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뮬란> (下)
디즈니, 성경 거리 두려다 단편적 서사와 캐릭터 남발
정치적 올바름 추구하면서, 공산주의·중화사상 옹호?
콘텐츠 자체 서사, 캐릭터, 예술성, 작품성 계속 저하
경영과 플랫폼에만 의존 전략, 오래 이어지지 못할 것
◈디즈니의 문화가치: 시대에 뒤쳐지는 디즈니의 중심가치 표현방식
디즈니 실사화 영화 <뮬란>은 북미 지역에서 코로나로 인해 디즈니플러스로 직행해서 개봉해버린 탓에 정확한 흥행성적 집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월드와이드 흥행성적을 보면 개봉 첫주 성적이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기대했던 중국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다.
디즈니 그룹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의 창사 년도는 1923년으로, 무려 9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디어 콘텐츠 회사이다.
그 동안 여러 차례 부침과 굴곡이 있었지만, 오리지널 디즈니 콘텐츠들은 시대가 변할 때마다 연출과 표현 양식에 적절한 변화를 가하며 미국과 전세계 어린이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곤 했다.
무엇보다 1989년 <인어공주>를 필두로 약 10년간 지속된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 내부의 변화 의지와 창의성이 가장 돋보였던 시절로 평가된다.
그러나 디즈니 르네상스가 끝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오리지널 디즈니 콘텐츠와 더불어 디즈니 계열 영화-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전체 콘텐츠의 질, 특히 서사 수준은 상당히 저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21세기에 들어와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제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로 경영 혁신과 과감한 M&A 덕분이지, 디즈니 콘텐츠 자체의 창의성과 혁신성 때문은 아니다. 디즈니플러스의 성공 역시 치밀한 경영전략과 플랫폼 기술의 혁신 덕분이지, 콘텐츠 자체가 일궈낸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리지널 디즈니 콘텐츠가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합병한 프랜차이즈 콘텐츠의 수준마저 함께 떨어뜨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서사 및 캐릭터 창안 방식이 디즈니 전체의 콘텐츠 제작 전통으로 굳어져버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외형과 표현 방식은 크게 변했지만, 디즈니의 서사 및 캐릭터 설정 공식은 월트 디즈니가 살아있을 당시와 크게 달라진 바 없다. 20세기 공식을 가지고 21세기 문화예술 현실에 적응하려 하다 보니, 시대에 뒤쳐진 서사와 캐릭터 설정이 난무하는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반을 관통하는 중심 가치는 가족, 어린이, 인간관계의 오페라적 조화, 그리고 권선징악이다. 우리는 이를 디즈니의 문화가치(die Kulturwerte)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가치란 신칸트주의 사상가 하인리히 리케르트가 창안한 용어로, 어떤 가치들이 형이상학적 실재에까지 미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인간 현실에서는 초월적이라 여겨지는 그런 선험적 가치들, 예를 들어 진리, 선함, 아름다움, 성스러움, 행복 등을 말한다.
쉽게 말해 인간의 자연적 삶의 정황과는 구별되는 문화적 삶의 정황이 인류 전반에 지당하고 숭고하게 보이는 어떤 선험적, 객관적 가치들을 부여하는데 이것이 문화가치라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가 표방한 문화가치는 20세기 미국을 표본으로 삼는 서구 자본주의 중산층의 핵심 가치와 상당 부분 부합한다.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은 이 가치관을 어린이들 시선에 맞춰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데 주력해 왔고, 이 때문에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전반에는 항상 답답하게 느껴지는 특유의 단순성이 엿보이곤 했다.
서사의 흐름은 ‘필연적’이고, 캐릭터의 성격은 ‘전형적’이다. 모든 디즈니 작품에는 제대로 된 서사적 반전이 없고, 다중적 성격을 가진 현실적 캐릭터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원조 디즈니 캐릭터 가운데 선악이 절묘하게 뒤섞인 현실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캐릭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디즈니 캐릭터들은 어린이들의 눈높이 수준에 맞게, 선역과 악역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디즈니 콘텐츠 전반에서 영화 <조커>의 주인공 조커(호아킨 피닉스)라든가, <기생충>의 기택 가족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캐릭터를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명료한 서사 구조 및 캐릭터 설정 공식을 가지고 포스트구조주의적 인간이해가 문화예술계 전체를 지배하는 오늘날의 현실에 도전하니, 영화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3D, CG 등 표현 양식은 크게 발전되고 다채로워졌지만, 디즈니 콘텐츠들은 항상 어딘가 만화적이고 공상적인, 현실과 크게 괴리된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디즈니 콘텐츠는 매력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보다 개연성 있고 현실적인 서사에서 카타르시스를 얻으려는 이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그저 ‘오글거리는 동화’ 수준의 작품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디즈니의 문화배경: 기독교적 문화배경에서 이탈한 디즈니의 표류
21세기 들어와서 디즈니 그룹 전체가 저지른 또 하나의 실수는, 그 단순명료한 선악 구분의 서사 구조 속에 정치적 올바름 운동 이념을 끌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와 디즈니 콘텐츠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넷플릭스는 애초 독립영화, 예술영화 제작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지원하면서 정치적 올바름 이념을 나름 다채롭게, 개연적으로 풀어낼 역량을 확보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사상에 깊이 공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서사를 풀어내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상당히 세련된 면모를 보인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한다.
반면 디즈니는 뛰어난 연출력과 표현력을 갖췄지만, 단순하고 이원적인 서사 구조를 고집한 데다 억지스럽게 백인우월주의를 허물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작품 내적인 모순들을 극대화시켰다.
백인 캐릭터를 기용해야만 공감이 가는 전통 서구 서사에 유색 인종을 캐스팅하거나, 가정의 화목함이라는 가치를 더없이 강조하면서 전통적 가정관을 파괴하는 동성애 사상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억지스러움을 스스로 허용해 온 것이다.
최근 디즈니 콘텐츠 서사들을 보면, 온전하게 설정된 목표 없이 이리저리 표류하는 모습이 자주 확인된다.
<뮬란>은 디즈니 그룹 전체가 안고 있던 이런 문제적 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유연족 마녀 시아니앙(공리 분)이라는 괴상한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다.
중국 본토에 쳐들어오던 유연족 침입자들의 선봉장 시아니앙은 뮬란과의 조우를 통해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뮬란을 감싸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한족의 용맹과 정의심에 매료되어 한족에게 복속된 오랑캐라는 이 캐릭터 설정은, 오로지 중국의 중화사상에 아부하려는 노골적인 의도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은 선악이 애초 정해져 있는 캐릭터들을 다루는 데 익숙해서, 나름 다중적인 캐릭터를 구축해 보려고 해도 전혀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을 헛되이 소비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번 <뮬란>의 시아니앙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뮬란>의 참담한 작품성을 보면서 느낀 바는, 서구인들의 문화예술은 그 뿌리가 되는 기독교적 서사와 이미지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생동감, 창의성, 그리고 개연성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디즈니의 서구적 중심가치들은 비록 기독교 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지라도, 가정, 어린이, 공동체, 그리고 선(善)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서구인들의 인간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가 아무리 무종교적 성향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주력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주로 소비하던 20세기 미국인들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디즈니는 자기 작품의 중심가치를 산출한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서사 전반과 거리를 두다가, 답답하고 단편적인 서사와 캐릭터 구축만 남발하는 한계를 내보이고 말았다.
이런 한계는 디즈니 사후(死後)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표현력 혁신에 잠시 가려져 있었지만, 최근 디즈니 작품들의 작품성 저하를 통해 다시금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뮬란>은 아예 기독교 신앙과 상극인 공산주의, 반종교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중화사상을 옹호하는 중국 정부의 취향에 맞춰 제작한 작품인 까닭에 기독교적 가치와 더욱 멀어졌고, 디즈니가 원래 추구하던 인간관계의 오페라적 조화와 권선징악의 가치마저도 흐려버리고 말았다.
중화(中華)에 패배하고 복속하는 오랑캐라는 서사 요소는 이미 인간관계의 평등한 조화가 아닌 패권적 상하관계를 정당화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 사상에 근거해 인종적 다원주의와 포용성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자민족 외 소수민족을 압제하고 주변국을 침탈하려는 중국 정부의 제국주의 행태를 옹호하고 있다.
효과적 경영전략과 M&A, 그리고 온라인-모바일 기술 혁신에 기댄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제국의 성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디즈니 콘텐츠 자체의 서사, 캐릭터, 예술성, 작품성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한, 경영전략과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성세는 오래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아지고 열매가 많아진다.” 용비어천가의 격언을 따르자면, 현재 디즈니의 콘텐츠 제작 상황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익을 좇아 그 뿌리로부터 멀어지며 표류하는 까닭에, 결국은 말라비틀어질 형국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