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공간 읽기] 결혼식장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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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결혼식장 톺아보기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10

유별난 결혼식 문화의 집약체

우리나라의 예식장은 아주 독특한 건축물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결혼식만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란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죠. 예식장은 우리나라의 유별난 결혼식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 장소에서 하루에 몇 쌍씩 한두 시간 단위로 밀어내듯이 식이 진행될 뿐 아니라, 어디서 온 누구의 하객인지 당최 알 수 없는 낯선 이들과 함께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야 할 때도 있지요.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고 난 후 축의금을 내면 식권을 받는 것도 잔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 같긴 하지만 누구의 초청을 받은 손님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가피한 방식일 겁니다.

우리나라 예식장의 가장 특이한 점은 외국 건축물을 모조품처럼 흉내 낸 기괴한 외관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세 유럽의 성의 모양을 하고 있거나, 그레코로만 양식, 비잔틴 양식, 고딕 양식, 아니면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혼합된 국적불명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실내 곳곳에도 이국적인 장식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20세기 대한민국에 지어진 건물인데도 그 모습은 이국적일 뿐 아니라 동화적이기도 하구요. 다분히 값싸 보이기도 합니다. 대로변에 뚱딴지같이 서 있는 국적불명의 건물은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위해 마련된 세트장 같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나라 예식장은 대체 왜 이런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결혼식에서 신부는 공주가 되고 신랑은 왕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점이 결혼식장을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인 모습으로 지어지게 한 첫 번째 이유일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결혼식이란 과시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이란 그저 두 사람만의 의식이 아니라 양가의 재력과 인맥을 과시하는 현장이기에 건물은 최대한 화려한 모습이어야 할 터. 평소 서양에 대해 은근한 동경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서양 고전건축물의 외관을 흉내냄으로써 그 화려함을 이뤄내려 했던 겁니다.

그러고 보면 결혼식이, 아니 결혼 자체가 과시라는 건 유서 깊고 뿌리도 깊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이웃 나라 애굽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는데요(열왕기상 3:1). 당시 애굽은 강대국이었고 솔로몬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은 신흥 강대국이었습니다. 두 나라는 정략결혼을 통해 서로를 견제할 수 있었구요. 나아가서는 또 다른 이웃 나라들에게 자신들의 동맹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죠.

유행의 교체인가, 근본적인 변화인가

그런데, 근래 들어 결혼식 문화에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와 결혼 기피현상에 초유의 전염병까지 겹쳐서 결혼식을 이전처럼 성대하게 치르기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죠. 언택트 시대가 지속된다면 결혼식 문화 자체에 근본적 변화가 따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화상으로 식이 진행되고, 축의금도 계좌이체나 통신망을 이용해서 전달하구요. 피로연을 여는 대신 혼주가 각종 전자쿠폰을 답례품으로 통신망을 통해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연히 예식장 건물 또한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대면을 기피하는 사조로 인해 기존의 예식장 건물은 존폐를 고심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죠.

일본에서 많은 교회는 예식장으로만 사용됩니다. 그 유명한 스타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설계한 <물의 교회>도 예식장이지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성스럽고 엄숙한 분위기의 결혼식을 원하는 일본인들의 수요가 ‘예식장 교회’라는 변종 건축물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요.

어떤 방식이 되었든, 예식장의 변화, 결혼식의 변화, 아니 결혼 자체에 대한 변화는 이제 불가피한 사실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장차 어떤 양상으로 변하더라도 결혼식이 두 집안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현장이라는 점이 변하지 않는 한 예식장의 변화는 유행의 교체 현상일 뿐 근본적인 변화는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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