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서 무슬림 동료와 논쟁 벌인 뒤…
파키스탄의 한 기독교인 간호사와 그녀의 가족들이 이슬람 동료들에 의해 신성모독 누명을 쓰고 잠적했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가 1월 3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또 그녀가 동료들에게 공격받는 영상은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기독연대(ICC)에 따르면, 기독인 간호사 타비다 나지르 질(Tabitha Nazir Gill·30)은 9년 동안 근무한 신드주(州) 카라치 소재 산부인과 병동에서 신성모독 혐의를 받고 가족들과 함께 피신한 상태다.
익명의 한 무슬림 동료는 자신이 병원 환자에게서 현금으로 봉사료(팁)를 받은 것에 대해 그녀와 개인적인 논쟁을 벌인 후, 그녀를 신성모독 혐의로 고발했다. 해당 병원 측은 앞서 모든 의료진에게 현금으로 된 봉사료를 받지 말라고 지시했었다고.
한 소식통은 ICC와의 인터뷰에서 “병원 직원들은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질을 밧줄로 묶고 방에 가둔 후 구타했으며, 그녀는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녀에게 불리한 증언을 발견하지 못해 그녀를 석방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녀를 고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이 소식통은 “경찰은 질에게 보호를 제공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백 명의 무슬림들이 경찰서에 모여 그녀를 고소하라고 강요했고, 이에 1월 29일 고소장이 제출됐다”고 말했다.
가톨릭 아시아 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질을 파키스탄 신성모독법 제295-C조에 따라 고소한 상태다. 파키스탄 형법 295조와 298조에 포함된 신성모독법은 이슬람이나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범죄를 징역이나 심지어 사형에 처할 수 있다.
파키스탄은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이들을 신성모독 혐의로 수감하고 있다. 그러나 허위 고소인이나 거짓 증인을 처벌할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와 같이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자주 남용된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기독교인, 아흐마디야인, 힌두교인 등 소수 종교인들을 목표로 삼는다. ICC는 “질과 그녀의 가족들은 무슬림 자경단원들의 폭력을 우려해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ICC 윌리엄 스타크(William Stark) 지역 책임자는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 혐의는 비록 거짓으로 판명되더라도 피고인의 삶을 영원히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파키스탄 당국에 이 허위 주장을 철저하고 공정하게 조사하고, 허위 고발자를 사법처리해 줄 것을 촉구한다. 파키스탄 신성모독법은 더 이상 개인적인 복수나 종교적 증오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 이러한 법은 소수 족에 대해 종교적 동기를 가진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의 도구로 사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지 무슬림도 병원에서 구타를 당하는 질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 공분을 나타냈다.
이슬람 성직자인 마우라나 타히르(Maulana Tahir)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 메시지에서 “임란 칸(Imran Khan) 총리와 국가 지도자들은 이 사건에 주목해 달라. 경찰 조사 결과, 그녀가 신성모독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영상을 보면, 공격자들의 얼굴이 선명하다. 폭력이나 종교적 광신자가 형법 295조를 악용해 소수민족을 해치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지 못하도록 엄벌을 처해야 한다”고 했다.
타히르는 또 “이 같은 법은 소수 소녀들이 ‘폭력의 산’에 직면하게 만든다”면서 “이 법을 개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도 고통을 받아선 안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신의 뜻을 따라 창조물을 보호하라고 촉구한다. 소수민족은 평화롭게 살면서 예배드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파키스탄은 미 국무부가 지정한 종교자유특별우려국이며, 오픈도어즈가 발표한 ‘박해국가 순위’에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ICC에 따르면, 1987년과 2017년 사이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 혐의로 기소된 사람의 수는 총 1,534명이며, 그 가운데 최소 238명이 기독교인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인은 파키스탄 전체 인구의 1.6%에 불과하다.
2018년 파키스탄 대법원은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10년 동안 복역 중이던 아시아 비비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고, 극단주의 단체들이 대법관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