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이하 정교모)이 최근 “종전선언이 아니라 인권선언이 먼저”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반복되는 ‘종전선언’을 규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우리 공무원이 북한에 총살당한 사실이 청와대에 보고된 직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이에 각계에서는 시점과 내용 모두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최근 코리아소사이어티 기조연설에서도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교모는 “북한의 우리 표류 공무원 사살 및 시신 훼손 사건에 대하여 이는 북한이 비정상국가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그 야만성과 패륜성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적 인도주의 원칙에 반하는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끝까지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인권선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교모는 “조선과 같은 왕조시대, 폐쇄성이 강했던 전 근대 국가에서도 바다로부터 외국인들이 표류해 오면 이를 구해주고 잘 보살펴서 본국으로 돌려보내거나 본인이 희망하면 귀화토록 하여 이 땅에서 자리 잡고 살게 해 주었다”며 “이런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다는 징표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바다에서 장시간 표류하다 연안에 이른 동족의 비무장 민간인을 발견한 북한군이 여섯 시간 후에 사살했다. 코로나 방역 핑계를 대지만 전시에도 있을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라며 “사람을 전염병을 옮길지도 모를 살처분의 대상으로 여기고, 바로 그 앞에서 방아쇠를 당겨 10여발의 총알을 퍼부어 사살한 행위는 북한 체제가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비정상국가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게다가 40여분 동안 기름을 부어 태운 것이 시체이건, 북한 측이 보내온 통지문에 있는 내용 그대로 부유물이건 간에 그 본질은 변함없는 패륜적 행위의 극치이다. 김정은은 ‘통지문에서 확인해보니 시체가 없어서 혈흔이 남아 있는 부유물체를 태웠다’고 하나, 시신이 남아 있었다면 그 시신은 수습해서 돌려줄 마음이 있었다고 강변하고 싶었던 것일까. 북한 체제의 그 잔혹함과 비윤리성은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을 넘어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고개를 떨궈야 하는 치욕을 떠 안기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교모는 “현대 국제법은 모든 국가에게 전쟁 상황에서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하며, 평시에도 표류자에 대한 긴급구호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남북한은 특수한 민족관계를 넘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유엔인권규약’에 동시에 가입한 이후 이 조약을 준수해야 하는 바, 북한의 표류 민간인 살해와 사체 소각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북한 정권은 이번 사태를 통하여 우리와의 동족 국가도, 유엔의 회원국 국가로도 볼 수 없는 사교(邪敎) 전체주의 폭력집단의 폭거를 자행한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어 “그 내용이나 형식, 그리고 지금까지 북한 매체에서 보여주고 있는 침묵 등을 종합할 때 김정은의 통지문에서 진정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의 눈에는 그저 그동안 국제 사회에서 나름대로 과시하고 싶었던 정상국가로서의 이미지 쌓기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당혹스러움의 표현일 뿐”이라며 “이 야만적 작태를 덮어주고 싶어 안달이 난 문재인 정권과 그 일파의 정치적 곤경에 퇴로를 열어주고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만책에서 나온 알량한 한 장의 팩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권이 말살된 작태, 진정성과 진실이 제거된 괴(怪) 통지문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은 정권에 순치된 언론과 궤변가, 광란의 댓글 부대를 동원하여 인권과 문명의 도리를 호도하고 국민과 세계여론의 비판을 모면하려 발버둥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교모는 “북한의 이 반인도적 만행에 대하여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대북 소통 창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볼 때 얼마든지 북측에 연락을 취해 자국민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하지 않은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도 엄중하게 추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물론 여기에 자국민이 사살당하고 시체가 불태워진 사건을 보고 받아 알고 있으면서도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영향을 줄까봐 이를 쉬쉬하고 발표를 늦춘 의혹이 있는 자들도 빠질 수 없다”며 “남북한 당국자들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진실규명, 인권과 정의에는 시효가 없다”고 했다.
정교모는 “지금 우리 국민은 허탈함과 분노에 싸여 있다. 김정은의 통지문에 감읍하다시피 하면서 그나마 시신을 불태우지 않았다는 말에 그것이 마치 사실인 듯, 그리고 그게 어디냐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바다를 수색하는 대한민국 정권의 모습을 보며 국민은 그 비굴함과 무책임, 뻔뻔함에 또 한 번 배신감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며 “군이 관찰했다는 40여분의 불길은 한 사람의 시신을 태우는데 필요한 시간이지, 가벼운 부유물체를 태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절대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느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고 여당인가, 목불인견의 사태를 모면하려는 저들의 사실 호도와 책임 전가는 정치적 모략을 넘어선 인도(人道)와 역사에 대한 중대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종전선언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 종전은 전쟁의 당사자들이 이성적인 체제, 합리적인 의사결정, 인권과 법치 아래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국가일 것을 전제로 한다”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국가, 사나운 짐승과 같은 공격성이 늘 내재되어 있는 체제와의 평화적 공존이란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6.25 휴전 조약 체약국 자격도 없는 한국의 대통령이 유엔군참전국, 이를 대표한 미국과의 정책협의도 없이 오로지 특정 정파의 평화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로 정당성도, 실효성도 없는 ‘종전선언’의 허언(虛言)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따.
아울러 “문재인 정권이 진정 대한민국과 국민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이 엄정한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며 “대통령의 가슴 속에 있어야 할 것은 종전선언이 아니라 인권선언이다. 어떻게 하다 우리가 우리 정부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쳐야 하는 지경에 왔다는 말인가”라고 호소했다.
한편 정교모는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전국 여러 대학 교수 6,241명과 함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정교모의 선언문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 백석신학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침례신학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등 다수의 신학대 및 미션스쿨의 교수들도 참여해 교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올해 6월 15일 기준 정교모는 6,112명의 교수들이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