, 조지 알렌, 조나단 에드워즈 등 전통적 청교도들의 방법보다는 찰스 피니, D. L. 무디 등의 방법에 훨씬 더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체계를 가지고 복음을 전할 것인지에 대해 논쟁했다. 이들은 이 두 가지 측면을 통합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설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설교를 책으로 낸 것이 『복음전도란 무엇인가』이었다.”

패커는 찰스 피니, D. L. 무디 등이 강조하는 복음증거와 리차드 백스터, 조나단 에드워즈가 강조하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모두 강조하고자 하였다: “논쟁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성경에서는 우리는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는 것을 설득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본성으로는 아무도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거나 응답하지 못하고, 오직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변화된 심령이 회개와 믿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패커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 안에서 복음 전도와 성령의 사역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두 가지 진리를 모두 받아들일 때 논쟁은 끝난다. 궁극적인 전도자이신 하나님이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은 우리의 복음전도에 도움과 격려가 된다. 사람을 회심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통해 하나님이 회심시키심을 알 때 사람들은 더욱 활발히, 더욱 열심히 더욱 확신있게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계속)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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