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Students for Life’에 소속된 2명의 대학생들이 워싱턴 D.C. 가족계획협회(미국 내 가장 큰 낙태 클리닉 운영) 앞 도로에서 “흑인 태아의 생명도 중요하다 (Black Pre-Born Lives Matters)”라는 문구를 분필로 쓰다 공공/사유 재산 훼손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이들은 흑인 여성이 전체 가임기 여성의 14%에 불과하지만, 가장 높은 낙태율(전체 낙태의 36%)을 보이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슬로건인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를 인용하여 이와 같은 활동을 기획했다.
위키피디아에서 미국의 프로라이프 단체를 검색해 보면 약 70개 이상의 단체가 검색된다. 프로라이프 단체들은 중앙 집중 의사결정 기관이 없으며, 다양한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개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중년 백인 남성 주류의 복음주의 기독교 집단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되었던 프로라이프 운동은 1990년을 즈음하여 젊은 세대, 특히 밀레니엄 세대(1980-1995 년 사이에 태어난 약 8 천만 명, Y 세대라고 칭하기도 함)의 참여가 증가하고, 젊은 여성 리더들이 다수 등장하며 새로운 활기를 띈다.
‘Students for Life’는 ‘낙태의 근절’을 비전으로 삼고 중고등학교,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최대 규모의 전국 학생 그룹이다. 청소년과 대학생 시기는 세계관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이다. 하지만 52%의 낙태가 25세 미만에 행해지며, 가족계획협회의 79%가 대학교 인근 8Km 이내에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낙태 근절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1988년 여성 리더인 크리스탄 호킨스에 의해 설립된 이후 1,250개 이상의 학생 프로라이프 단체의 설립을 도왔고, 100,000명 이상의 학생들을 훈련시켜 왔다. 기독교적 사랑을 근간으로 조직이 운영되지만 다양한 종교, 문화적 배경을 가진 회원들을 호의적으로 환영하며, 폭력적인 행동 및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의과대학생 협회, 법대생 협회가 별도로 조직되어 있으며, 고등학생 리더 및 정규직 프로라이프 운동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집중적인 리더십 트레이닝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Students for Life’의 풀타임 지역 코디네이터들은 해당 지역에서 캠퍼스 내 프로라이프 활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음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돕는다. 1) 낙태에 대한 기초 교육(낙태의 역사, 태아 발달, 낙태 후 신드롬, 성별 선택적 낙태, 낙태 산업, 낙태의 대안, 피임, 입양, 체외 수정, 안락사/임종, 줄기세포 연구), 2) 학교 상황에 대한 파악(캠퍼스 내 리더십의 성향 파악 및 개인적 교제, 교수진/행정부와 협력, 프로초이스 그룹에 대한 이해), 3) 리더 그룹 구성, 4) 캠퍼스의 공식적인 그룹으로 도입, 5) 새로운 멤버의 영입(테이블링, 클립보딩, 작업 할당을 통한 책임감 부여), 6) 조직의 운영 (정기적인 모임, 위원회 구성, SNS를 통한 활동 정보 공유). 캠퍼스 내 활동은 학생 교육(영화, 연설, 전단지, 방문, 초킹(도보에 분필로 문구 쓰기), 포스터 전시, 출판), 프로초이스 활동에 대한 맞대응(지역 내 낙태 찬성 사업체 보이콧, 성주간 행사(sex week, 대부분의 대학에서 매년 열리는 성 자유화 행사) 반대 활동), 가족계획협회 실체 알리기 등이 있다.
‘Students for Life’는 지난 17년 동안 ‘March for Life(생명 행진)*다음 날 ‘SFLA 전국 학생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 올해 1월에는 대표적인 프로라이프 단체인 Live Action, 보수 정책연구소 헤리티지재단, 보수 법조인들의 모임인 Alliance Defending Freedom과 연합하여 ‘2020 National Pro-Life Summit(전국 프로라이프 회담)’을 개최했다. ‘로 대 웨이드 법안 폐지 후 미국의 비전 구상’이라는 주제 하에 펜스 부통령의 딸이자 프로라이프 운동가인 샬럿 펜스를 비롯한 다수의 연자들과 3,100여명의 참가자들은 프로라이프 활동의 구체적인 사례와 전략을 공유하며 비전을 수립하였다.
프로라이프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젊은 세대들은 이 운동의 가장 큰 장애물이 프로초이스 그룹이 아닌 ‘낙태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낙태에 무관심한 학생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법에 저항감이 없을 뿐 더러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의사도 크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프로초이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한 학생들도 낙태된 태아의 이미지, 낙태로 사망하는 일별 사망자를 기념하는 3,300여개의 작은 십자가 등을 통해 낙태의 충격적인 실체를 접했을 때 낙태에 대한 개인적인 신념을 갖게 된다. 또래 친구들의 초대를 받고 모임에 합류한 학생들은 비록 처음에는 낙태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지 않았더라도 습득한 정보를 내면화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프로라이프 활동가가 되고, 이들이 다시 또다른 친구들을 모이게 함으로써 선순환을 지속시킨다. 자궁 속 태아의 발달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의학/기술의 발전과 초미숙아의 성공적인 생존은 젊은 세대들에게 태아는 세포 덩어리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으면 이전 세대보다 더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과 신념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 스스로를 ‘Pro-Life Generation(프로라이프 세대)로 부르는 미국의 젊은 프로라이프 활동가들은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운동에 참여하며 선배 운동가들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물려받고 있다.
* March for Life(생명 행진)는 1973 년 미국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 한 ‘로 대 웨이드 판결’ 기념일에 워싱턴 D.C.에서 개최되는 낙태를 반대하는 연례 집회이자 행진이다.
장지영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연구팀장(이대서울병원 임상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