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행위 중 어떤 것이 적절한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종교와 정치사상적 흐름 뿐 아니라 의학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질병과 건강”에 대한 인식이 성행동을 상당부분 지배하였는데, 중세에도 그랬다. 특히 중세의 성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는데 의학도 한몫을 하였다. 이런 사실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흔히 간과되어 왔다.
르네상스 이후 두드러진 의학 발전은 인체 해부 분야에서 였다. 과거 중세시대 대학에서 행해지던 저명한 이발사 외과의들에 의한 시체 해부가 16세기에 공공의 장소에서 극장식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16세기 벨기에의 의사인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였다. 그는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이다. 그의 공개 장소에서의 해부장면을 그린 유명한 회화에서 그는 오른 손으로 시체 해부를 하며, 왼손으로 해부된 위치를 가르키며, 입으로는 강의하고 있다. 베르살리우스는 해부를 통해 인체의 혈관계, 신경계, 근육조직계 등을 밝혔다. 그는 관중에게 여자 몸을 해부하여 생명창조의 비밀스런 장소인 자궁을 보여주었다. 당시 크게 그려진 인체해부도가 인기리에 항간에 유포되었다.
베르살리우스의 해부학은 자연과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그의 정확하고 숙련된 관찰 덕분에 그의 방법은 경험론에서의 귀납법의 귀감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물리학자 갈릴레오는 베살리우스의 연구방식을 이용하여 지구와 별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했다.
해부학의 발달이 인간 육체와 섹스에 대한 지식을 증가시켰다. 오랫동안 인체구조는 성별에 따라 구분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18세기 이전에 그려진 해부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750년에 이르러서야 유럽인들은 모든 뼈, 근육, 신경, 세포 등등에 있는 타고나는 남녀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세 갈렌의 일원적 섹스모델(one sex model)은 경험적 사실(empirical fact)에 따라 제거되었고, 대신 이원적 섹스 모델(two sex model)이 나타났다. 진정한 의미의 근대 의학의 발달이 시작하였다.
남녀의 몸이 다르다는 해부학의 발전은 여성 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이는 당시로서는 하나의 성혁명적 사건이다. 의사들은 여성이 남자의 한 버전(version, 변형)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남자와 다른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로서 인간 섹스의 이형성(dimorphism)(성은 남과 여 두 가지라는 동종 이형(同種二形))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구별되는 존재로서, 특히 생식과 모성적 기능으로 정의되었다. 남녀가 구별됨에 따라, 과거 자체 이름이 없던 여성의 인체 구조가 이제 그 자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질(vagina) 같은 것이다.
당시 해부학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골반이 넓고 신경은 약하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현재 우리는 남녀 차이가 생식기 뿐 아니라, 두개골, 뼈, 뇌, 호르몬, 염색체, 유전자, 그리고 DNA라는 분자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남녀차이는 단순히 생식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유기적 조직체에 관통되어 있다. 세포수준, 분자 수준에서도 남녀가 다르다는 것이다.
중세에 남녀 차이에 관한 해부학과 생식 과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에서 핵심과제가 되었다. 기독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남녀로 구별되게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시었다는 사실은 해부학의 발전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자의 몸과 그 능력의 비밀과 인간의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당시 과학의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생식의 씨앗 즉 정액은 어디서 만들어지며 여자도 그런 것을 만드는지, 섹스는 왜 쾌락적인지, 성적 쾌락은 여자에게도 있는지, 태아의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자녀는 왜 부모를 닮는지 등등이 이제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 대학 뿐 아니라, 법정, 심지어 일반인들 사이에 섹스와 생식(몸의 발생)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의사들이 다투어 저술들을 출판하였고, 이로서 자연을 연구하는 지식인으로 존경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해부학과 이원적 섹스모델은 남녀간 “불평등“ 문제는 해소하지 못하였다. 의사들의 시각에서는 여자는 여전히 신체적으로 연약하며 지적으로 모자라는 존재였고, 반면 남자는 보다 강하고 이성적이었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