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안타까움이 깊은 한숨으로 배어 나온 지 오래다. 국내상황이 너무나 골치 아프게 돌아가고 있는데, 북한 문제까지 설왕설래가 그치지 않는다. 별별 풍문들이 다 나돌고 있다. 9월 들어서는 전문가라고 명함을 내미는 이들까지 합세하여 앞 다퉈 북한의 내부변화를 점치고 있다. 요점은 김정은이 권력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하나의 설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이들의 귀를 쫑긋하게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내세우는 정황들이 그럴싸해 보인다. 충분히 혹할 만할 근거들을 제시하는 것은 맞다.
올 초부터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김정은 리더십 위기설은 지난 8월 20일, 국가정보원의 보고로 그 정점을 찍었다. 당시, 국회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위임통치’설의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임통치를 권한이양, 권력이양으로 받아들여 북한 지도부에서 나타나는 양상들을 다 이쪽으로 끼워 맞추기에 급급하다. 과연 김정은이 권력에서 밀려난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권력이 더욱 공고해진 측면이 있다.
9월초, 태풍피해지역에 당 지도부를 파견한 김정은
북한 전 지역이 태풍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8월 13일 열린 당정치국회의에서 보고된 피해상황은 다음과 같다. “장마철기간 강원도, 황북도, 황남도, 개성시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농작물피해면적은 3만 9, 296정보(약 1억 1800평)이며 살림집 1만 6, 680여세대와 공공건물 630여동이 파괴, 침수되고 많은 도로와 다리, 철길이 끊어지고 발전소언제가 붕괴되는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김정은은 태풍 피해복구 관련해서 8월에만 일주일 간격으로 4차례나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그 어느때 보다도 분주하게 정치활동, 권력행사를 했던 김정은이다.
9월 3일, 다시 함경남도, 함경북도 일대에 태풍9호(북한식)로 인해 함경도 해안지역 1,000여세대의 가옥들이 파괴되고 수많은 공공건물과 농경지들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심각해지자 김정은은 즉시, 리병철을 비롯한 당중앙위 부위원장들을 피해지역에 급파해서 피해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라고 지시하였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피해지역을 살펴보는 리병철과 박봉주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이들이 누구에 지시에 의해 갔느냐는 살펴보지 않고 이들 사진이 맨 앞에 실렸다는 것만으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설프기 그지없다. ‘피해복구 사업을 지도’라는 기사 타이틀에 더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 뿐만 아니라 지도부들이 현장을 시찰할 때 ‘지도’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피해지역 현지에 급파되었던 이들은 5일, 김정은이 직접 피해지역 나가서 소집한 당중앙위 정무국 확대회에 참석하여 보고하였고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책임을 물어 함경남도 당위원장을 즉각 해임시켰다. 이렇게 김정은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권력누수가 왠 말인가. 이를 비웃기라도 한 듯, 6일자 노동신문은 제1면에 김정은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국가 비상시 작동되는 ‘위임통치’
이런 풍문, 낭설들이 불거진 것은 앞서 말했지만 바로 지난 8월 20일에 있은 국가정보원의 보고 때문이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국회정보위원회에 북한 김정은의 ‘위임 통치설’을 보고했다. 국정원은 비공개업무보고에서 김정은이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뿐만아니라, 일부 측근들에게도 권력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국정원이 언급한 위임통치는 ‘권력이양’을 가리킨다. 또한, 김정은이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씩 권한을 이양한 것이라고 국정원이 보고한 바와 같이 위임통치는 ‘권한이양’을 뜻하기도 한다.
국정원은 이날 보고에서 김여정의 ‘제2인자 설’을 다시금 기정사실화하면서 후계 낙점, 후계자 통치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정은의 위임통치 양상까지도 밝혔는데 김여정은 대남·대미정책을, 경제분야는 박봉주(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부위원장)와 김덕훈(신임 내각총리)에게, 군사분야는 최부일(당중앙위 부장)과 리병철(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그 권한이 이양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보고에 대해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통치권 이양이라기보다 권한의 일부 분산(단위별 자율성 보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국정원은 사안별 위임통치로 받아들인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일부권한 분산과 위임통치는 성격이 다를뿐만 아니라 서로 배치된다. ‘위임’이라는 용어는 매우 긴급한 비상상황으로 통치가 힘들어 권력을 이양할 경우에 쓰이는 용어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위임통치는 북한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라 국정원에서 만든 용어라는 것이다. 김여정의 제2인자 설을 들고나온 것을 보면, 이번 국정원이 보고한 위임통치는 권력이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이양과 권한이양은 그 성격이 또 다르다. 권한이양은 실무권한 분산으로 측근들에게 실무현안을 감독할 재량을 부여하는 것과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도 따르게 하는 것이다. 권력이양은 김정은이 어느정도 손을 떼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김정은의 ‘통치 스트레스’라는 용어도 이번에 처음 등장했다.
‘임무분담’이라고 김정은이 직접 언급
그런데, 앞서 확인한대로 김정은은 최근에 가장 바쁜 정치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느때 보다, 민생문제를 포함하여 당정군 관련 사안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지도하였다. 다른때도 아니고 김정은이 가장 바쁘게 움직인 이 시기에 위임통치설이 나왔으니, 당사자인 김정은이 뿔이 날만하다. 김정은 입으로 직접 ‘임무분담’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사상을 전달 침투하는 사업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문제들과 전원회의과업관철을 위한 작전과 임무분담을 치밀하게 짜고들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모든 부문, 모든 단위가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구호만 웨치면서 빈말이 되지 않도록 각자의 임무를 똑똑히 확정하며 당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옳은 방법론을 세우고 실천적인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2019년 12월 27일 당 전원회의 시)
한낱, 임무분담을 위임통치라고 허풍을 떨었으니 김정은의 속이 부글부글 끌었을 것이다. 김여정의 제2인자설 기정사실화에 대해서는 또 어떠한가. 하나의 정치적 음모로 받아들였을 공산이 크다. 김여정이 정치전면에서 사라진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8월에 진행된 네 번의 긴급비상회의도 9월에 소집된 비상회의에도 불참했다. 뿐만 아니라, 당정치국회의 인사조치에서 당정치국 위원과 당부장에도 기용되지 못했다. 작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당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되었던 리병철과 김덕홍은 이번에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특진되었는데 말이다. 김여정은 여전히 당중앙위 제1부부장에 머물렀다. 당 서열상으로는 하급에 속한다.
그에 걸 맞는 직책을 주고 임무를 분담시키는 최근 김정은의 지도방침을 감안할 때, 겨우 당중앙위 제1부부장인 김여정을 제2인자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과연, 북한내부에 반란이 일어날 수 있을까
최근에 북한 정치권에 대한 풍문은 하나의 판도라 상자와 같다. 제기하는 설마다 핵폭탄 급이다. 김정은의 권력 누수, 리더십 위기를 넘어 권력 교체, 김정은 실각설은 그야말로 대북정책에 엄청난 혼선을 초래한다. 북한 정보를 다루고 있는 국정원이 바람을 잡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이 정부가 나라 안팎의 문제로 국민들의 정신을 쏙 빼놓을 심산인가 보다.
북한정권은 조선 500년 이조시대와 같다. 반란을 일으켜도 이씨 왕조 혈통에 그 권위를 철저히 인정하여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것처럼, 북한의 김씨 3대 부자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북한은 완벽한 김씨 왕조시대이다. 사상의 완벽한 포로가 된 그 하수인들이 과연 반란을 획책할 수 있을까. 물론, 구한말의 시대가 다시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나님이 애굽땅에 내린 8번째 재앙으로 하늘을 찔렀던 바로 왕의 권위가 곤두박질친 것처럼 김정은도 얼마든지 하루아침에 바로 꼴이 될 수도 있다.
*이글은 WORLDVIEW 10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