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대축제’는 하면서, ‘무궁화 잔치’는 왜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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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제주도 이기풍선교기념관 길에 활짝 핀 무궁화 꽃.

▲제주도 이기풍선교기념관 길에 활짝 핀 무궁화 꽃.

제주도 이기풍 선교기념관을 방문했다. 기념관에 들어가다 길가에 놓인 꽃을 주목하게 됐다. 다름 아닌 활짝 핀 무궁화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궁화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한서 남궁억 선생을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무궁화 심기 운동을 벌여 무궁화 묘목을 전국 예배당과 학교로 보냈고, 무궁화 예찬시를 지어 퍼뜨렸던 그 무궁화가 여기까지 전해진 것일까.

한서 남궁억(南宮檍, 1863-1939) 선생은 정말 대단하다. 1884년 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고종의 영어 통역관, 경상도 칠곡부사, 내무부 토목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896년엔 서재필·이상재 등과 함께 국민운동을 전개하여 ‘독립신문’ 영문판 편집장, 독립협회 수석총무 등을 맡았다. 또한 1898년 ‘황성신문’ 창간에 관여하여 초대 사장 겸 주필로 활약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배화학당 교사, 상동청년 야학원 원장을 지냈고, 1918년 고향인 홍천 모곡리로 낙향한 뒤 예배당을 짓고 모곡학교를 세워 애국교육에 힘썼다.

동시에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무궁화 심기 운동을 벌였다. 당시 애국 부인들은 삼천리를 무궁화로 수를 놓아 이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선생에게 있어 무궁화는 ‘나라사랑’이었고, ‘애국’이었다. 선생은 무궁화 묘목을 전국적으로 보급해오다가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동아일보 신문사의 제호에 들어가던 무궁화 도안도 삭제되었다.

무궁화가 태극기나 애국가와 함께 한민족에게 조국을 상징하고 결속력을 키우는 강력한 존재임을 간파한 일제는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멀리 떼어놓기 위해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고 경멸하여 격하시키고, 일본 꽃인 벚꽃을 심게 했다.

그래도 한서(翰西) 남궁억 선생은 굽히지 않고 무궁화 선양 운동을 펼치고 무궁화 나무 심기를 계속했다.

1933년 독립운동 단체인 기독교 비밀결사 ‘십자가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지만, 병고에 시달리다 끝내 별세했다.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무궁화 그림.

▲무궁화 그림.

남궁억 선생의 ‘나라 사랑’은 남달랐다. 일제 치하에서도 한글과 우리 역사를 알리고자 ‘신편언문체법’과 ‘조선어보충’, ‘동사략’(東史略)과 ‘조선이야기(전 5권)’ 등을 저술했다.

또한 백여 편의 시와 노랫말을 지어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특히 나라 사랑의 정신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곡은 찬송가에 수록되어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다.

나라마다 나라를 상징하는 세 가지, 즉 국기와 국가, 국화가 있다. 일본은 ‘벚꽃’, 영국은 ‘장미’, 그리고 우리나라는 ‘무궁화’다.

‘무궁화’는 이름처럼 무궁하다. 어릴 때 불렀던 노래 중에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너도 나도 모두 무궁화가 되어 지키자 이 땅, 빛내자 조국, 아름다운 이 강산 무궁화겨레 우리 손잡고서 무궁화~ 무궁화~’라는 가사처럼, 우리들은 무궁화 민족이다.

그럼 왜 무궁화가 우리 민족에게 선택된 것일까? 끈기와 지구력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무궁화는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꽃으로서, 원산지가 우리나라이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자생해 온 꽃이기 때문이다.

무궁화의 역사는 길다. 실제로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서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은 이미 수천 년도 더 된 일이다.

우리나라의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진(東振))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나온다.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에 군자의 나라에 저녁에 자더라(君子之國有薰華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박민웅의 ‘창암집(滄巖集)’에 따르면,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오면서 무궁화(槿花) 종자를 가지고 와 이 땅에 심었다’고 했다. 무궁화가 전래된 초기 기록. 신라 문장가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는 계림을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뜻함)이라 했다.

또 중국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君子之國地方千里多木槿花)’는 기록이 있다.

《예문유취(藝文類聚)》권(卷) 89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백성들이 그것을 먹는다(君子之國多木菫之華人民食)’고 전해진다.

이렇게 보면 최소한 조선시대에는 가는 곳마다 무궁화가 만발했던 것 같다. 우리 겨레와 역사를 같이해 온 애틋한 꽃.

▲일제강점기 애국 부인들이 자수를 혼아 만든 무궁화 지도.

▲일제강점기 애국 부인들이 자수를 혼아 만든 무궁화 지도.

하지만 무궁화를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모조리 뽑아냈다. 무궁화가 한민족의 상징이라는 것을 안 일제에 의해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선의 무궁화를 전 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림으로써 큰 수난을 겪었다.

꽃나무가 민족의 상징이자 이름으로 이처럼 가혹한 시련을 겪은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이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무궁화를 볼 때마다 삼천리 방방곡곡마다 무궁화가 만발하길 기대하며, 남궁억 선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나라꽃 무궁화야말로 겨레의 얼굴이며 혼으로 그렇게 수난을 견딘 꽃이다. 오랜 역사를 두고 우리 민족의 구심점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끊임없이 피어왔다.

애국가 가사 속 ‘무궁화 삼천리’라는 구절이 아무런 저항없이 표현되고 불려지는 것도 무궁화가 오랜 세월을 통해 우리나라, 우리 민족 속에 자리한 때문이다.

8.15 해방 75주년이 된다. 정부가 나서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규정한 것은 1949년이지만, 진해에서 일본 꽃인 ‘벚꽃 대축제’는 하면서 우리나라 국화에 무관심하고, ‘무궁화 잔치’는 시도하지 않는 것을 볼 때면 일제 때 빼앗긴 민족혼을 오늘날까지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궁화는 서양에서 ‘샤론의 꽃’이라 불리며 꽃 중의 꽃으로 불린다. 봄에 잎이 나오면 이어 꽃이 피기 시작하여, 가을에 잎이 지고 가을에 쉬는 끈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더위와 장마철에 무궁화가 활짝 피었다. 해마다 피는 꽃이지만 질긴 생명력 때문인지, 올 여름 무궁화는 어쩐지 더 귀해 보인다.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꽃을 피우고 있다.

무궁화라는 이름처럼 무궁히 뻗어 나갈 우리나라, 우리 곁에서 항상 그렇게 묵묵히 꽃을 피울 것 같다.

▲이효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효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효상 원장(근대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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