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베스트셀러는
한 권의 책 속에 길 찾은 사람, 책의 소중함 깨달아
스마트폰과 미디어 확산 시대, 다시 책을 집어든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환, 어떻게 가능할까?
세상에는 다양한 내용의 수많은 책들이 있다. 책은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으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필자는 책이 세상을 이겨내고 인생의 가치를 일깨우며 맑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책이 초기에는 대, 나무, 깁, 가죽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점차 종이가 사용됐다. 인쇄물로 책이 출판된 것은 우리나라의 ‘직지(直指)’가 최초이다.
서양에서 최초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로 42행 성경을 출판한 해는 1455년이다. 구텐베르크 활자로 발행된 것 중 가장 독보적인 책은 성경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호화 장식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미서본(美書本)에 해당된다.
세계 3대 미서를 든다면 DOVE PRESS의 걸작으로 20세기 초 나온 신·구약 영문성경 ‘The English Bible‘ 외에 ‘초서 저작집(The Works of Geoffrey Chaucer, KELM SCOTT PRESS, 1896)’, 단테 저작집(Tutte Le Opere DI DANTE ALIGHIERI, ASHENDEN PRESS, 1909)을 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377년 고려 우왕(禑王) 3년에 구텐베르크보다 78년 빨리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출판했다. 세계 최초 금속 활자본 ‘직지’에는 선광 7년(고려 우왕 3년)에 인쇄했다는 기록이 또렷하다.
그런가 하면, 세종대왕이 15세기 미천한 백성들을 위하여 ‘한글’을 창제하고 활자를 개량 주조하여 수많은 전적을 간행하여 보급했다.
독일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보다 14년 먼저, 보다 널리, 보다 값싸게 보급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활판 인쇄술을 개발한 것은 매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 역사의 새 기원을 열었다.
특히 표의문자(表意文字)인 중국의 한자(漢字)가 수천 년 동안 사용되던 동북아 문화권에서, ‘한글’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유일하고 완벽한 표음문자(表音文字)였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매우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우수한 글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글 창제는 ‘한반도의 기적’이었다. 세종 시대의 귀족들은 간단한 글을 쓰기 위해 최소 1천 자 정도의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한 조선에서 하룻밤이면 배울 수 있는 한글 알파벳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1446)하자, 조선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훈민정음 반포로 우리는 문화 국민으로서 고유한 문자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민족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훈민정음은 28자의 표음문자로서, 왠만한 소리는 거의 다 적을 수 있어 창제 당시 바람소리나 학의 울음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훈민정음 창제로, 우리 국문학과 출판은 획기적으로 발달됐다.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지은 ‘용비어천가’는 우리 국문학 작품의 첫 출발이 되었고, ‘월인천강지곡’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이 훈민정음을 익힘으로써 글을 아는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제일 많이 발행된 책은 단연 성경(The Holy Bible)이다. 100억 부 이상 가장 오래도록 많은 사람이 읽은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이다. 경전(經典)으로는 이슬람의 꾸란(코란)이 8억 부 정도, 몰몬경이 1억 5천부 정도 판매됐다.
최고 판매 작가로는 역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작품이 30억 부 이상,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작품이 4억 부 이상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주목하는 단행본에는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위대한 유산’의 저자로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에 버금간다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가 있다. 1859년 발표한 이 소설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에서 펼쳐지는 격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맞서는 책이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소설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 Antoine Marie Roger de)가 1943년 쓴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로, 160개 언어로 번역되어 2억 부 이상을 넘어서고 있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주인공이 어떤 별에서 우주여행을 온 어린 왕자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인간이 고독을 극복하는 과정을 어린 왕자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 판타지 소설 바람을 일으킨 잉글랜드 존 로널드 로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斑指의 帝王)’이 있다. 창의성이 돋보이는 대하 3부작으로 1억 5천만 부를 발매하며 명성을 얻었다.
<반지 원정대>, <2개의 탑>, <왕의 귀환>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60년대 중반 발표되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높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은 C. S. 루이스(Staple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 어슐러 르귄(Ursula Kroeber Le Guin)의 ‘어스시 시리즈’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힌다.
톨킨의 이전 작품인 호빗(The Hobbit)의 다음편으로서 이어진 ‘반지의 제왕’은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루며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다. 톨킨은 ‘호빗’으로 1억 부 이상, ‘반지의 제왕’으로 연이어 1억 5000만부 등 총 2억 50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영국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서,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린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로 뒤를 잇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필명으로 약 80여 편을,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연애소설을 쓰고, 희곡, 어린이 소설 등도 썼다.
이런 단행본 시장을 뒤엎는 이변이 일어났다. 시리즈물이다. 해리 포터(Harry Potter)는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연재된 영국의 작가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의 판타지 시리즈 소설이다.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시리즈 8권까지 매번 1억 부 이상 발행되며 전체 5억 부 이상을 상회하는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꾸준히 뒤따르는 것이 아동 문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1949년 작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문학을 가르쳤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는데, 특히 '나니아 연대기'는 그의 유일한 판타지 소설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성을 얻는 주제들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작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시인으로 꼽힌다.
또 매년 개정을 거듭하며 출판된 책의 경우 중국의 신화자전(神話字典,주편집자:위건공)이 있다. 1957년 발행된 이후 인구 수에 의해 자동으로 200쇄를 기록하고 5억 부대의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물론 ‘마오쩌둥(모택동) 어록’은 단일 출판으로서 중국 내에서 무료 배포되어 무려 11억 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1966년부터 홍성대에 의해 발행되어 교과서의 절대지존 자리를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 ‘수학의 정석’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성문기본영어’도 학창시절의 기억에 남는다. 1948년판 ‘옥스포드 영어사전(줄여서 OED)’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하는 영어사전으로, 인쇄 제본형 표준판은 1884년부터 부분적으로 나오기 시작해 44년만인 1928년 초판이 완성됐다.
매년 개정판으로 나오는 ‘기네스북(The Guinness Book of Records)’도 같은 유형이다. 세계 최고 기록들을 모은 책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연속 출간물이다.
기네스 양조회사 사장이었던 휴 비버 경의 궁금증에서 착안하여, 기록광 맥허터 쌍둥이 형제와 함께 만든 진기한 기록을 모은 책으로, 1955년 초판부터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세상이 주목하는 가장 큰 책은 어떤 책일까? 바로 그 책이 미국에서 발간된 ‘부탄(Bhutan)’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히말라야 마지막 왕국의 사진오디세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최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마이클 홀리(Michael Hawley)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가 만들었는데, 가로 1.5m 세로 2.1m 크기에 무게가 60㎏이나 나간다.
책 한 권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종이만도 축구장을 뒤덮을 정도며, 사용된 잉크의 양은 2갤런(약 8ℓ)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부탄의 모습을 세계에서 가장 큰 책에 담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MIT 학생들과 4차례에 걸친 현지탐사 끝에 완성한 이 책에는 ‘지구상의 마지막 상그릴라’로 불리는 부탄의 숨막히는 풍경 사진들이 들어 있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책은 무엇일까. ‘Old King Cole’이다. 이 책은 스코틀랜드 자장가를 수록한 것으로, 12쪽 분량이며 제작 년도는 1985년이다.
작아도 너무 작다. 워낙 작은 까닭에, 현미경으로 봐야 한다. 얼마나 작은지 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나 가능하다. 크기는 가로-세로 1mm이다.
책이 좋다. 책 속에서 희망을 얻었고 기도 속에서 감사를 배웠다. 그래서 책을 볼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애서가(愛書家)로서 책을 수집하다 보면, 책 표지(表紙)부터 보고 책을 평가한다. 장정(裝幀)은 잘 되었는지, 누가 장정한 것인지, 표지화는 누가 그렸는지를 본다.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 대부분이 책의 장정(裝訂)과 표지화(表紙畵), 삽화(揷畵)등에 참여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책 장정이 북디자인(Book design)이라는 이름으로 그림 한 점과 같이 가치있게 재평가된다.
김용준, 정현웅, 길진섭, 김환기, 김기창, 장욱진, 남관, 박서보, 서세옥, 이준, 변종하, 문학진, 천경자, 박고석, 김영주, 이승만, 백영수, 구본웅, 백영수 등의 장정이면 언제든 좋다.
오랜 시간 내 맘을 설레게 한다. 아날로그(analogu)에 바탕을 둔 예술성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다. 이젠 미술이 곧 책이 되고, 책이 곧 예술이 되었다.
책은 단순히 그 내용을 넘어 전체적인 만듦새와 장정의 미적(美的) 특성으로도 조명되고 또한 감상되어야 할 대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추위에 떨어 본 사람이라야 태양의 따스함을 진실로 느끼고,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라야 쌀 한 톨의 귀중함을 절감하듯, 한 권의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은 사람이라야 책이 주는 지식과 지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스마트폰과 미디어의 확산으로 이 광할한 우주에서 책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에, 다시 책을 집어든다.
종이 책의 종말 시대는 전자 책과 앱북(App book)의 공존을 모색하며,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디지털(digital) 시대에 아날로그(analog) 시대의 감성은 가능한가? 어떻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환(transformation)이 가능한 것일까?
이효상 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서지학자
근대문화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