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전격적으로 장악했다. 특히 어떻게든 아프간에서 벗어나고자 (당연히 죽을 줄 알면서도)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한 이들, 자신의 아기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영국군이 지키는 호텔 철조망 너머로 아기를 던진 어머니들, 잔혹만 만행을 끊임없이 벌이는 탈레반 등의 모습을 전 세계는 충격과 비통 속에 지켜보고 있다.
인간의 잘못된 신념과 욕망이 얼마나 엄청나고 끔찍한 비극을 초래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와 기독교계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거대한 도전이다. 특히 한국 기독교계와 선교계 지도자들은 이를 예의주시하고 각자의 역할과 과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먼저 한국교회 성도들은 현지의 기독교인 비롯한 소수종교인, 언론인, 여성 등 탈레반의 주요 표적 및 박해 대상이 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지금 아프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는 있다고는 하나, 이 문제는 결코 사람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조차 약 20년 동안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해 보고도 결국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지금의 대혼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항상 이 같은 고난과 핍박을 종국에는 부흥으로 역전시키셨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속히 아프간에서 고통과 눈물이 그치고 자유와 평화가 임하게 하시길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의 기독교인들 역시 과거 일제와 공산당 등으로 인해 핍박받던 당시,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빚진 바 있다. 그들이 먼 이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원조하고 싸워 줬기에 오늘날 우리가 평화와 번영 속에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은혜를 우리가 그들에게 갚아야 할 때다.
또한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교훈과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특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 지켜 주지 않는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를 쏟아부어 가며 아프간의 국방력과 경제력을 끌어올려 보려 했으나, 아프간인들은 나약함과 부패에 빠져 미국에 의존하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쳐 철수하자, 아프간인들은 자신들보다 수적으로나 (무기의) 질적으로나 절대적 열세인 탈레반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는 미국의 원조를 받은 나라 중 가장 훌륭한 결과를 보여 왔으나, 최근 들어 점차 안이한 모습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군의 주둔이 가져오는 실질적 효과를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번 미군의 아프간 철수에 대해서도 환영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존하는 위협 앞에서 이 같은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위험한 것인지는 이번 아프간 사태, 그리고 역사의 수많은 사례, 무엇보다 6.25전쟁 직전 우리나라의 사례를 통해서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북한에 비해서는 수적·질적으로 압도적 우세를 가진 군을 보유하고 있으나, 북한이 핵무기라는 비대칭전력을 보유했다는 점, 우리나라가 오랜 평화와 번영에 젖어 있다는 점, 한반도 주변에는 북한 외에도 많은 강대국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 등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슬람의 실체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이해를 해야 한다. 무슬림 및 친이슬람 학자들은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미화한다. 물론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온건한 성향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소수의 강경하고 극단적 무슬림에 의해 전체 이슬람 사회가 너무나 쉽게 장악되고 좌지우지된다.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교리 자체가 매우 호전적이고 잔인하며 구시대적이고 인권(특히 여성 인권)을 도외시한다. 이를 단지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혹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옹호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이슬람권을 비롯해 기독교를 박해하는 지역을 어떻게 선교할 것인지 더욱 심도 있는 논의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독교 박해 지역은 선교하기에 매우 위험하고 어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곳보다도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박해자·박해국을 선교사·선교국으로 수없이 전환시키신 분이며,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이 지역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며,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나약하지 않게 선교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고 선교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는 감사함을 잃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 일제에서 독립한 것도, 자유민주주의국가를 세운 것도, 북한의 적화 야욕을 막아낸 것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며 많은 이들의 희생과 수고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