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성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돈이 오가는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장사하는 집이 무엇입니까? 돈이 오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의 모습을 보시고 의분(義憤)하셨습니다(요 2:16하).
정치 지도자들이 백성의 얼굴이라면,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의 양심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백성이 세상 탐심의 누룩을 제하고 하나님께 순수하고 진실된 믿음을 갖도록 말씀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유월절 기간에 어떻게 대목을 볼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히 예배를 드렸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내면이 부패하여 악취가 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것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만을 책망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성전 자체의 기능을 잘못 이해하는 모든 사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언급했던 요한복음에서는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마태복음에서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마 21:12-13), 마가복음에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막 11:17).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성전의 본래의 역할, 사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약 시대는 성전에 나오지 못해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왕상 8:46-50). 이는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속죄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제사 기능으로만 제한시켰습니다. 거기다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은 그때만이 아니라 예레미야 시대에도 똑같았습니다(렘 7:1-15).
그들은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거짓 맹세하며 풍요의 신 바알에게 분향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고도 성전에 나오기만 하면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이 세상에서 별별 몹쓸 짓, 온갖 가증한 짓을 행하고 성전에 와서 제사 한 번 지내고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오죽 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하셨겠습니까(말 1:10)?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금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를 향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시며 둘러 엎으실까요? 아니면 그냥 두실까요?
필자는 아마 그냥 두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강도의 소굴과 같이 된 교회가 한두 곳이면 둘러 엎겠는데, 너무 많으니 그냥 두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버려 두시는 것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 중의 하나입니다(롬 1:24-28). 내버려 두시다가, 때가 되면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한국교회 최대 관심은 교회 성장입니다. 목사들이 모이는 수련회에 가면 교회 성장 강사가 최고 인기입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라면 온갖 세상의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믿음이 아니라 긍정심리학인 ‘긍정의 힘’이 등장합니다. 긍정심리학은 1998년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미국심리학회에서 한 연설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7년 후에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2005)>이 등장합니다.
필자는 <행복과 긍정심리(시그마프레스, 2015, 55쪽, 2016년 재판, 57쪽)>에서 긍정의 힘을 비판했지만, ‘긍정의 힘’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셀리그먼이 주장하는 긍정심리학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전도와 예배에 마케팅 전략은 필수입니다. 마케팅 전략이 무엇입니까? 비즈니스 전략입니다. 비즈니스 전략이 무엇입니까? 이익 창출, 이익 극대화입니다. 비즈니스 전략이 될 때 영혼 구원도 구원이지만 헌금, 교인 숫자, 교회의 사이즈에 민감해집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온갖 인위적인 방법과 마케팅 전략을 동원하여 메가 처치가 된 교회들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주 한국 한 초대형 교회가 100개의 교회로 나누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몇천 명 모이는 예배당에 몇십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빚을 내서 몇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을 지은 메가 처치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유럽교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한 대로, 유럽교회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세상의 방법으로 키운 한국교회를 코로나19로 손대고 계시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이제 본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 만백성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차고 넘치는 교회,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남식 목사
대학마을교회 목사
인하대학 초빙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