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 망쳤지만… 기적적으로 대학에 입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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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11)] 내 생각을 뛰어넘는 그분의 손길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합격했어도, 학비가 없어 돈을 벌어야 했다. 말이 어눌해서 신문배달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998년, 무더운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끝내고 다음날 모의고사를 치르기 위해 대구에 올라갔다. 저녁에 머리를 식힐 겸 대구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마침 중앙지하상가에 돌아다니다가, 생전 처음으로 거지들을 목격했다.

“아저씨, 이 돈 받… 받으세요. 그런데 집… 집에 안 들어가시고 왜 이… 이러고 계세요?”

“집? 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소. 간질병이 있어서 모두들 날 싫어하지. 한동안 직장생활도 했는데, 발작 증세를 일으키니까 당장 쫓아내더군요. 이젠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이러고 사는 거요.”

30분이 넘도록 쪼그려 앉아서 같이 대화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까지 거지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갈 데 없는 걸인들이 천국 소망을 품고 복음을 믿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쪽팔림’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모순된 사회를 엿볼 수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서는 여유로운 자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며 술을 마시는 반면, 한쪽 구석에서는 걸인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IMF 구제금융 시대여서 그런 것 같았다.

중앙지하상가에서의 색다른 경험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그 후 11월 수능시험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걸인들을 찾아다녔다.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하루 전날 대구로 올라가 이 분들에게 약간의 물질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주었다.

이처럼 재수생활을 하면서도 전도에 대한 열심을 잃지 않았다. 드디어 ’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일이 되었다. 시험 당일이지만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 하나님, 오늘 시험에서 그동안 열… 열심히 공부했던 대로 좋은 결… 결과가 나오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주… 주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 시… 시험을 치겠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기분이 계속 엄습해 왔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긴장하는 버릇 때문에 시험을 잘 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년도에 비해 시험이 쉬웠는데도 가채점 결과는 평소 모의고사 수준에도 못 미쳤다.

각 언론과 신문에 대학별 지원가능 점수가 공개되었는데, 경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살펴보니 내 성적보다 거의 30점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엄청난 절망감에 빠져 인근 교회당으로 달려가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어떻게 이…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내 딴에는 전… 전도도 열심히 하면서 최선을 다해 공… 공부했는데, 결과는 완전히 엉망입니다. 주님이 좀 도… 도와주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북대 등록금을 마… 마련하려고 신문 배달해서 한 달에 10만원씩 10개월 동안 100만원을 모… 모았는데, 이걸로는 사… 사립대학에 가기가 불가능합니다. 죄송한 말… 말씀이지만 이번에 하나님께 좀 실망했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한 달 후 성적표가 도착했다. 등록금이 저렴한 경북대를 포기하려다,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불합격할 것이 뻔하지만, 그냥 원서라도 내보기로 했다.

그래서 논술 시험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 포기 상태로 답안지만 채우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험 당일 고사장에서 논술 문제지를 받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되었다.

‘IMF 시대에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한 사람들에게 본인이 해 주고 싶은 말을 논설문으로 작성하시오. 단, 아래 지문들을 참고하여 다른 예시를 들어 글의 내용을 전개할 것.’

정말 신기했다! 사전에 논술 공부를 전혀 안 했는데도, 이 문제만큼은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지난 수개월 동안 만나 대화를 나눴던 걸인들의 모습이 스치고 있었다.

그분들과 대화하며 느낀 것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글을 써 내려 갈 수 있었다. 딱히 다른 예시를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떨어질 거니까 전도나 하자 싶어서, 삶의 고뇌를 겪은 욥의 이야기를 잔뜩 써 놓고 나왔다.

태어나서 그토록 신나게 시험을 쳐 본 적이 없다. 논술 문제가 바로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또 다시 큰 좌절감에 빠졌다. 논술시험을 아무리 잘 쳐봤자, 전체 성적의 1% 남짓 밖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 커트라인에서 30점 가량 모자라는 나의 성적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경북대 합격자 발표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어느 조간신문을 펼쳐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두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믿기 힘든 기사가 실려 있었다.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미달, 이변 연출!”

기사를 읽어 보니, 미달 사태의 원인은 IMF 여파로 학생들이 하향 안전지원을 했다는 데 있었다. 미달이기 때문에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무조건 합격인 것이다! 그 순간 밀려오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인근 교회당으로 달려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하… 하나님, 지난번에 제가 감히 하나님께 실… 실망했다고 말씀드린 거 완전히 취… 취소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깊은 계… 계획이 담겨 있는 줄 모르고 제가 괜히 경… 경솔하게 말을 했습니다. 아무튼 주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참으로 흥미롭다. 실력이 부족해도 주께서 섭리하시는 상황에 떠밀려 들어가기도 하고, 실력이 탁월해도 내가 원하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막히든 열리든,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는 반대로 상황이 막혀 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주께서 지금 이곳에서 당신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가?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협력)으로 섬기면서 여러 모양으로 국내선교를 감당하는 중이며, 매년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외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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