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개와 돼지’처럼 더럽게 여겨 상종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차별의식이 얼마나 컸던지, 그들의 거주지를 통과하지 않으려 부러 먼 길을 빙빙 둘러 다니기까지 했다. 이방인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흡사 오늘날 인도인들이 불가촉천민(untouchable, 不可觸賤民)에 대한 것과 같았다.
이방인들이 받은 그 같은 차별의식은 유대인인 예수님이 수가성(Sychar) 우물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 좀 달라’했을 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라는 말에서 충분히 유추된다.
그것은 그들이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여전했다. 심지어 베드로 같은 예수님의 제자까지도 그런 차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가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들이닥쳤을 때, 안 먹은 척 외식(外飾)하다 사도 바울의 책망을 받았던 일까지 있었다(갈 2:11-14).
이 모든 ‘차별의식’의 근저에 깔려 있었던 것은 ‘율법주의’였으며, 그것은 이방인 입교자(入敎者)들에게 ‘믿음’과 함께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수(행 15:5)’, ‘우상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행 21:25)’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율법주의 누룩은 후에 ‘신율주의(theonomy)’, ‘계몽주의 기독교(christianity enlightenment)’를 태동시켰다. 차이가 있다면, 유대인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 율법, 규례를 요구했다면, 이들은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십계명’과 ‘산상수훈’ 같은 도덕법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거룩해진다’고 가르친다. 복음 안에선 ‘할례와 율법’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도 철폐된다(롬 3:22). 이는 베드로의 환상 중 하늘에서 보자기에 싸여 내려온 ‘속되고 부정한 것들(anything impure or unclean)’을 잡아먹으라(행 10:14-15)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충분히 유추된다.
하나님이 ‘속되고 부정한 것들을 깨끗케 했다’는 말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깨끗케 됐고, 그로 인해 유대인·이방인의 구분이 철폐됐다는 말이다. ‘그것을 잡아먹어라’는 말씀은 유대인·이방인의 구분 없이 하나님이 그들을 열납하신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복음적 거룩’을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5).”
아무리 ‘극악한 죄인’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지 못할 자 없고, 아무리 고차원의 ‘종교적 경건’을 갖췄어도 그것이 그를 거룩케 못한다.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죄질 생각 다 버려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는 찬송 가사 그대로이다. 다음은 그것의 예증과도 같은 말씀이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유사한 원리가 ‘세리와 창기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마 21:31)’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확인된다. 이것은 ‘창기와 세리’가 자신들의 심신(心身)을 명경(明鏡)같이 갈고 닦아 마침내 그들을 능가하는 경건을 갖춰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인들 중 그들의 ‘종교적 경건(religious piety)’을 능가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되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거룩’,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차별 없는 거룩(행 15:9)”이다.
이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이 더럽다(딛 1:15). 그들이 아무리 자신을 도덕, 교양, 종교로 장식해도 깨끗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죽은 시체, 오물 덩어리에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의와 거룩
성경은 ‘의(righteousness)’와 ‘거룩(holiness)’을 종종 구분짓는다(고전 1:30), 때론 둘을 동일시해 상호교호(相互交互)하여(사 5:16) ‘거룩의 결여’를 ‘의의 결여’로 여기기도 한다.
웃사(uzzah)가 언약궤(the ark)를 만져 즉사한 것은(대상 13:10) 성결의식(the ceremony of holiness) 없이 하나님의 거룩을 촉범한 때문이었는데, 이는 마치 ‘불의한 자’가 ‘의로우신 하나님’을 촉범하여 심판을 받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혹은 ‘의’를 ‘법적인 차원(벧후 2:9)’으로, ‘거룩’을 ‘그것(義)의 내면적 속성(사 5:16)’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의롭지 못한 자는 ‘속성’상 거룩치 못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다(사 6:5, 히 7:26).
그런가 하면 때론 ‘의’가 ‘거룩’을 선도하고 ‘거룩’이 그 뒤를 따른다(막 6:20, 고전 1:30, 엡 4:24). 물론 정 반대의 경우(고전 6:11)도 있다. 따라서 둘을 엄격하게 구분 짓기가 어렵다.
둘의 이런 변증법적 관계는 성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를 ‘하나님의 소유됨’에 방점을 둘 땐 ‘성별(consecration to God)로서의 거룩’을 앞세우고, ‘구원의 서정(order salvation)’에 둘 땐 ‘칭의’가 앞서고 ‘거룩’이 ‘그것의 결과’로 존치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또한 ‘거룩’을 ‘하나님의 일’인 동시에 ‘사람의 일’로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것이 ‘중생(regeneration)’‘구속(redemption)’과 연결될 땐 ‘하나님의 일(God’s affair)’이 된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3)”,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사 35:8)”.
그리고 그것이 ‘성화(sanctification)’와 연결될 땐, ‘사람의 일(man’s affair)’이 된다(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주도아래서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찌어다(레 11:45)”는 ‘성도의 거룩’을 요청하는 대표적인 말씀인데, 이는 ‘너희 자력으로 거룩을 도모하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아) 거룩케 된 무리여! 그 거룩을 지키라’는 뜻이다. 비유컨대 결혼식 때 희고 깨끗한 예복을 입은 신부가 그것을 더럽히지 않게 잘 간수하듯, 예수님이 입혀주신 ‘의의 옷(사 61:10)’을 더럽히지 않고 잘 간수하라(계 3:4)는 말이다.
혹 ‘의의 예복’에 오물이 묻어 더럽혀 졌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빨아(계 7:14) 그것을 깨끗이 하면서 말이다.
이제껏 보았듯, ‘의’와 ‘거룩’의 복잡다단한 관계 설정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다양한 영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로 ‘변증법적인 대처’를 하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때론 둘이 ‘동일’하게 혹은 ‘구분’된 의미로, 때론 서로 ‘앞서거니’ 혹은 ‘뒷서거니’ 하면서 둘이 서로를 해석해 주고 지원해 주므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