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의인이며 죄인, 왕 같은 제사장이며 만물의 찌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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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의인이며 악인

그리스도인의 이중적 정체성(a dual identity)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마 루터(Martin Luther)의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는 이론적으론 가납(可納)하기 쉬우나, 그것을 실제 맞닥뜨릴 때의 혼란스러움은 사람을 시험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설교자들이 이중성(a duplicity)의 모델로 자주 소환하는 성경의 인물들이 있다. 그 중 선두주자가 다윗이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 13:22)’,‘성군’이 라는 칭호를 얻었던 그가 휘하(麾下) 장군의 아내를 취하고 그를 사지로 내 모는(삼하 11:1-17) 말도 안 되는 죄에 연루됐다.

다음이 베드로이다. 그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로 고백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 교회의 초석을 놓은 자, 천국 열쇄를 받은 자(마 16:17-19)”로 등극됐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단(satan)’으로 몰렸고(마 16:23), 나중엔 그를 세 번이나 부인(마 26:70-74)하기까지 했다.

빠질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세례 요한’이다. 흔히 그는 헤롯의 불륜을 책망하다 죽임을 당한 강골(强骨) 신앙인으로 인식돼 왔으나, 그 역시 예외 없이 나약한 면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의 길을 평탄케 하도록 소명(召命)받은 자(사 40:3)”였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그보다 큰이가 없다(마 11:11)”는 칭송을 받았다.

또한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풀며, “비둘기 같은 성령의 강림(마 3:16)”을 목도했고, 성부로부터 “이(예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라는 천뢰(天雷)의 음성도 들었다.

그런 그가 나중에 ‘예수님의 구주 되심’을 의심(疑心)하여, 그에게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사도 바울이다. 그에겐 ‘도덕적인 부침(浮沈)’도 없었고(오랜 세월 엄격한 바리새적 훈련으로 자기통제가 몸에 밴 덕분이다)’, ‘신앙적 회의’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성령 강림 후 내재적 신앙(immanent belief)을 가진 덕분이다).

그는 인문학자답게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적 고민인 ‘인간의 양면성(a dual nature)’을 들고 나와, 자기 고백적 형식으로 서술[하며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로마서 7장은 그것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이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롬 7:18)”는 소극적인 ‘선의 결여’에서 시작해,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한다(롬 7:19)”는 적극적인 ‘악의 도발성’까지 포괄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자각이 일시적으로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이 그를 계속 묶지 못하고, 감사의 태도로 변모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2-25).”

이런 변화는 자신의 이중성(a duplicity)이 ‘그의 구원의 불완전성’ 때문이 아닌, 내면에 실존하는 ‘육신의 사람’과 ‘중생한 새사람’의 대립으로 말미암았음을 자각한데서 온 결과였다.

잇따르는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는 고백은, 그가 두 정체성 사이에서 겪은 혼란과 갈등,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피 터지는 싸움의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었다.

곧 현세에선 둘의 싸움은 결말이 없으며, 육신을 벗은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끝날 것임을 알게 되므로, 담담히 두 실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며 만물의 찌끼

그리스도인은 그의 ‘자아 정체성(ego-identity, 自我正體性)’에서뿐 아니라 그의 ‘지위(status, 地位)’에서도 이중성(a duplicity)을 가졌다. 영적 측면에선 ‘왕 같은 제사장(벧전 2:5)’이고, 현실에선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존재(고전 1:26-28)’이다.

후자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것은 입신(入信) 때의 모습이고 후엔 안 그렇다고 항변한다. 그 근거로 그들이 입신 후 “세상의 지혜롭고 강하고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했다(고전 1:28-29)”는 말씀을 들이댄다.

그러나 그 말은 구원받는데 있어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 능력의 무용함’을 통해 그들을 부끄럽게 했다는 뜻이지, 소위 입신(入信) 후 그들을 능가하는 세상적 지위(a worldly status)를 획득해 그렇게 됐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입신 후에도 세상에선 여전히 전과 다름없이 ‘마이너(a minor)’이고 ‘언더그라운드(a undergrounder)’일 수 있다(그리고 그의 영적인 지위 역시 여전히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렇게 양면적 지위(a dual status)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두 지위 사이에서의 혼란으로 일시적으로 시험에 들거나 구원의 확신을 잃기도 한다. 성경 인물 중 그 혼란을 가장 크게 겪었을 법한 사람이 아마 거지 ‘나사로(Lazarus)’가 아닌가 싶다.

‘나사로(Lazarus,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그의 영적 지위는 ‘하나님의 돌봄을 받는 자’였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병들어 부잣집 대문 앞에 누워 개의 핥음을 당하는 거지였다(눅 16:20-21).

그 몰골 어디에도 그가 ‘하나님의 돌봄을 받는 자’라는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사람들 눈엔 불신자인 부자가 하나님의 돌봄을 받는 자로 보인다.

또 “만물이 다 내(너희) 것이다(고전 3:21)”고 큰 소리 떵떵 쳤던 사도 바울을 보라. 그가 생의 종착지에 다다랐을 즈음 그의 남은 전 재산은 ‘병든 몸(고후 12:7)’, ‘낡은 외투 한 벌과 가죽 종이에 쓴 책(성경) 한권(딤후 4:13)’이었다. 창조자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시며, 자신을 그의 상속자로 자처했던 그의 자부심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현실이다.

‘두 지위의 간극(間隙)’으로 한다면 ‘하나님이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할 자가 없다. 그는 풍랑을 잔잔케 하고(막 4:39), 죽은 자를 살리고(요 11:43-44),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막 11:14, 21) 만물의 창조자요 주권자시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으며(마 8:20, 요 1:11),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됐고(사 53:3), 마지막엔 저주스런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다(갈 3:13).

그런 이중적인 지위(a dual status)의 간극(間隙) 속에서 예수님이 느꼈을 혼란스러움은 우리로선 짐작불가이다.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마 4:3, 6)’이라고 조롱한 것은 예수님의 ‘자아 인식’에 혼란을 부추기려는 책략으로 보인다.

예수님과 성경의 인물들이 그랬듯, 우리 역시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우리의 이중성(a duplicity)을 벗을 수 없으며, 그 둘의 간극으로부터 오는 갈등과 혼란 역시 숙명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우리의 한 부분 즉, 후패한 겉사람의 모습(고후 4:16)과 현실적인 지위(a worldly status)만 보고 그것에 매몰돼 또 다른 한편 곧, 우리 안에 감춰진 ‘의인됨’과 ‘존귀한 지위’를 보는 일에 실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의 간극(間隙)이 없어지는 날, 곧 우리가 육신을 벗거나(고후 5:6)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그날 비로소 감춰진 우리의 영광스러운 진면목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 이 둘 사이에서의 갈등과 혼란이 이어질 것이나 주의 은혜가 너끈히 이를 감당하게 할 줄 믿는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요일 3:2).”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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