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반정부 시위 확산… 사망자 발생하고 140여명 체포돼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무신론 국가’ 아닌 ‘세속 국가’ 표방하지만 기독교 박해 계속

▲쿠바 하바나 혁명광장에 자리한 내무부 건물. 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Martin Abegglen.
▲쿠바 하바나 혁명광장에 자리한 내무부 건물. 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Martin Abegglen.

쿠바의 반정부 시위가 사망자 발생 등 유혈 사태로 확산 중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쿠바 내무부는 아바나 외곽에서 발생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남성 시위자 1명(36)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 현장에서 일부 시위자들이 체포되고, 부상자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1일 시위가 시작된 후 독립 언론인과 반체제 인사 등 최소 140명이 체포되거나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쿠바 국적 기자 카밀라 아코스타(28)는 11일 시위를 취재한 다음 날 체포됐고, 쿠바 배우 겸 유튜버인 디나 스타스는 이날 스페인 방송과 화상 인터뷰 도중 체포되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러한 가운데 시위를 지지하며 갇힌 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쿠바 정부를 향해 아코스타를 즉시 석방하라고 밝혔다.

줄리 정 미 국무부 서반구 차관보도 트위터를 통해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쿠바 이주민과 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플로리다 지역은 쿠바 국민들의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플로리다는 쿠바 사람들이 아바나의 독재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선 것을 지지한다”며 “쿠바 독재 정권은 수십 년 동안 국민을 억압해 왔고, 이제 쿠바의 재앙적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용기가 있는 이들을 침묵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바계 미국인인 산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쿠바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정보 단속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루비오 의원은 트위터에 “쿠바의 무능한 공산당은 국민을 먹일 수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 줄 수도 없다”며 “이제 군은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바 정부는 1992년 헌법을 개정하여, 쿠바를 ‘무신론 국가’가 아닌 ‘세속 국가’로 선포하면서 종교 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해 왔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 인구의 비율이 급증하자, 당국은 이에 대한 박해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2019년 채택된 새 헌법은 쿠바가 여전히 세속 국가라고 언급했다.

퓨 템플턴(Pew-Templeton) 글로벌 종교 퓨처 프로젝트에 따르면, 쿠바인의 과반(59%)은 기독교인이다. 쿠바 섬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감시와 침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에 따르면, 작년 4월 쿠바의 새 헌법은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형태로 개정됐다. 종교 지도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반복된 경찰 소환, 심문, 구금, 위협, 종교 지도자들을 ‘반혁명가’로 부르는 전술 등이 사용됐다.

USCIRF 연례보고서는 “쿠바의 종교 자유 상황에 대한 정보 수집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한 NGO는 쿠바가 종교나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 사례가 2018년 한 해 동안 151건에서 260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새 헌법이 종교자유에 대한 보호를 약화시켰다는 우려를 제기한 종교 지도자들은, 2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극심한 증오와 압력에 직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편 시위가 확산되자 쿠바 정부는 여행객들이 들여오는 식품이나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일시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마누엘 마레로 쿠바 총리는 이날 국영 TV 토론회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요구해 왔다. 오는 19일부터 시작해 일시적으로 여행객들이 가져오는 물품에 대한 관세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공산국가 쿠바에서는 그동안 외부에서 들어오는 식품·의약품 등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 왔기 때문에, 정부의 이번 결정은 시위대의 요구에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현재 쿠바로 가는 항공편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이 어떤 효과를 미칠 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많다.

쿠바의 미겔 디아스 카넬 대통령은 “반혁명적 도발”이라며 시위의 배후에 미국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쿠바의 코로나 상황은 수 년 전부터 계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로 심화됐다”며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대규모 소요 사태를 일으켜 인도적 개입 여지를 갖기 위해 실시한 조치들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국면에 처한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례적인 반정부 시위에 휩싸인 쿠바에 대한 제재 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 백악관이 대쿠바 정책을 재검토하며 미국인들이 쿠바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는 것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고 되었다”고 전했다. 해외로부터 송금은 서비스업과 관광업에 이어 쿠바 경제에 중요한 달러 확보 수단이다.

이와 더불어 백악관은 미국과 쿠바 사이의 여행금지 완화, 쿠바에 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도 검토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대쿠바 정책의 재검토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토안보부 등 여러 기관이 관여하고 있으며, 검토 결과가 임박한 것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쿠바에 대한 정책 재검토에는 쿠바 국민의 정치·경제적 행복에 미칠 영향 등이 고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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