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의 Engagement 24] 지혜롭고 순결하게
대면 예배만 ‘참예배’? 성경적인 근거 없는 편견
상황 여의치 않을 경우 각 처소에서 예배 가능해
정부 의도 악하나, 말려들지 않는 성숙함 보여야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회복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백신이 개발되어 일반인에게 보급될 날이 아무리 일찍 오더라도 내년 봄이 될 것이다. 더 늦어지면 내년 말까지 코로나 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많은 교회들은 비대면 예배로 전환한지 오래다.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살고 있는 필자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교인 3-4천명 정도의 대형교회이다.
예배당 좌석이 3천 5백석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대면예배에 대한 제한 조치로 주일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드려지는 예배에는 최대 175명만 참석할 수 있다. 그것도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켜야만 한다.
그 외에는 모두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렇게 비대면으로 예배드린지 벌써 5개월여가 되어 간다.
상대적으로 방역을 잘했다고 평가를 받는 한국도 이제는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비대면 예배가 지배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대면 예배가 조만간 회복되더라도,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려면 교인 중 대다수는 여전히 비대면 예배를 드려야 하는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면 예배만을 정당한 예배로 인식해온 많은 사람들은 비대면 예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정부가 내세우는 방역지침을 어기면서까지 계속해서 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대면 예배 사수”와 같은 모토를 내걸면서, 대면 예배를 드리다가 코로나에 걸려서 죽으면 바로 그것이 순교라고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살아 계시고, 인격적이시며, 무한하신 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배의 공간과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즉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그 예배를 기쁨으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수가성에서 만난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예배의 공간에 대한 모든 신화와 편견을 깨뜨려 버리셨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라고 말씀하심으로, 주님은 예배가 어떤 특정한 공간에 묶일 수 없음을 천명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의 공간에 대한 신화와 편견을 깨뜨리신 주님은 예배자가 어떤 태도로 예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강조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주님의 관심은 예배의 공간,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예배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임을 재천명하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예배하든지 “영과 진리”, 즉 성령과 말씀 안에서 예배할 때 그 예배는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예배와 관련된 이 대원리를 오늘날 상황에 적용한다면, 매우 중요한 진리들을 우리는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예배를 예배당이라는 공간에서 대면으로 드려야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예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편견일 뿐이다.
물론 모든 상황이 허락한다면 교회 공동체가 약속된 예배 공간에서 함께 모여 대면으로 예배하는 것은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다. 그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예배당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대면으로 드리는 예배만 참된 예배라는 생각은 성경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둘째,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교회 공동체가 예배당이라는 한 공간에 모일 수 없더라도 각자의 자리와 처소에 흩어져서 비대면으로 드리는 예배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오늘날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각자의 처소에 흩어져 있지만 온라인상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함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온라인/비대면 예배가 예배당이라는 공간에서 드리는 오프라인/대면 예배에 비해 성도들 간의 교제와 스킨십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 운영이라는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헌금이 대폭 줄어드는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기술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교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온라인/비대면 예배가 오프라인/대면 예배보다 본질적으로 저급한 또는 합당치 못한 예배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셋째, 최근 한국 정부가 코로나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대면 예배를 금한 것이 교회에 대한 핍박이요 박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일부 교회들과 지도자들은 정부의 방역 지침을 거부하면서 오프라인/대면 예배를 고집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비추어 볼 때,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하여 한국 사회 내에서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한국교회는 현 정부와 관계할 때, 뱀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비둘기같은 순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지혜롭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과 지침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진 것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해서, 정부의 악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여기서 순결하다는 것은 현 정부가 교회를 어렵게 하려는 악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갚으려는 거룩하고 성결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성숙도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높은 기준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주님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성숙함과 내공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고 성장해 가야 한다.
한국 정부가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비대면 예배를 강요하고, 코로나 확진자 증가를 교회 탓으로 돌리면서 마녀사냥을 자행할수록, 한국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지혜롭고 순결한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보다 철저한 방역을 통해 교회의 집회나 모임 때문에 확진자가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이웃을 위힌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과 순결함을 지켜나가야 한다.
타협하지 말하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주인이 정부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인된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순결과 겸손과 온유함을 구현하고 체화하는 공동체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코로나 사태는 한국교회의 성숙도를 테스트하는 기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대면 예배를 사수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순교적 신앙과 동일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위에 온라인/비대면 예배도 성령과 진리 안에서 드려질 때,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종교정책과 대교회 정책에 대하여 성숙하고 지혜로운 분석능력을 기르고, 그것에 대하여 순결하고,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로 대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한국교회의 위기를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더 성숙하는 거룩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