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같던 불교 선임 위해 ‘원수 사랑’ 따라 기도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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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9)] 원수까지 사랑하게 만드는 십자가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도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사랑에 미치게 만드는 엄청난 힘이 있다.

사람은 사랑에 미쳐야만 그 존재가 변화될 수 있다. 그 사랑을 느끼면서 존재적 행복(‘자기 존재 자체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은 전능자 안에서 행복을 느껴야 하는 본성이 있다.

어릴 적 필자도 한동안 그 사랑에 미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랑이 나를 미치게 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렇게 살기 원하지만, 신기하게도 청소년기에는 마치 스펀지처럼 그 사랑에 흠뻑 젖어 살았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야, 이 새끼야! 오늘까지 5천원 가져 오라고 했제? 근데 왜 안 가지고 왔노? 죽고 싶어 환장했나?”

“왜 너한테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데?”

“이게 어디서 말대꾸 하노? 따라와, 이 새끼야!”

동기들이 중3이 되자, 그동안 억눌렀던 폭력성을 드러냈다. 같은 또래에 비해 몸집이 큰 녀석들이, 어수룩하고 순진한 애들을 무지하게 괴롭혔다. 힘없는 친구들은 빈 교실로 끌려가 그 녀석들에게 책걸상으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 나쁜 녀석들 중에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나랑 절친했던 친구도 있었다. 나를 포함해 힘없는 친구들은 그 패거리를 심히 증오했다. 허구한 날 선량한 친구들을 못살게 굴었다.

어느 날 나도 화장실에 끌려가 똥 묻은 빗자루로 얻어맞았다. 울분을 삭이고 집에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 마태복음 5장 43-44절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필 이 말씀이 내 눈에 계속 보였다. 말씀대로라면, 내가 그 인간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닌가!

정말 어처구니없었지만, 어쨌든 말씀대로 한번 실천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원수의 집에 전화를 걸어, 말을 더듬거리면서 ‘사랑’을 고백해 버렸다.

“재… 재영아, 예수님의 사… 사랑으로 내가 너를 사… 사랑한데이.”

“뭐라카노? 오늘 나한테 빗자루로 처맞아서 정신 나간 거 아이가?”

그 후로 원수는 신기하게도 나한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다시 폭력을 썼다가는 징그러운 ‘사랑 고백’을 또 받을까봐, 오히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기분이 전혀 내키지 않아도 내 육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켜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날 후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사도의 고백(고전 9:27)을 힘써 따르기로 했다.

원수를 향한 내키지 않는 사랑을 또 한 번 실천해야 했다. 20년 전 군 생활 중 경험한 일인데, 지금까지도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불교 군종병이었던 어느 ‘원수’와의 에피소드이다. 두 달 선임이었던 그는 일병 때부터 나를 달달 볶기 시작했다. 밥을 빨리 처먹으라고 나무라며, 말 더듬는다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심지어 행동 하나하나에 생트집을 잡아 뼈가 마르도록 못살게 굴었다.

나도 참을성의 한계에 다다라, 급기야 그 인간을 노골적으로 무시해 버렸다. 정말이지 원수를 뒷산으로 몰래 끌고 가서 땅에 묻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호실에서 근무를 서다 큰 충격에 빠졌다. 내 자신이 갑자기 악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음을 문득 깨달았다. 내 딴에는 말씀대로 열심히 산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 용서하며 사랑하셨는데, 나는 단지 말로만 못살게 구는 선임병 하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주님 앞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순간 두려운 마음으로 철저하게 회개했다.

여전히 그 원수가 죽도록 싫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싫었던지 기도하다가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오려고 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새끼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지금은 그 인간이 저를 포함해 많은 후임들을 괴롭히고 있지만, 주님의 전능하심으로 그의 마음을 돌이키시어 사랑 받는 선임이 되게 하옵소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원수가 할 말이 있다고 나를 불러냈다. 이번에도 트집 잡아서 나를 괴롭히려는 줄 알았다.

“혹시 나도 너 따라 교회 다니면 안 되겠니?”

그 순간 나는 긴가민가했다. 혹시 이 인간이 뭘 잘못 먹어서 헛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마음이 누그러졌다. 지난 수개월 동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것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원수 사랑을 실천하게 하실 때는 내가 십자가 사랑을 자신하고 있을 때인 것 같다. 그 사랑에 겨워 이제는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에 취해 있을 때, 슬그머니 ‘원수 사랑’이라는 훈련 카드를 내미신다. 아마 원수 사랑을 실천하게 하셔서 십자가 사랑에 더욱 미치게 하기 위함일 게다.

이전에 우리가 당신과 원수 관계에 있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또한 깨닫게 하시기 위함일 게다. 이 과정에서 나의 존재가 변하는 신적 행복을 느끼게 된다.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산 부곡중앙교회와 세계로병원 협력목사로 섬기면서 가족 전체가 필리핀 선교를 준비하는 중이며, 4년째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집중강의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는 <21세기 부흥을 꿈꾸는 조나단>,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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