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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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패커 박사. ⓒTGC

▲제임스 패커 박사. ⓒTGC

IX. 개혁주의적 영성신학 제시: 초연 아닌 헌신의 태도,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합 강조

1. 기독교적 삶과 연결되는 신학

1987년 3월 9일 패커는 도쿄기독교신학원(Tokyo Christian Institute) 졸업식 강연을 했다. 패커는 이 강연에서 신학이 학문으로 머물지 않고 신앙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성찰했다. 그는 오늘날 유럽의 자유주의적 강단 신학에서 신학과 기독교적 삶이 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 신학교의 교육과정들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학문적인 이슈만을 다루어, 기독교적 삶의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신학생들을 복음 전도자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지식인 내지 회의자가 되도록 한다. 많은 신학생들이 신학을 하고 졸업을 한 후에 신학하기 전보다 하나님을 더 멀리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신학교육 컬리큐럼에서 기독교 신학 공부와 기독교적 삶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신학적 지식과 연구가 신앙적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교과과정이 기독교적 신앙과 삶을 다루기보다는 단지 학문적인 이슈들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패커는 초대교회시 신약의 복음서나 서신서들이 쓰여진 이유는 이것들이 단순히 기독교를 개념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삶에서 따르는 제자들을 만들기 위하여 쓰여졌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1970년대 복음주의자들은 “영성”(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아니했다. 하지만 패커는 신학과 삶을 연결시키는 용어로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패커는 영성 단어를 기독교적 진리를 삶에 적용시킨다는 의미에서 청교도 개념에 가까운 현대적 등가어로 보았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성이라는 용어를 1968년부터 사용했고,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패커는 “영성신학”이란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조직신학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패커는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 성취, 진작하고자하는 여러 가지 기독교적 활동에 대한 탐구, 그 활동에는 공예배, 개인의 기도, 그리고 이러한 경건활동에 실체적인 기독교적 삶에 미치는 결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영성 정의(定義)는 진리를 생활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패커 자신이 중요시하여 왔고 그렇게 신학적인 활동을 하고 그렇게 살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청교도로서 자신이 청교도적 삶을 살기를 노력했다.

2. 체계적 영성: 초연(超然) 아닌 헌신의 태도

패커는 1989년 리전트 칼리지 상우 유통 치(Sangwoo Youtong Chee) 석좌교수 취임강연에서 "체계적 영성“(systematic 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의 조직신학의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감정과 생각들을 다루는 것이다.

패커는 이러한 신학의 유형을 주관적으로 정향된 자유주의 신학으로 보고 이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다. 이러한 신학은 신학의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다루는 것으로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은 19세기 슐라이어마허로부터 불트만을 거쳐 캅((John B. Cobb)의 과정신학자들에까지 이르는 인간중심의 신학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된 성경적 진리를 해석하고 종합하는 것이다.

패커는 이러한 신학의 유형을 객관적으로 사실에 정향된 신학으로 보고 이에 대하여 지지를 보낸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신학 유형으로 정통주의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의 유형은 단지 냉정하고 초연함(detachment) 속에서 진행될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을 개념화하고 자료들을 마치 일반 과학적 자료들처럼 취급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사유의 결과는 성경을 주해하는 계시신학의 차원에서 이탈하여 이성적 사유가 하나님의 진리를 지배하고 구성하는 사변신학으로 나아감을 초래한다. 이러한 신학의 학문적인 체계화 작업에 대하여 패커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초연한 태도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사유 개념이라는 상자 안에 가두고 비인격적인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커는 “작지만 중요한 수정”을 가한다. 그의 수정이란 초연함이 아니라 헌신(commitment)의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패커는 헌신의 태도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 상대자로 다루고 인간의 사고 틀 속애서 하나님을 사변하는 데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는 계시적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를 추구하는 올바른 태도를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헌신의 태도는 이성적 사유가 지배하기 보다는 성령의 조명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헌신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적 지식(knowledge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지식(knowledge of God)이 추구된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태도 속에서 그분을 묵상하고 그를 향한 기도와 찬양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단지 머리로 아는 이론적 지식은 하나님을 마음과 영혼으로 아는 인격적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서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중세의 최고의 신학자인 토마스의 문장을 인용한다: “신학은 하나님에 의해 가르쳐 지며, 하나님을 가르치며, 우리를 하나님에게 인도한다”(theologia a Deo docta, Deum decet, ad Deum ducit).

3.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천명: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

패커는 신학의 방법으로 영성신학을 제안하면서 이를 위하여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을 제안한다. 조직신학의 사유는 영성의 태도 속에서 실행되어야 하고 영성의 태도는 조직신학적 사유의 표현으로 견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양자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 신학적 사유와 경건한 탐구는 체계적 영성(systematic spirituality)이 되며 하나님을 개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패커는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에 대한 실례를 다음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전한 영성은 철저히 삼위일체론적이 되어야 한다. 건전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세 위격 모두에게 온당한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성부를 무시하면 성부의 예정과 예지를 무시하게되고, 그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신앙, 하나님의 사역과 훈련을 상실하고, 하나님 가정 안에서 자기 탐닉에만 몰두하여 게으르고 버릇없는 신자가 된다. 성자를 무시하면 성자의 중보와 속죄, 천상에서의 간구를 상실하게 되어 율법주의에 떨어지게 된다.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께서 창조하시는 성부와의 교제, 인간 본성의 새롬게 하심, 확신과 기쁨,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패커는 하나님에 대하여 삼위일체론적으로 균형잡힌 신학적 사유를 하고자 제안하고 있으며, 이는 아주 올바른 방향이다.

패커는 교실과 강의실에서만 통용되는 강단신학을 거부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신앙과는 동떨어진 학문적 정직성에 입각하는 신학을 하게될 때 신학은 지성은 만족시키나 신앙과는 괴리(乖離)되게 된다. 불트만의 경우처럼 신약의 비신화론화라는 지성적 이해만을 만족시키고자 함으로써 탈교회적, 탈신앙적 신학이 결과된 것이다. 보수정통신학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하나님 지식을 체계화하고 알지라도 그것이 신자의 삶과 분리될 때 무용지물이 된다. 영성으로 표현되지 않는 신학은 신앙적 삶과 괴리되어 무용지물이 된다. 패커는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하다고 역설하였다.

패커는 기독교 이후 시대 진정한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자로서 학문적 신학을 수행하는 학자로서 신학이 나아가야할 진정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진정한 신학은 영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패커의 영성신학 개념은 현대를 살았던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그가 우리에게 남겨진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성신학,”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신앙적 삶과 연결되는 신학”이라는 패커의 용어들은 기독교 이후의 삶을 맞이하고 있는 구미(歐美)신학적 상황 속에서 교회의 전통으로 복귀하는 신학의 진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패커는 일반적으로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리는 복음주의자들과는 달리 “영성”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영성신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하였고, “조직신학의 구체적인 적용,”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이라는 신학적 개념까지 제시한 것은 그가 신학적 방법에 있어서 단지 이성을 사용하는 정통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신학적 경건의 열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성신학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 패커는 단지 은사주의자들이 주구하는 신비주의로 나아가기를 주장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적인 인간의 경건훈련을 강조하는 신인협력설로 나아가지 않고, 성령을 좇는 삶, 성령 안에서 경건을 추구하는 성경적 영성훈련을 강조한 것은 그로 하여금 시종일관 복음주의 신학자로서 남아 있도록 하였다.

X. 정통 개혁신학 입장 제시

패커는 “될 수 있는 대로 논쟁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논쟁의 중심이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런 논쟁 상황에서 패커는 대개 성경적이고 정통주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같은 성공회의 복음주의적 ‘학자인 목회자(scholar-pastor)’였던 존 스토트보다 좀 더 온건하고 정통적 입장을 대변했고, 신학적으로 정통파 개혁신학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곳곳에서 잘 제시한 신학자(theologian)였다. 패커는 항상 매우 조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 성공회) 안에서 개혁신학적 목소리를 강력하게 외친 사람 중 하나였다. 역사신학자 마크 놀은 패커의 개혁신학적 성향이 성공회적이며, 복음주의적이라고 평가하였다: “어법은 영국적이며, 정서는 복음주의적이다. 패커의 복음주의적 유별한 특성은 그의 교육, 그의 칼빈주의, 그리고 그의 성공회주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결합은 아주 비역사적, 거의 비전통적인, 자주 반지성적인 복음주의가 미국 역사에서 고통을 당했던 과도함에서 벗어나게 했다,”(Mark Noll, "The Last Puritan," Noll’s contribution to Doing Theology for the People of God: Studies in Honor of J. I. Packer, edited by Donald Lewis and Alistair McGrath, InterVarsity Press, 1996). 이러한 마크 놀의 평가는 패커의 균형적 정통주의적 개혁신학에 의하여 그가 천명한 복음주의는 그동안 복음주의가 빠질 수 있었던 아주 비역사적 정향, 그라고 거의 전통 무시함, 자주 반지성적 정향에서 벗어나는 과격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았다.

패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는 옛 청교도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교회를 향해 회개와 거룩을 촉구했으며, 신자들에겐 성령 안에서의 동행, 자신의 죄와 싸우라고 채찍질했다. 패커는 칭의 논쟁에서도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역설했다.

패커는 특히 신론과 구원론에 있어서 개혁신학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리하여 형벌을 받으셨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둘다 강조하고, 신학의 모든 측면에서 개혁신학의 강조점을 잘 드러냈다. 그는 참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였다. 패커는 그의 저서 『복음전도란 무엇인가』에서 칼빈주의가 중심교리롤 천명하는 구속론적 입장(the soteriological position)을 견지했다.

패커는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 속에서 성경의 무오한 권위를 지켰다. 1977년엔 R.C 스프롤, 존 게르스트너, 노먼 가이슬러, 그레그 반센 등과 함께 국제성경무오협회를 구성했다. 이는 1978년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시카고 선언(Chicago Statement, 1978)을 끌어낸 기초가 됐다. 패커는 1978년, 시카고에서 있었던 ‘성경의 무오성을 위한 국제협회’(The International Council for Biblical Inerrancy)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학계의 유행을 말하자면 로마 가톨릭이 제2바티칸공의회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해 왔으나 그 이후에는 구교의 대부분의 학자들도 신교의 회의주의에 대규모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이제는 구교에서도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입장은 소수파의 입장이 되어 버릴 것으로 보인다.” 패커는 국제성경무오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Biblical Inerrancy)에서의 10년간의 리더십을 만족스럽게 되돌아보며, “무오에 대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피력은 패커가 최선을 다했던 여러 이유를 설명해준다. 패커는 성경의 본질과 해석,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같은 수많은 신학적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복음주의 선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해 과거를 바라본 전통주의자였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마크 A. 놀은 “패커는 칼빈주의자로서 무게 있는 신학적 전통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지난 수세기 동안 진정한 신학의 전통을 이루어 왔던 서너 개의 우파들을 아우르는 학문적 심오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노작들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자기의식이 뚜렷한 개혁주의 신학이다. 패커는 주의 깊은 주석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에 대한 확고한 수호자, 자기의식이 뚜렷한 해석학적 이론가”라고 말한다.

패커는 2000년 제자목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학 속에 청교도 신앙과 정통주의가 융합되어 있다고 증언하였다: “나의 신앙 형성에는 칼빈과 청교도들이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칼빈과 청교도들에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한 손에는 정통성과 진리가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 제자의 도가 있다. 이제 이것은 나의 삶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

패커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가 된다”며 체계적인 신앙 지식 추구를 주문했다. 대표작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비롯해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 『기독교 기본진리』, 『청교도 사상』 등 300여권의 책과 사전 편집, 기고글 등이 있다. 그는 ESV성경의 책임 편집자를 역임했다.(계속)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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