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13)] 사명자로 부르시는 표징
일반적으로 사람을 불러 일을 맡길 때는, 그에게 탁월한 재능과 실력이 있는지 면밀하게 살핀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의 탁월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보이는 이것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의 콜링(calling) 방법이다. 이미 완벽하게 갖춰진 인재들을 뽑아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동참시키고, 그들이 갖춘 실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들의 업적을 더욱 높이 쌓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사람을 불러 일을 맡기시는 방법은 정말 독특하다. 세상이 볼 때는 독특하다는 수준을 넘어,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재능과 실력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전적으로 당신의 뜻대로 부르실 자를 부르시어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주께서 그렇게 부르셨다. 어릴 때부터 유창성 장애가 심해 도무지 설교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데, 당신의 전적 은혜로 지금의 모습으로 빚으셨다. 결정적인 에피소드를 아래에 소개한다.
상병 계급장을 단지 7개월이 지났다. 2002년 한 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덧 6월 둘째 주일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교회 가서 오전 예배를 드리고, 점심 시간이 되어 전우들과 함께 맛있는 밥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단 군종병이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잔인한’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율 형제, 오늘 저녁에 목사님이 인근 부대에 신우회 헌신예배 설교하러 가셔. 그래서 율 형제가 저녁예배 때 간증 한번 해줬으면 해.”
“뭐… 뭐라고? 사… 사무엘도 잘 알다시피, 난 사람들 앞에 서면 너… 너무 긴장해서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 못하잖아? 근데 무슨 수로 간증을 한단 말이야? 지금 대… 대화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구먼. 그건 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그냥 사… 사무엘이 직접 하는 건 어때?”
“그러고 싶은데, 목사님이 워낙 갑작스럽게 부탁하셔서 나도 하기가 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율 형제가 꼭 해야 될 것 같아. 목사님도 그걸 원하고 계셔.”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부탁이었다. 나 같은 말더듬이가 무슨 수로 강단에 서서 간증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훈련소 때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된 전력도 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 성령님의 강권하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부탁을 끝내 뿌리치지 못해, 나도 모르게 그만 수락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엄청난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혔다. 너무 긴장이 되어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막사 뒤에 있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오후 내내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니, 하… 하나님, 제가 듣기에 하나님은 실… 실수하지 않으신다고 했는데, 이번만은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언… 언어장애를 앓는 제가 무슨 수로 군인 형제들 앞에서 간… 간증을 한단 말입니까?
온 부대원들이 제가 말… 말더듬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괜히 그런 모…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도리어 하… 하나님의 영광만 가릴 것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늦… 늦지 않았으니까, 제발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주님 아… 아시잖아요? 저는 정말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운명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저녁에 사병 식당에서 미리 밥을 먹고, 남들보다 더 빨리 교회당으로 내려갔다.
저녁을 먹는 동안, 머릿속에는 과거에 체험했던 은혜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예배가 7시에 시작되는데, 너무 걱정이 되어 15분 전부터 강대상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령님은 불안해하는 나를 오히려 책망하시며 말씀으로 내 마음을 위로해 주셨다.
“율아, 너는 아직도 이 일을 네 힘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무나. 그리고 이 말씀 명심하거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0)’”
어느덧 예배당 뒤편에 걸린 커다란 벽시계가 정확히 7시를 가리켰다. 예배를 인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말문이 열리면서, 정말 자유롭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설교 시간이 되었다. 지난날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했다. 현장에 있던 수십 명의 군인 형제들과 집사님들이 모두 큰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들 내가 하는 말에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은혜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듯했다.
평소 말을 심하게 더듬거리던 내가 시원스럽게 말을 해서, 더더욱 그렇게 반응한 것 같았다. 한없이 부족한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강한 임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렸다. 예배가 끝나자 다들 아쉬워했다. 오늘 못 다한 부분을 전역하기 전에 꼭 한 번 더 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참으로 놀라워서, 밤새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정말 밤이 샐 때까지 나는 “하나님, 사랑합니다! 주님 살아 계심을 찬양합니다!”를 무한 반복했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신학에 대한 나의 꿈이 이제 확고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군 생활 하면서 목사와 선교사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저버렸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더 이상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번역이나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한 번 계획하신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20년 전의 그는 현재 수많은 교회들을 순회하며 설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긴장하고 말이 어눌하지만, 주의 성령께서 매번 그때처럼 입을 여시고 청중 가운데 하늘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
턱없이 부족한 자를 부르셔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위대한 섭리를 오늘도 찬양한다.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협력)으로 섬기면서 여러 모양으로 국내선교를 감당하는 중이며, 매년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외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