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이신칭의’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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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신칭의’를 숭상하는 이들 중에 그것에 과도히 몰입하여 그것에 ‘신비주의의 옷’을 입히거나 ‘이신칭의를 깨달아야 구원 얻은 것이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지적 신비주의(gnostic mysticism) 경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성 어거스틴(St. Augstine) 수도원 종탑에서 ‘시편 22편’을 통해 ‘그리스도의 대속’과 ‘이신칭의’를 깨달아 ‘천국 입성’을 경험했다는 소위, ‘탑 경험(experience of tower)’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모두가 다 이를 공유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로마가톨릭의 주관주의’에서 건져내고 객관주의의 표상이 된 ‘이신칭의’가 이들에 의해 다시 주관주의의 매개체로 악용되는 느낌이다. 아이러니컬하다.

본래 ‘이신칭의’라는 용어는 보편적인 어휘가 아니었다. 교회사에서 그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루터를 필두로 한 종교개혁 때 부터였다. 물론 신·구약 성경엔 그 개념이 이미 나타났지만(창 15:6, 합 2:4, 롬 3:22, 26, 갈 2:16)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ith)’라는 정형화된 용어(formal term)가 등장하기는 그때부터였다.

한국교회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신앙고백서’, ‘기독교 강요’ 같은 교리 체계를 공부하는 일부 장로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했고, 대중화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지금도 교리에 무관심한 일부 장로교회들을 비롯해 다른 교파들에선 생소하다.

여전히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겐, ‘이신칭의’보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말씀이 더 익숙하다. 만일 그들의 생각대로 ‘이신칭의를 알아야만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는다(이신칭의, 以信稱義)’는 말이나,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이신득구, 以信得救)’는 말은 실상 같은 뜻이다.

물론 신학적으론 둘이 엄격하게 구분되고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상 ‘구원’이 ‘칭의’ 뒤에 오고 전자가 후자를 포용하는 형국(形局)이지만, 실제 신앙생활에선 보통 둘을 동일시하며 상호 교호(interchange, 相互交互)한다.

이는 ‘예수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구원’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은 ‘칭의(稱義)’에서(구원을 생략하고) 바로 ‘영화(榮華)’로 나아가거나(롬 8:30) 반대로 ‘칭의’를 생략하고 바로 ‘구원’을 말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이신칭의’를 몰라도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구원의 지식’은 족하다. 성경은 거두절미하고 그냥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가르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신칭의’에 집중하고 그것에 매료된다. 이는 그것이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은혜’를 명료히 드러내어 구원의 확신을 견고케 해 주기 때문이다.

◈‘칭의받은 것’과 ‘칭의받은 것을 아는 것’

‘구원(칭의)을 받는 것’과 ‘구원(칭의) 받은 것을 아는 것’은 다르다. 이는 구원(칭의)을 받은 자가 그것을 모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개 자기가 받은 ‘확고한 구원’만큼 그것을 실감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럼 과연 ‘내가 구원(칭의)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를 어떻게 알며, 또 그것의 차이는 왜 생기는가? 이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하기 때문인 듯하며, 그 기준은 보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타(自他)의 행위’를 보고서이다. 율법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다. 물론 성경을 위시해 신앙고백서에도 ‘성화’를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한 요소로 말하나, 그들처럼 ‘성화’를 ‘구원(칭의)의 조건’으로 말하진 않는다.

“구원의 확신의 유익: 금생에서 칭의, 양자 ‘성화’됨을 깨닫고 그것들을 바라봄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이다(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제29강).” 자기 의(義)에 근거한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은 절대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지 못하며 늘 자신을 ‘구원의 회의’속에서 살게 한다.

둘째가 주관적인 것에 의존하는 ‘신비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기준을 무시하고 ‘직관’이나 ‘통찰력’ 같은 ‘신비주의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자기의 주관적 느낌에 근거를 둔 ‘구원의 확신’은 그릇된 것일 뿐더러, 심지어 그것까지도 자신의 감정, 생각 따라 쉬 흔들리며 지속성을 갖지 못한다.

성경은 ‘누가 구원(칭의)받았는가’를 오직 ‘믿음’을 통해 판단한다. 예컨대, ‘그의 믿음을 보니 그는 구원(칭의)받았다’라고 표현한다. 예수님과 사도들 역시 그랬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 9:20-22)”,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역시 ‘믿음’과 ‘구원(칭의)’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판단한다.

“제33문: 당신은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칭의와 같은 것 바로 이러한 것은 행위로는 증명될 수 없다. ‘칭의’는 ‘믿음’ 이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때문에 결국 그것은 믿음으로라야만 된다.”

“제86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구원의 은혜이다. 그것에 의하여 우리는 복음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대로 그분만을 받아들이고 의지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다(요 3:16, 롬 3:22)… 어떻게 믿음이 구원의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완전하신 의를 붙잡게 하고 적용시키는 도구로서 그것으로써만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바 구원시키는 은혜이다(토마스 빈센트 소요리문답 해설서).”

구원(칭의)을 판단할 유일한 기준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구원(칭의) 받고, ‘믿음에 의해’ 구원(칭의)을 판단 받는다. 이런 점에서 ‘믿음’은 ‘구원의 방편(way of salvation)’인 동시에 ‘구원의 시금석(touchstone of one’s salvation)’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것을 아는 것’은 단지 교리적이고 지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초월적인 지식이기도 하다(이는 신비주의자들의 직관, 통찰력 같은 것과는 다르다).

곧 믿을 때 그 마음에 성령으로(갈 3:2)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롬 5:5), 그는 ‘나는 구원 받는다’ 혹은 ‘하나님이 나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처럼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아는 것’은 ‘자기 의(義)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도, ‘신비주의적인 직관’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에겐 탁월한 의(義)도, 남다른 통찰력도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진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구원받은 것’을 확인하려고 ‘자기 의(義)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신비주의적인 접근을 한다. 다 부질없는 일이다(빌 3:8).

아니 부질없는 정도가 아니다. 사도 바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구원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해악일 뿐이다(빌 3:7).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라.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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