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그 마음, 일찍 헤아리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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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2)] 전능자의 쓰라린 도구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여인의 배가 또 다시 불러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맏며느리의 득남을 원했다. 둘째를 임신하고도 여인은 고단한 시집살이를 계속해야 했다.

여인의 가족은 시골에서 시부모와 시집 안 간 시누이들을 모시고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당에는 수탉 한 마리가 여러 암탉을 거느리고 정답게(?) 나들이를 다녔다. 농장 뒤에는 오두막이 딸린 널따란 포도밭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큰 웅덩이와 함께 조그마한 집이 한 채 있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둘째를 임신한 아내더러 돈사(돼지우리)에 가서 일을 같이 하자고 했다. 어쩌면 할머니가 아들을 꼬드겨서 며느리를 불러냈을지도 모른다.

여인은 어쩔 수 없이 돈사로 가서 남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여인은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를 배고서는 편할 날이 없었다. 이번에도 사내아이가 집안에 더해졌다. 이 아기도 앞으로 형과 함께 집안의 풍파에 허덕일 것이 분명했다.

타자들의 실타래처럼 얽힌 사연은 또 하나의 존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두 형제는 누가 봐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 놓였다. 여러 암탉을 거느린 한 마리의 수탉처럼, 집안의 ‘수장’은 온 가족들을 좌지우지했다. 마치 자신이 전능자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하늘의 전능자가 그 집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 옛날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던 당신의 백성을 지켜보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하늘의 전능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모든 걸 다 알면서도 그냥 침묵한다. 왜 그럴까? 전능자의 침묵은 존재의 행복을 빚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인 것일까?

하루는 여인이 시부모 몰래 남편에게 긴급 제안을 했다. 네 식구가 면 소재지로 이사해서 식당 일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수장’의 허락을 받아, 면 소재지에 조그마한 식당을 개업하게 되었다.

이 일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이루어낸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의 어떤 ‘계산’에 의한 것이었을까?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시부모 곁을 벗어난 여인은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여인은 열심히 돈을 벌어 두 자식을 보란 듯이 키우리라고 마음먹었다.

“여보, 이제 우리 새로 시작하입시더. 율이, 호야를 잘 키워 큰 인물로 만들어 보입시더. 당신도 마이 도와주이소!”

“알았데이. 같이 열심히 해보께. 근데 난 아직 어무이의 입김이 좀 무섭다카이.”

“당신은 바로 그게 문제 아인교?! 앞으로 계속 어무이의 말씀에 기죽어 있을 끼라요?”

여인은 음식 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개업한 후 곧바로 입소문이 났다. 금세 손님들로 식당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면 소재지에 소문이 두루 퍼져 주부 대학 강사로 초빙되기도 했다. 심지어 군수가 이 지역을 방문할 때면, 여인은 면사무소로부터 만찬상 준비를 부탁받기도 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집안에서 큰 돈벌이 하는 맏며느리에게 돈 뜯어낼 궁리를 시작한 것이다. 돈사를 지을 때 대출받은 융자를 갚기 위한 명분을 내세웠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 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퍼주기 위한 것이었다. 시누이들이 식당에 방문할 때면, 여인은 매번 애간장을 태웠다. 시모의 명령을 떠받들어 그 사람들에게 상당한 분량의 고기와 각종 반찬을 내줘야 했다.

어째서 할머니는 딸들만 챙기고, 며느리에게는 늘 차갑게 대했을까? 옛날 어른들은 며느리를 늘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걸까? 아무튼 여인은 시모와 시누이들 사이에 치여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시부모 곁을 떠나 새롭게 삶을 시작하려 했지만, 여인 뜻대로 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여인은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 때문에 엄청 힘겨워했다.

이 여인은 지금 글을 쓰는 이의 모친이다. 이제 하늘의 전능자 품에서 안식을 누리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게다.

당신이 겪었던 고초를 생생하게 폭로하는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려줘서 아마 고맙다는 표정을 지을지도.

그래서 당분간 모친이 당한 수모를 들춰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겠다. 아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그 마음을 좀 더 일찍 헤아리지 못해 참 후회스럽다.

아들의 진짜 행복을 빚어내기 위해 전능자의 쓰라린 도구로 쓰임 받았던 당신! 오늘 따라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소.

‘행복 신학’을 담아내는 이 글은 상당부분 당신에게 공로가 있소이다. 이제 불러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당신이지만, 부디 전능자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하소서! 영광스러운 부활 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때는 제발 아들 걱정은 하지 마소서.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산 부곡중앙교회와 세계로병원 협력목사로 섬기면서 가족 전체가 필리핀 선교를 준비하는 중이며, 4년째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집중강의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는 <21세기 부흥을 꿈꾸는 조나단>,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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