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오늘의 현실과 현상을 가지고 온갖 두려움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이들은 매우 깊이 현실을 분석하면서 은근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라는 악한 정신의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여기저기에서 탄식과 불안의 소리가 들려온다. 극동에서는 유독 코로나로 인한 희생자가 많다 하고, 병원에 가면 이상한 약을 투약하여 환자의 몸을 녹여 죽었다는 소식(?)을, 본 것은 아닐텐데 남에게 전해들은 것을 매우 확신 있게 이야기하니 사실인가 하여 두려움이 생겨난다. 두려움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발생한다.
이런 이야기,
옆집의 잘 아는 아저씨, 아주 건강하고 운동도 많이 하고, 늘 활기차게 사는 사람인데 갑자기 죽었단다. 그리고 덧붙이는 소리, 아마도 코로나 때문인 것 같다. 증세도 없었고, 열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게도 혹시 그런 일이 하면서 두려움이 은근히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불안의 연속이다.
참 대처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일에 사사건건 판단해야 하고 옳고 그름을 알아야 하는데, 그만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다. 그럴 시간도 없다. 그런데 난무하는 말과 소리들로 인하여 마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모두가 자기의 생각에 옳은 대로” 판단하고, ‘보는 대로’ 자기에게 ‘이해’되는 대로 말하고 떠들기 때문이다.
분노와 두려움을 전파하는 전도자들 이여!
두려움을 전파하면 그것이 무엇을 해주는가? 불안의 소리를 전파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당신의 알량한 정보는 구태여 반복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이해하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익히 아는 기본적인 내용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런 생각없이 왜 자꾸 증가하여 반복하여 불안과 두려움을 조성하는가?
믿음은 어디에 있나?
더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심하게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기도하면서 무엇을 믿고 있다는 것인가? 허기야 성경 속에서도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되는데,
마가의 다락방에서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무리들, 마침내 베드로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에 의구심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지금까지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했지만, 기도는 기도이고 실상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기도는 기도 행위로 만족하고, 기도함으로 위로받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믿음도 입에서 외치고 힘주어 할렐루야 말할 때만 믿음이고, 현실의 삶과 문제 속에서 믿음은 맥이 없고,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어디까지 믿음인가 의구심이 든다. 믿음은 어디에 두고서 두려움과 불안을 조성하는 자로 변했는가, 수없이 두려움과 부정을 외쳐는 전도자들이여!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교회에 가야만 믿음과 소망이 살아나는가? 두려움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있다. 누군가 들으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두려움은 매운 고추 맛처럼 사람의 입맛을 당기는 성분이 있다. 두려워하면서도 자꾸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더욱 두려움속으로 빠져들면서 좇아가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사실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두려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 수없이 깔려 있다. 몰라서 편안히 넘어갔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을 붙잡고 씨름하고 그 놈의 노예가 되어서, 하수인 노릇을 한다면 마귀의 종 노릇밖에 더 되는가?
수없이 SNS로 코로나 상황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카톡~ 카톡~’, 들여다보면 코로나 정보이다. 사명을 가지고 전파한다.
아마 본인들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려움의 전도자인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극단주의 이슬람주의자들의 전략 중 하나는 ‘두려움과 공포’이다. 무지막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의 진가는 위기의 상황에서 어떠한 소리를 발하는가에 따라서, 주변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달라진다. 위기의 상황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좋은 기회가 아닌가.
소망의 소리, 격려와 위로의 소리로 주변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저기 두려움 속에 탄식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스도인이 진가를 발휘해야 할 때다.
세르게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