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징집과 안전 위협 피해
지난 2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후 기독교인들이 안전을 찾아 정글 등 야생으로 피신하고 있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가 20일(현지시각) 미국 오픈도어선교회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현지에서 작은 교회를 목회 중인 치트 목사는 2월 쿠데타 이후 그와 교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얀마 정치 지도부를 구금했던 군사정권은 현재 교회, 사무실, 카페, 주거용 건물 등을 습격해 시위자들을 색출하며 총격을 가하고 있다.
치트 목사와 교회에 소속된 18명의 가족들은 정글이 더 안전한 장소라는 결정했고, 모두 야생에 몸을 숨겼다. 쿠데타 이후 음식 값이 2배로 뛰었기 때문에, 이들은 쌀을 살 여유가 없어 밀림에서 뿌리와 잎을 채취하고 있다.
이들이 직면한 위협 중 하나는 군사 정부에 의해 군대에 징집되는 것이다. 외딴 마을에 사는 한 목회자는 오픈도어와 협력하고 있는 루윈에게 “지난 주 촌장에게 군복무 요원 30명을 모집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았다. 지금 목회자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숲속에 숨어 있다”고 전했다.
루윈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황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인터넷이 끊기면서 통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 오픈도어의 파트너들은 현지 기독교인 440만 명 중 상당수가 겪고 있는 현재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수도 양곤 출신 기독교인인 민 내잉은 오픈도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집 근처에서 총성과 수류탄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의 집들은 저녁 8시 이후 불을 꺼놓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우리는 낮에도 집 안에 있다. 식료품을 사러 가는 것과 쓰레기를 버리는 것 외에는 외출할 수 없다. 양곤의 한가운데에 보안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미얀마에서 심각한 박해에 직면해 있으며, 대다수가 분쟁 기간 동안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쿠데타 이전에도 미얀마는 가장 오랫동안 내전에 휘말린 국가였다. 내전은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직후 시작됐다. 중앙 정부는 제한된 자치권을 약속 받은 지역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들 지역의 무장 민족은 자기결정권을 위해 싸웠다.
내전은 특히 친, 카친, 카렌의 기독교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반란 단체와 군대 양쪽의 박해를 받는다. 전투는 계속 진행 중이며, 대부분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10만 명 이상이 난민 캠프에서 지내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음식과 의료 서비스 없이 수 년간 그곳에 있었다. 기독교 소수인이 많은 이웃 샨 주에서도 싸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2월 쿠데타는 현지 기독교인들에게 긴장감을 더했을 뿐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거리에서 시위자들과 합류했다. 미얀마 중부의 마이라 목사는 시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지역사회의 구성원들과 매일 시위에 동참했다. 그는 오픈도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람들이 싸우고 항의할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난 나가서 항의하기로 결심했다. 일부 다른 목회자들도 교회에 남아 단식과 기도를 관철하는 쪽을 택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원한다”고 했다.
마이라 목사는 너무 위험해지자 시위를 중단해야 했다. 군 장교들이 그들의 지역을 침략했고, 그는 교회의 문을 열 수 없지만, 기도와 성경공부를 위해 일부 성도들과 함께 모였다. 미얀마 중부 조슈아 목사도 초기의 민주화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그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음식 꾸러미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또 다른 목회자인 지우 목사는 가난한 교회 이웃에게 77파운드의 쌀을 기부했다. 또 시골에서 온 다른 목회자들을 전화로 돕고 격려했다.
오픈도어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정글까지, 미얀마 교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음식과 격려의 말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실제적이고 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