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일론 머스크의 돼지> (上)
정신전송(mind transfer)을 향한 인류의 야심
유물론은 이런 조류에 사상적 기반 마련해 줘
인간 영혼에 대한 믿음, 점진적으로 해체될 것
영혼 고유의 신적 특성에 대한 믿음 대체될 것
순수 기능으로서 영혼과 정신 개념 확립될 것
인간 고유의 영성 말살하는 주 원인 자리잡아
◈인격의 강화: 뇌에 칩을 이식한 돼지가 보여주는 인류의 미래
지난 8월 28일 미국의 테크놀로지 기업 뉴럴링크(Neuralink)는 뇌에 전극 칩을 이식한 돼지를 일반에 공개했다. 이 회사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2016년 창설했으며, 이식 가능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MIs, brain-machine interfaces)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뉴럴링크가 공개한 돼지 ‘거트루드’는 이 회사가 개발한 컴퓨터 칩을 뇌에 이식한 후, 2개월째 건강하게 생존했다. 이 컴퓨터 칩은 두개골에 구멍을 내서 뇌 표면 가까이 자리잡도록 장착되었고, 돼지의 뇌파 신호를 수집하는 기능을 갖추었다. 뉴럴링크 측은 이 칩을 통해 수집된 뇌파 패턴을 분류, 분석하면 돼지가 어떤 감각, 감정, 충동을 느끼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럴링크가 개발한 뇌 이식용 칩이 단지 동물들의 감정과 감각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뉴럴링크의 목표는 이 칩을 통해 인간의 두뇌가 받아들이는 감각신호를 조절하고, 두뇌가 생성해내는 감정과 의지를 읽어내는 데 있다.
이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면 우선 인간은 완벽에 가까운 가상세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나 <토탈 리콜>의 컴퓨터 가상세계, 혹은 <인셉션>의 꿈 속 가상세계 등을 현실화할 수 있다.
현실을 잊고 자신이 원하는 환상과 꿈에 몰두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런 기술은 무한한 중독성을 지닌 마약이나 다름이 없다. 뉴럴링크가 구현하려 하는 가상현실 기술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할 것이다.
뉴럴링크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별도의 입력장치 없이 뇌의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하고 작동시키는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 의식을 휴머노이드나 클론, 혹은 특별한 저장장치에 이식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는 곧 반복적 육체 교환을 통한 의식의 반영구적 존속을 가능케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전뇌화 기술, 혹은 TV 시리즈 <얼터드 카본>에 등장하는 니들캐스트 기술이 머스크와 뉴럴링크가 꿈꾸는 이상적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AI 기술에 대한 머스크의 상상력 대부분은 SF 소설에서 나온 것이다. 머스크가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스코틀랜드 소설가 이언 뱅크스의 SF 소설 시리즈인 <컬쳐>(Culture)에서 AI와 인간의 두뇌를 연결하는 기술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컬쳐>는 인간, AI, 휴머노이드, 외계인이 공존하는 유토피아적 미래상을 치밀한 상상력을 가지고 그려낸 소설이다.
머스크는 인간의 정신과 컴퓨터의 직접적 연결 혹은 완전한 결합에 대해 사명감에 가까운 야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정신학 전문가 얀 드 보스는 그의 저서 <상호주체성의 디지털화>(The Digitalisation of (Inter)Subjectivity)에서 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 기술에 집착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보스의 설명에 따르면, 머스크는 AI가 인간에게 결코 유익한 미래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 인류를 억압하고 멸절시키는 지능으로 발전될 것이라 확신한다.
실제로 이런 위기감 때문에 머스크는 2017년 스티븐 호킹 등과 함께 아실로마 AI 원칙(Asilomar AI Principles)에 서명한 바 있다. 아실로마 AI 원칙은 AI의 윤리적 사용과 인간에 의한 완벽한 통제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는 이런 원칙 제정과 선언이 한낱 구호에 그칠 것임을 알고 있다. AI의 능력에 도취된 인간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AI를 발전시킬 것이고, 결국 이는 역으로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이처럼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압도할 때 초래될 재앙적 미래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머스크가 제시하는 대안은 명확하다. 인류가 AI를 이길 수 없다면? 인류가 AI처럼 되어야 한다.
◈인격의 전송: 영혼을 해체하는 뉴럴링크 프로젝트
머스크는 뉴럴링크 기술이 인류가 AI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보스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머스크는 “뉴럴링크 프로젝트가 인류로 하여금 AI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인류를 무장시켜 주며(the Neuralink project will arm humankind against AI), 인류의 필수적인 인간 본질을 보존할 수 있게 해줄 것(preserve their essential human essence)”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뉴럴링크 기술을 통해 인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신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숱한 논란을 유발한다. 그 중에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역시 인격의 정체성 문제이다.
뉴럴링크 기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정신 전송, 즉 뇌파 및 뇌신경 작동 패턴의 복제 및 이식이 과연 한 사람의 인격을 그대로 보존하는 일인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상대적 기준으로는 오히려 해결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을 유발할 뿐이다. 통상 이 문제에 대해서 ‘자연적인’ 인간 규정을 기준으로 삼으려는 측과, ‘인위적인’ 인간 규정을 정립하려는 측이 서로 대치해 왔다.
기독교계를 포함한 종교계는 전반적으로 자연적인 인간 규정을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신에 의해 창조된, 혹은 섭리에 의해 존재하게 된 인간의 본질을 디지털 패턴화를 통해 임의대로 복제하거나 업그레이드하려는 열망은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신적 존재 섭리를 벗어나려는 자기신격화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종교계 전반의 입장이다.
반면 심리학 및 인지과학 연구자들 가운데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는 인간 정신의 특성들과 가능성에 매료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 정신의 디지털화에 따른 인격의 존속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단, 이들은 이 긍정적 전망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점, 기술적으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수긍하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다.
그렇다면 대중의 관점은 어디를 향하는가? 당연히 그들의 욕망을 손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쪽을 향한다. 대중은 뉴럴링크 기술에 인류의 미래를 거는 머스크나, 특이점 도래를 선언한 커즈와일이나, 정신 전송 기술을 통한 인격의 보존과 영생 가능성을 수긍하는 심리학자들과 인지과학 연구자들 편에 선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가상현실 기술은 저렴한 비용에 온갖 욕망과 쾌락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정교한 정신전송 기술은 질병의 고통과 수명의 한계, 죽음의 두려움을 손쉽게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런 유혹적인 체험을 약속하는 정신 전송 기술을 인류 전반이 거부할 리가 만무하다.
유물론은 이런 조류에 사상적인 기반을 마련해 준다. 인격과 정신이라는 것이 물질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상정한다면, 그 물질이 자연적인 두뇌이든, 디지털화된 저장장치이든 상관없다. 그로부터 나오는 전기신호 패턴만 같다면 같은 인격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유혹의 물결과 급진적 사고의 전환 과정에서, 인간의 영혼에 대한 믿음은 점진적으로 해체될 것이다. 플라톤 사상에서, 기독교 성경에서, 아니면 그 외 각종 종교들이 가르치는 인간 영혼 고유의 신적 특성에 대한 믿음은 정신 전송 기술에 대한 확신과 열망을 통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론을 유물론적으로 극단화한 순수한 가능태, 순수한 기능으로서 영혼과 정신이라는 개념이 확립될 공산이 크다.
머스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뉴럴링크 기술의 발전은 결국에는 인간 고유의 영성을 말살하는 주원인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