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은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마치 미처 모르고 있는 죄를 깨닫는 회개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프로이트는 자기를 알고(self-awareness)(통찰하고) 자아의 힘(ego strength)이 있으면, 노이로제를 극복하고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정신건강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진실한 건강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서 온다고 믿는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 앎(self-awareness)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히브리서 4:12).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을 논할 때, 자아 중심적(ego-centric)이었고, 적응과 평온와 생존이 목표였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았다. “이웃을 사랑함“은 기독교인의 영적 건강에 기본이다(요한복음 13:34.). 진정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과거 상처를 고치시고, 기능을 변하게 해 주셔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권능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신다(요한복음 8:32). 성령은 그 일을 정신분석가에게 맡기시지 않으실 것이다. 기독교인이 볼 때, 정신분석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회피하게 하고, 죄의 개념을 무시하도록 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 같다. 성경은, 죄인은 전문가(목사나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이며, 죄의 치유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개와 믿음이다(로마서 12:2).
예수께서는 “놀라운 상담가”(Wonderful Counsellor)이시다(이사야9:6). 이런 신령한 상담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프로이트나 정신분석가 융, 또는 아들러, 그리고 상담가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 또는 기타 기독교를 부인하는 전문지식인들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길을 밝히 비추시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신다(시편 119:105).
성경은, 성경이 다음 네 가지에 유용하시다 말씀하신다(디모데후서3:16).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teaching)과 책망(rebuking)과 바르게 함(correcting)과 의로 교육(징계)하기(training inrighteousness)에 유익하다. 성경의 목적은 하나님의 종으로 선한 일을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시키는 것이다(디모데후서 3:17). 정신건강은 부산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기독교에서 죄를 사하게 되는 회개(고백, 또는 고해성사)는 정신분석과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신분석은 고통받는 자가, 원치 않은 고통을 주는 정신장애에 대해, 자유연상으로 환상이나 꿈등 무의식의 내용을 통찰하는 과정이며, 그 치료과정에서 과거력이나 환경의 영향을 고려한다. 그러나 원죄개념은 없다. 정신분석은 “죄”보다 죄의식을 문제 삼는다. 반면 기독교는 고통의 원인에는 개인적 행동에 의한 죄뿐 아니라기본적으로 원죄가 있으며, 모든 죄는,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과거력이나 환경은 문제 삼지 않고, 은총으로 죄를 사하고 구원해 준다고 약속하시었다. 단 고백 이후 죄와 악에 대해 의지(will)로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고 고통스런 투쟁적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죄 문제에 있어 정신의학이 “의지의 힘”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과학으로서 약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신분석도, 죄의 고백과 비슷하게, 정신장애에 대한 치유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분석가 앞에서 자유연상을 통해 죄와 악을 통찰한다고 해서 영적으로 개선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는 이전보다 정신건강이 좋아졌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속죄함을 받아야 해결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는 병은 자기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속죄를 요구하지 않고 벌도 주지 않는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