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이 놓여있는 수평선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의 앞과 뒤에 무엇을 두는가 하는 것은 자신이 지향하는 이념을 결정한다. 그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이 ‘자유’다.
자유는 어느 이념을 지향하는 사람이든 중요시한다. 이념은 크게 자유주의, 보수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 나눌 수 있는데, 각 이념을 지향하는 사람 모두 다 자유를 말한다. 하지만 자유의 앞과 뒤에 무엇을 두는지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이념이 자유주의인지, 보수주의인지, 혹은 사회주의인지 결정된다.
자유와 함께 평등을 놓고 이 둘을 바라보는 순서를 보면 그 사람의 이념 중 일부를 알 수 있다.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우파 진영에 속하고, 평등이 있고 자유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좌파 진영에 속한다. 그래서 좌파 진영은 ‘평등’을 자유보다 우선시한 나머지, 사회·공산주의나 종교 다원주의 등 반(反)기독교적인 사상을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무너뜨리고 기독교적 진리를 왜곡시킨다.
또한, 평등을 자유보다 우선시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계속하여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산다. 그래서 우월감 혹은 열등감에 빠지거나 상대적 박탈감 프레임에 쉽게 걸려드는 결과를 맞는다.
대한민국의 건국사 역시 자유와 평등의 순서를 정하는 데에 큰 힌트를 준다.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변화하는 중에, 조선의 최악 불평등 제도 ‘신분제’가 어떻게 폐지되었는가 보면 자유와 평등이 어떤 순서로 개혁을 이뤄내는지 알 수 있다.
조선 천민들의 절규, “자유를 달라”
한반도 내 최초의 서양의학 학교, 제중원 의학교의 1회 졸업생 박서양은 이렇게 절규했다.
“누가 좀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만큼만 맞고, 꼭 언제까지만 당하고 나면 그 어떤 괴롭힘이나 방해도 더 이상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약속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무얼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얼마나, 정말 얼마나 좋을까.”
박서양은 백정의 아들이었다. 그는 세브란스 간호원 양성소의 교수가 되었음에도,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무시당했다. 사실 박서양이 의사로 활동하던 때는 이미 갑오개혁(1894)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였다. 그러나 정책만 바뀐, 즉 형식적인 변화만 있었을 뿐이었다. 일할 땅과 교육권을 양반 출신들이 대부분 변함없이 착취하고 있었기에 천민(노비, 백정) 출신들은 여전히 양반의 노예일 수밖에 없었다. 박서양은 교육도 받고 일자리를 얻었음에도 천민 출신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을 정도였다.
불평등 제도를 무너뜨리는 ‘자유’
조선이 무너지고 일제시대와 미 군정기가 지난 후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최초 헌법이 제정된다. 이승만 정부는 이 헌법의 제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는 농지개혁 조항을 명시한다. 이로써 이제 ‘땅’이라는 것이 양반 출신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법치주의의 시작이요, 백성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발판이 되었다. 이는 현행 헌법 제121조에 남아있다.
또한,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의 교육권 보장에도 열을 올린다. 이로써 문맹률을 80%에서 20%로, 그리고 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 수를 각각 10배·3.1배·12배로 변화시킨다. 이제 ‘교육’도 양반 출신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농지개혁과 교육권 보장은 천민 출신들에게 결과적으로 ‘신분제 폐지’라는 평등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 시작은 노예 상태에 있는 천민 출신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천민 출신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평등이 아닌 자유였다. 이 자유가 조선을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조선의 신분제보다 더한 불평등을 자아내는 제도 ‘성분제’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은 어떠한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자유다. 북한에 돈이나 쌀을 줘서 그 주민들을 구하겠다는 취지의 ‘햇볕정책’은, 평등을 자유보다 우선시한 나머지 북한에 돈이나 쌀을 줘서 평등을 먼저 이룬 후 개혁을 이루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그랬듯, 북한에 자유를 줘야 그 주민들이 돈과 쌀을 가질 수 있다.
기독교 보수주의, 진리 > 자유 > 평등
그렇다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모든 개혁이 선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유는 여러 가치 중 가장 앞 순서에만 위치해야 하는 걸까?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6)’이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요한복음 8:32)’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는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인은 자유가 곧 진리인 것이 아니고 오직 진리 되신 예수님만이 자신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우파 내에서도 자유주의가 아닌, 자유보다 앞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고백하는 ‘보수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보수주의 철학이 기독교 신앙보다 더 위에 있어서도 안 된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자신의 정체성을 “첫째 기독교인, 둘째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듯, 예수를 믿는 신앙이 언제나 모든 것의 위에 있어야 한다. 필자가 보수주의를 굳이 ‘기독교 보수주의’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독교 보수주의자에게는 죄를 비롯한 모든 규범의 기준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 내 삶의 주인 역시도 내가 아닌 하나님이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허물지 않고 꿋꿋이 세우는 것이다. 때문에, 자유 역시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정치·경제적 자유뿐만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 상처와 아픔으로부터의 자유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이 그렇다.
예컨대 동성애 반대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반대의 ‘자유’를 존중하는 우파 진영의 사람이라면 모두 반대한다. 하지만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더 나아가 동성애 자체도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보고, 또 동성애자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동성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자가 동성애를 마음껏 하는 것이 결코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아닌 것이다.
통일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초래하는 ‘연방제통일’을 반대한다. 또한, 이를 넘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는 ‘자유통일’을 지지한다. 통일 자체를 반대하며 북한과 영원히 남인 채로 살자고 하는 것은 기독교 보수주의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될 수 없다. 교회만 가도 처형당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즉 예수님이 주신 사명인 복음 전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신앙의 자유를 전하는 자유통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개혁·개방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 또한 기독교 보수주의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지 못한다. 이는 북한을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 공산당에 흡수시킬 위험이 있고, 이는 북한 주민들을 결국 자유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자유를 바라볼 때 그 앞에는 진리, 뒤에는 평등을 둔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1)’는 말씀대로 자유를 매우 소중히 여기되 그 자유는 예수가 준 것임을 안다. 이 말씀은 이승만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기도할 때 인용되었던 구절이기도 하다. 농지개혁과 교육권 보장으로 조선 천민들이 메던 종의 멍에를 풀어준 이 대통령, 그러나 여전히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해방을 지켜보지 못한 그였다.
이에 대한민국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을 되새기며 이승만 대통령이 지켜본 꿈 그리고 지켜보지 못한 꿈까지도 기억한다. 조선이 어떻게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기억하면서, 그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에서 선포했듯 이는 결코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또 1953년 7월 27일 6·25 정전협정 직후 그가 북한 주민들에게 약속했듯, 노예 상태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해방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이자 사명이라 여긴다.
황선우 작가(전 세종대 트루스포럼 대표)
<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입니다>(8월 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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