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의 성령론 119
성경 말씀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6)
1. 방언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방언에 대한 질문이나 궁금한 점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방언 말하기를 사모하고 있는 분도 계실 것이고, 또 방언을 하고는 있지만 과연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방언 문제에 대한 이해를 하신 후, 이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을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신학계에서는 그 동안 방언에 대한 부정적 비판을 많이 해왔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장로교 신학자들은 예언, 방언, 신유와 같은 특별 은사는 사도시대까지로 중지되었기 때문에 현대 교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성결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결교회 이명직 목사는 방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각국 방언이고 또 하나는 천사의 방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각국 방언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있다가 중단된 체험으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성결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세례 받은 표적으로서의 방언에 대한 명백한 부정을 하였으며, 그 대신 성령세례의 결과는 성결과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성결교회에서는 왜 방언에 대해서 그 동안 부정적인 인식을 해왔을까요? 그것은 성결교회의 성결론이 원칙상 ‘정화와 능력’(purity and power)의 두 가지 차원을 함께 언급한다고 할지라도, 실제적인 강조에 있어서는 방언이나 능력보다는 정화와 관계있는 ‘성결’의 차원에 훨씬 더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한국교계에는 방언 문제로 인해 크게 물의가 일어나고 신학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성결교회에서는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과 함께 상대적으로 성결의 은혜에 대해 더욱 강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표적으로 보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성령세례와 방언을 직결시키는 경향은 1930년대 전후의 ‘방언파’라고 지탄을 받던 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습니다. 방언파란 1928년부터 한국에 와서 활동한 미국과 영국의 오순절교단 선교사들의 방언 강조로 인해 붙여진 말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현재까지 오순절교단의 교리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가장 뚜렷한 증거로서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은 안타깝게도 1930년대의 이단들인 황국주, 유명화, 백남주 등이 거짓 계시와 방언, 예언을 동반하는 혼합주의적 영성운동을 확산하던 것과 연관되었습니다. 그러자 오순절교단의 방언 운동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기존 교단들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순절교단의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가 점차 일반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순절교회들이 1980년대 이후 ‘제 3의 물결’로 인해 방언을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오순절교회인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가 지속적으로 타 교단 신학자들을 초청해 신학적 교류를 많이 해 온 까닭에, 방언에 대한 해석이 좀 더 일반화되어 가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3. 방언을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는 빈야드운동을 중심으로 한 ‘제 3의 물결’의 영성이 한국 교계와 신학계의 큰 논제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제 3의 물결’에서는 방언이 필수적인 성령세례의 표적이 아니라, 어떤 영적 사역이나 효과적인 기도를 위해서 신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 오순절파 교회의 신자와 목회자들 사이에 점차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8-11)
한편,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교리적 입장을 취해 온 장로교나 감리교나 성결교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방언에 대해 크게 수용하고 있는 목회적 현실입니다. 이 같은 목회적 현상은 그 동안 각 교단 교리적 노선에서 취해 온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적 신앙의 핵심은 성령의 역사의 결정적인 요소가 방언, 신유, 입신과 같은 은사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변화에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은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은사주의나 무분별한 은사 사용은 언제나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므로, 이 점에 있어서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은 분별력을 날카롭게 하여 은사 사용의 잣대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용어 풀이: 오순절주의와 방언
전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에서는 방언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의 표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최초의 증거로서 나타난다고 강조합니다. 미국 하나님의성회 신조 제 8조에는 ‘성령세례의 증거’에 대한 항목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대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최초의 외적 표적(the initial physical sign)에 의하여 증거된다(행 2:4). 이 경우의 방언을 말하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은사로서의 방언과 동일하다(고전 12:4-10,28). 그러나 그 목적과 용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헌법에도, “신자들이 받은바 성령세례의 증거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방언이 그 최초의 외적 표적으로 나타난다(행 2:4). 이 방언은 본질상 방언의 은사와 같으나(고전 12:4-10,28), 그 목적과 사용에 있어서는 다르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사역을 위한 질문
1. 한국 대부분의 신학계에서 그 동안 방언에 대한 부정적 비판을 많이 해 온 교리적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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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에 오순절교단의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가 점차 일반화 되어가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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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음적 신앙의 핵심은 성령의 역사의 결정적인 요소가 방언, 신유, 예언과 같은 은사 체험보다는 더욱 어떤 점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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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적용을 위한 기도
1. 방언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이나 혹 방언을 절대시하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성경적인 방언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당신이 방언을 말하는 분이라면, 방언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 삶에 덕을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유튜브 채널 : 배본철 https://www.youtube.com/user/bonjourbay